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나훔 예언자는 피의 성읍인 니네베의 멸망을 예고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라고 하시며,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올 때는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인데,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불행하여라, 피의 성읍!>
▥ 나훔 예언서의 말씀입니다.2,1.3; 3,1-3.6-7
1 보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 평화를 알리는 이의 발이 산을 넘어온다.
유다야, 축일을 지내고 서원을 지켜라.
불한당이 다시는 너를 넘나들지 못할 것이다. 그는 완전히 망하였다.
3 약탈자들이 그들을 약탈하고 그들의 포도나무 가지들을 망쳐 버렸지만
정녕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영예처럼 야곱의 영예를 되돌려 주시리라.
3,1 불행하여라, 피의 성읍!
온통 거짓뿐이고 노획물로 가득한데 노략질을 그치지 않는다.
2 채찍 소리, 요란하게 굴러가는 바퀴 소리, 달려오는 말, 튀어 오르는 병거,
3 돌격하는 기병, 번뜩이는 칼, 번쩍이는 창, 수없이 살해된 자들, 시체 더미,
끝이 없는 주검. 사람들이 주검에 걸려 비틀거린다.
6 나는 너에게 오물을 던지고 너를 욕보이며 구경거리가 되게 하리라.
7 너를 보는 자마다 너에게서 달아나며
“니네베가 망하였다! 누가 그를 가엾이 여기겠느냐?” 하고 말하리니
내가 어디서 너를 위로해 줄 자들을 찾으랴?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24-28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곤경의 날에 우리는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우리는 근심과 곤경 가운데 더욱더 주님께 다가가 간절히 기도합니다. 복음서를 보면 군중들은 예수님을 자신들 곁에 붙들어 두려고 하였습니다.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그분께서 계시는 곳까지 가서,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루카 4,42). 그리고 그분께 매달리고 그분께 손을 대었습니다(루카 6,19 참조). 사람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간 것은 생명을 얻으려는 행동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이것을 아시고 반기셨습니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10). 
그런데 그분의 말씀에는 역설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생명을 얻으려면 오히려 그것을 잃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요한 10,17). 또 당신의 이런 선택을 씨앗에 비유하기도 하셨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생명을 얻으려면 오히려 생명이 죽음에 이르도록 철저히 경멸해야 한다는 말씀을 받아들이기까지 우리에게는 정말 큰 믿음이 필요합니다. 
요한 묵시록은 환난을 이겨 내고 생명을 얻은 이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죽기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12,11).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후손을 약속하셨지만 대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바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시험이 여전히 많은 신앙인에게 따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을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을 약속하셨지만, 곧바로 십자가를 향한 여정을 걸으셨고 죽음을 맞으셨습니다. 그러고는 부활하실 것이라는 당신 말씀대로 부활하셨습니다. 복음서는 세 번에 걸쳐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합니다. 그리스도를 뒤따라 사는 우리도 그분과 함께 죽고 부활해야 한다는, 신앙의 여정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살기를 원하는데 죽어야 하는가?’ ‘행복을 원하는데 불행을 감당해야 하는가?’ 이 질문의 답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신자는 고통이 아니라 사랑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고통을 동반하며, 희생을 요구합니다. 십자가는 사랑의 상징이고 선물의 표지입니다. 제자는 스승보다 나을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 6,68). 

(정용진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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