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하느님께서는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어떤 것은 서른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거둔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네 뒤를 이을 후손을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7,4-17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그 무렵 4주님의 말씀이 나탄에게 내렸다. 5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말하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살 집을 네가 짓겠다는 말이냐?
6 나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어떤 집에서도 산 적이 없다. 천막과 성막 안에만 있으면서 옮겨 다녔다.
7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과 함께 옮겨 다니던 그 모든 곳에서,
내 백성 이스라엘을 돌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의 어느 지파에게,
어찌하여 나에게 향백나무 집을 지어 주지 않느냐고
한마디라도 말한 적이 있느냐?’
8 그러므로 이제 너는 나의 종 다윗에게 말하여라.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양 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웠다.
9 또한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물리쳤다.
나는 너의 이름을 세상 위인들의 이름처럼 위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10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곳을 정하고,
그곳에 그들을 심어 그들이 제자리에서 살게 하겠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는 전처럼, 불의한 자들이 그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11 곧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판관을 임명하던 때부터 해 온 것처럼,
나는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평온하게 해 주겠다.
더 나아가 주님이 너에게 한 집안을 일으켜 주리라고 선언한다.
12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13 그는 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짓고,
나는 그 나라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할 것이다.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가 죄를 지으면 사람의 매와 인간의 채찍으로 그를 징벌하겠다.
15 그러나 일찍이 사울에게서 내 자애를 거둔 것과는 달리,
그에게서는 내 자애를 거두지 않겠다.
16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17 나탄은 이 모든 말씀과 환시를 다윗에게 그대로 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1-20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그때에 1 예수님께서 호숫가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너무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그분께서는 호수에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모두 호숫가 뭍에 그대로 있었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가르치셨다.
그렇게 가르치시면서 말씀하셨다.
3 “자, 들어 보아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5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8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어떤 것은 서른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9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10 예수님께서 혼자 계실 때,
그분 둘레에 있던 이들이 열두 제자와 함께 와서 비유들의 뜻을 물었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만 다가간다.
12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저들이 돌아와 용서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13 예수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겠느냐?
그러면서 어떻게 모든 비유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14 씨 뿌리는 사람은 실상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15 말씀이 길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들이 말씀을 들으면 곧바로 사탄이 와서
그들 안에 뿌려진 말씀을 앗아 가 버린다.
16 그리고 말씀이 돌밭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17 그러나 그들에게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18 말씀이 가시덤불 속에 뿌려지는 것은 또 다른 사람들이다.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19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가,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20 그러나 말씀이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어떤 이는 서른 배,
어떤 이는 예순 배, 어떤 이는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씨앗의 운명이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면, 더욱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 좋을 테지요. 서른 배보다는 예순 배, 예순 배보다는 백 배의 열매가 백번 나은 것이겠지요. 그러나 씨앗을 우리 삶에 빗대어 보자면, 씨앗이 뿌려진 흙의 상태가 천차만별이라 열매를 얼마나 맺을지 가늠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일까요, 늘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오늘도 얼마간의 요행을 바라며 삶의 씨앗을 곳곳에 뿌려 보기도 합니다.

말씀을 씨앗에 빗대어 표현하는 예수님의 가르침도 다양한 땅의 모습을 염두에 둔 흔적을 담아냅니다. 길, 돌밭, 가시덤불, 그리고 좋은 땅 ……. 어찌 보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길과 돌밭, 가시덤불에 떨어져 버린 말씀의 씨앗은 온갖 역경에 내던져진 가엾은 존재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무조건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논리는 그 씨앗에게는 크나큰 상처일 수 있겠지요.

교회의 역사 속에 열매 맺지 못한 말씀의 씨앗도 있었지만, 말씀은 끊이지 않고 우리 신앙인의 삶 속에 울려 퍼졌습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식의 경쟁적 말씀 선포와 승리주의의 우월적 선교는 진정한 말씀의 선포가 아닐 것입니다. 말씀은 길과 돌밭, 가시덤불 속에서 뿌려졌고, 그런 말씀의 아픔들이 있었기에 어딘가에 열매를 맺는 말씀의 기쁨들이 생겨난 것이겠지요.

오늘의 아픔을 제거한 자리에 말씀이 열매 맺지 않습니다. 아픔 속에 아파하는 이들 덕택에 오늘의 신앙이 따사로운 햇살 속에 무럭무럭 자라는 것입니다. 열매 맺는 씨앗 옆에 숨 막혀 죽어 가는 씨앗들이 있음을 기억해야겠습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Posted by 에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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