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교회마다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하며 기도한 뒤에 주님께 그들을 의탁하고 안티오키아로 간다(제1독서). 요한은, 어좌에 앉으신 분께서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신다는 소리를 듣는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시며, 서로 사랑하라고 이르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을 교회에 보고하였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복음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오늘의 묵상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는 그 나름대로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리를 삶에서 실천하도록 계명을 제시합니다. 그리스도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그리스도교의 계명은 “사랑하여라!”로 요약됩니다. 그런데 이 계명의 목적어가 구약과 신약이 조금씩 다르고, 또 신약에서도 공관 복음과 요한 복음이 서로 다릅니다.
먼저, 구약에서는 대표적인 목적어가 “주 하느님”으로 되어 있습니다. 유다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쉐마 이스라엘’(이스라엘아, 들어라.)에서 이것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5). 공관 복음을 보면 신약의 예수님께서도, 구약의 전통 안에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가는 계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계명에 레위기 19장 18절에서 발견되는 이웃 사랑에 대한 계명을 덧붙여 ‘사랑하여라!’는 계명의 목적어를 이중으로, 곧 하느님과 이웃으로 밝혀 놓았습니다.
그런데 요한 복음에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 사랑의 이중 계명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예수님께서 주신 새롭고 유일한 계명이 “서로 사랑하여라.”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어지는 요한 복음 15장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서로 사랑하여라”(15,12.17).
따라서 적어도 요한 복음에서 ‘사랑하여라!’는 계명의 목적어가 분명히 하느님에게서 사람에게 옮겨 오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사랑이 한쪽의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라, 서로 간의 사랑이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단 하나의 계명을 마음에 새기며, 오늘은 ‘서로’라는 낱말에 주목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요한의 첫째 편지가 들려주는 다음의 말씀도 함께 기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1요한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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