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어찌하여 불의와 재난을 보아야 하냐고 하바쿡 예언자가 하소연하자,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고 하신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주님을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한다(제2독서). 주님께서는 사도들에게,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돌무화과 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고 해도 복종할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 하바쿡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2-3; 2,2-4
2 주님, 당신께서 듣지 않으시는데
제가 언제까지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까?
당신께서 구해 주지 않으시는데
제가 언제까지 “폭력이다!” 하고 소리쳐야 합니까?
3 어찌하여 제가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제가 재난을 바라보아야 합니까?
제 앞에는 억압과 폭력뿐
이느니 시비요 생기느니 싸움뿐입니다.
2,2 주님께서 나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환시를 기록하여라.
누구나 막힘없이 읽어 갈 수 있도록 판에다 분명하게 써라.”
3 지금 이 환시는 정해진 때를 기다린다.
끝을 향해 치닫는 이 환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오고야 만다, 지체하지 않는다.
4 보라, 뻔뻔스러운 자를. 그의 정신은 바르지 않다.
그러나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 1,6-8.13-14
사랑하는 그대여, 6 나는 그대에게 상기시킵니다.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7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8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분 때문에 수인이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13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주어지는 믿음과 사랑으로,
나에게서 들은 건전한 말씀을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14 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성령의 도움으로, 그대가 맡은 그 훌륭한 것을 지키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가 믿음이 있으면!>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5-10
그때에 5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7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8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9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오늘의 묵상

창세기 24장에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사악과 레베카가 어떻게 혼인하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종에게 많은 낙타와 온갖 선물을 주며 아들 이사악의 신붓감을 데려오라고 보냅니다. 종은 샘물 곁에서 자신의 낙타 열 마리와 자신에게 물을 길어 주는 소녀가 있다면 그 소녀가 주님께서 보내 주신 주인의 며느리라 여기겠다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레베카가 나타나 낙타들과 종에게 물을 길어 줍니다.여기서 아브라함은 하느님이고 이사악은 예수님이며 레베카는 교회에 비길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님과 혼인함으로써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그러나 그러려면 먼저 낙타 열 마리를 먹일 수 있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10’은 계명을 의미하고, 모든 계명의 완성은 ‘사랑’입니다(로마 13,10 참조). 사랑의 실천만이 하느님의 가족이 되고 하느님 나라의 상속권을 얻을 수 있게 합니다.그러나 오늘 복음에 나오는 부자는 비록 모세 오경과 예언서를 읽으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지만 사랑을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아기가 우물에 빠졌는데 안 구해 준다면 그 사람에게는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굶주린 라자로가 문 밖에 있는데도 먹을 것을 주지 않았으니 그는 스스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사람이 아님을 드러내며 산 것입니다. 이와 달리 라자로는 개들에게 원하는 대로 자신의 몸을 핥게 하였습니다. 사랑은 내어 줌입니다.제1독서에서 “불행하여라, 시온에서 걱정 없이 사는 자들, 사마리아산에서 마음 놓고 사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우리 주위에 늘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 걱정 없이 흥청댈 수 있다면 스스로 사랑이 없음을 드러내며 지옥을 향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Posted by 에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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