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사울이 죽자 원로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다고 경고하신다(복음).


제1독서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될 것이다.> 5,1-7.10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그 무렵 1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몰려가서 말하였다.
“우리는 임금님의 골육입니다.
2 전에 사울이 우리의 임금이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전하신 이는 임금님이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될 것이다.’ 하고 임금님께 말씀하셨습니다.”
3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모두 헤브론으로 임금을 찾아가자,
다윗 임금은 헤브론에서 주님 앞으로 나아가 그들과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
4 다윗은 서른 살에 임금이 되어 마흔 해 동안 다스렸다.
5 그는 헤브론에서 일곱 해 여섯 달 동안 유다를 다스린 다음,
예루살렘에서 서른세 해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다.
6 다윗 임금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에 사는 여부스족을 치려 하자,
여부스 주민들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너는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도 너쯤은 물리칠 수 있다.”
그들은 다윗이 거기에 들어올 수 없으리라고 여겼던 것이다.
7 그러나 다윗은 시온산성을 점령하였다.
그곳이 바로 다윗 성이다.
10 다윗은 세력이 점점 커졌다.
주 만군의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탄은 끝장이 난다.> 3,22-30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그때에 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예수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도 하고,
“예수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도 하였다.
23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셔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 한 나라가 갈라서면 그 나라는 버티어 내지 못한다.
25 한 집안이 갈라서면 그 집안은 버티어 내지 못할 것이다.
26 사탄도 자신을 거슬러 일어나 갈라서면 버티어 내지 못하고 끝장이 난다.
27 먼저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 수 없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 수 있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29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30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예수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먼저 하나만 기억합시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은 좋은 것입니다(창세 1장 참조). 좋은 것이 나쁜 것으로 변하는 것은, 실제로 좋은 것이 나쁜 것으로 변질되는 것이 아니라 좋지 않다고 규정하고 판단하는 우리 인식의 편향성이 그것을 나쁜 것이라 매도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 완전히 구분되지 않습니다. 누구 눈에는 좋고 또 누구 눈에는 나쁜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사람은 사람입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 우리 시선의 왜곡이 참으로 나쁜 것입니다.

제 눈에 낯설고 불편하면 악마로 규정하는 일이 우리 신앙 공동체 안에서 자주 발견됩니다. 신심 활동을 하는 신자들 사이에 편 가름의 잘못이 자주 목격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아무리 나쁘더라도 그를 형제애로 보듬어 줄 수 있는 근력을 키워야 합니다. 교정 사목을 하면서 사형수를 찾아가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은 왜일까요? 회개하고 뉘우치고 그래서 하느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인간다움에 대한 열정 때문이 아닐까요? 비록 누군가가 아무리 나쁘더라도 늘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신약 성경에 나타나시는 성령께서는 화합과 용서의 힘을 간직하도록 신앙인을 도우십니다. 서로 달라도 하나의 신앙을 지켜 나가도록 우리에게 용기를 주십니다. 서로가 다른 것이 당연하듯, 서로가 하나로 일치하는 것이 성령의 세상에서는 당연합니다. 다름을 틀림으로 생각하는 것이 진정한 악마입니다. 악마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서로를 품어 주어야겠습니다. 다름에 대한 적응, 이것이 참 좋은 세상을 향한 우리의 첫걸음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Posted by 에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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