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누구든지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의 사랑이 완성된다고 한다(제1독서). 정결례 날, 시메온은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받아 안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아기가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리라고 한다(복음). 

제1독서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무릅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2,3-11
사랑하는 여러분, 3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그것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4 “나는 그분을 안다.” 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5 그러나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 사랑이 완성됩니다.
그것으로 우리가 그분 안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6 그분 안에 머무른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도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7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이 아니라,
여러분이 처음부터 지녀 온 옛 계명입니다.
이 옛 계명은 여러분이 들은 그 말씀입니다.
8 그러면서도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도 또 여러분에게도 참된 사실입니다.
어둠이 지나가고 이미 참빛이 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9 빛 속에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있는 자입니다.
10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무르고,
그에게는 걸림돌이 없습니다.
11 그러나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 속에 있습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서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리스도는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십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22-35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마리아와 요셉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하고 첫아들을 주님께 봉헌하고자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출산한 여인은 사십 일 동안 불결한 사람으로 간주되었기에,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일년생 어린양 한 마리와 비둘기 한 마리를 제물로 바쳐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만 다시 정결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첫아들을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맏배는 하느님의 것이요 주님을 섬겨야 하기에 하느님께 봉헌해야 하였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이집트인들의 맏배를 치실 때 자기의 맏배들을 죽음에서 구해 주신 것을 기억하고, 그 후손들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레위인들은 첫아들을 사제로 봉헌하여 성전에서 봉사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은 맏아들을 봉헌하는 대신에 다섯 세켈(20데나리온)의 돈을 성전에 바쳤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아들을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그 아들은 내게 가장 소중한 것, 가장 소중한 열정, 가장 소중한 사람, 가장 소중한 사랑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처럼 이렇게 소중한 것을 하느님께 봉헌해야 합니다. 그러나 온전한 봉헌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들어 알기는 하지만, 그래도 쉽게 놓을 수 없습니다. 그리 쉽다면 우리는 나약한 인간이 아닐 것이고, 아마도 그것이 소중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또 한 번 매달립니다. “제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 바치고서 홀로 어찌하란 말씀입니까? 이것마저 없으면 저는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 엎드려 통곡합니다. “다른 모든 것을 내드릴 터이니 제 아들만 제게 남겨 주십시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하느님과 씨름한 뒤에야 비로소 애착에서 벗어나 평화 속에 하느님과 함께 걸을 수 있습니다.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요?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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