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아브람의 가축을 치는 목자들과 롯의 가축을 치는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자, 롯은 요르단 들판을 선택하고 동쪽으로 옮겨 간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라며,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너와 나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한 혈육이 아니냐?>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13,2.5-18
2 아브람은 가축과 은과 금이 많은 큰 부자였다.
5 아브람과 함께 다니는 롯도 양과 소와 천막들을 가지고 있었다.
6 그래서 그 땅은 그들이 함께 살기에는 너무 좁았다.
그들의 재산이 너무 많아 함께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7 아브람의 가축을 치는 목자들과
롯의 가축을 치는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때 그 땅에는 가나안족과 프리즈족이 살고 있었다.
8 아브람이 롯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한 혈육이 아니냐? 너와 나 사이에,
그리고 내 목자들과 너의 목자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9 온 땅이 네 앞에 펼쳐져 있지 않느냐? 내게서 갈라져 나가라.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
10 롯이 눈을 들어 요르단의 온 들판을 바라보니,
초아르에 이르기까지 어디나 물이 넉넉하여
마치 주님의 동산과 같고 이집트 땅과 같았다.
그때는 주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기 전이었다.
11 롯은 요르단의 온 들판을 제 몫으로 선택하고 동쪽으로 옮겨 갔다.
이렇게 두 사람은 서로 갈라지게 되었다.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서 살고, 롯은 요르단 들판의 여러 성읍에서 살았다.
롯은 소돔까지 가서 천막을 쳤는데,
13 소돔 사람들은 악인들이었고, 주님께 큰 죄인들이었다.
14 롯이 아브람에게서 갈라져 나간 다음,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눈을 들어 네가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을, 또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아라.
15 네가 보는 땅을 모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히 주겠다.
16 내가 너의 후손을 땅의 먼지처럼 많게 할 것이니,
땅의 먼지를 셀 수 있는 자라야 네 후손도 셀 수 있을 것이다.
17 자, 일어나서 이 땅을 세로로 질러가 보기도 하고
가로로 질러가 보기도 하여라. 내가 그것을 너에게 주겠다.”
18 아브람은 천막을 거두어,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의 참나무들 곁으로 가서 자리 잡고 살았다.
그는 거기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6.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6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12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13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14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이라는 ‘선민의식’이 가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선민의식은 자연스럽게 ‘이스라엘=하느님 백성’이라는 도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지닌 민족의 정체성과 민족주의적 사고는 강한 배타성을 지닙니다. 게다가 자신들이 하느님의 백성이듯이 하느님께서는 자신들만의 하느님으로 계셔야 한다는 신학적 명제를 제시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닌 선민의식과 강한 정체성은 하느님을 전능하신 창조주며 모든 민족들의 하느님이 아닌, 이스라엘만의 민족 신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이런 보수적 신학의 입장을 거부하는 신학도 있습니다. 하느님 백성이 되는 길은 단순하게 혈통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견해입니다. 중요한 것은 혈통이 아니라, 윤리적 가르침과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충실하게 살아가는 이라면, 누구라도 하느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혈통이 아닌, 윤리 중심의 공동체를 지향하고, 이를 위한 표현으로 시편에서는 “주님, 누가 당신 천막에 머물 수 있습니까?”(시편 15[14],1)라고 노래합니다. 기존의 가르침에서는 하느님의 천막인 주님의 집에 머무는 것은 유다인에게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화답송에서는 의로운 사람, 악의와 불의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 이웃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성별이나 민족이나 능력을 떠나서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거듭난 하느님 백성이며, 그분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자격을 얻은 것은 모태 신앙이거나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견진성사를 받아서는 더더욱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주님의 가르침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하였다면, 남에게 바라는 그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실천하면서 다시 주님의 장막에 머물 수 있는 신앙인의 특권을 누려 봅시다.
(박형순 바오로 신부)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