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베르나르도 성인은 1190년 프랑스 디종의 근교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그는 시토 수도회에 입회하였고, 뒤에 클레르보 수도원의 아빠스(대수도원장)가 되었다. 베르나르도 아빠스는 자신의 생활에서 모범을 보이며 수도자들을 덕행의 길로 이끌었다. 또한 그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분열을 막고자 유럽 각지를 다니며 설교하였고, 신학과 영성 생활에 관한 저서도 많이 남겼다. 1153년에 선종한 베르나르도 아빠스를 1174년 알렉산데르 3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1830년 비오 8세 교황은 성인을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제1독서

<기드온, 이스라엘을 구원하여라. 바로 내가 너를 보낸다.>

▥ 판관기의 말씀입니다. 6,11-24ㄱ

그 무렵 11 주님의 천사가 아비에제르 사람 요아스의 땅 오프라에 있는 향엽나무 아래에 와서 앉았다. 그때에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은 미디안족의 눈을 피해 밀을 감추어 두려고, 포도 확에서 밀 이삭을 떨고 있었다. 12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힘센 용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하고 말하였다.
13 그러자 기드온이 천사에게 물었다. “나리,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계시다면, 어째서 저희가 이 모든 일을 겪고 있단 말입니까? 저희 조상들이 ‘주님께서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오지 않으셨더냐?’ 하며 이야기한 주님의 그 놀라운 일들은 다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은 주님께서 저희를 버리셨습니다. 저희를 미디안의 손아귀에 넘겨 버리셨습니다.”
14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너의 그 힘을 지니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족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여라. 바로 내가 너를 보낸다.”
15 그러자 기드온이 말하였다. “나리,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제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단 말입니까? 보십시오, 저의 씨족은 므나쎄 지파에서 가장 약합니다. 또 저는 제 아버지 집안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자입니다.”
16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겠다. 그리하여 너는 마치 한 사람을 치듯 미디안족을 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17 그러자 기드온이 또 말하였다. “참으로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신다면, 저와 이 말씀을 하시는 분이 당신이시라는 표징을 보여 주십시오. 18 제가 예물을 꺼내다가 당신 앞에 놓을 터이니, 제가 올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마십시오.” 이에 주님께서, “네가 돌아올 때까지 그대로 머물러 있겠다.” 하고 대답하셨다.
19 기드온은 가서 새끼 염소 한 마리를 잡고 밀가루 한 에파로 누룩 없는 빵을 만들었다. 그리고 고기는 광주리에, 국물은 냄비에 담아 가지고 향엽나무 아래에 있는 그분께 내다 바쳤다.
20 그러자 하느님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고기와 누룩 없는 빵을 가져다가 이 바위 위에 놓고 국물을 그 위에 부어라.”
기드온이 그렇게 하였더니, 21 주님의 천사가 손에 든 지팡이를 내밀어, 그 끝을 고기와 누룩 없는 빵에 대었다. 그러자 그 큰 돌에서 불이 나와 고기와 누룩 없는 빵을 삼켜 버렸다. 그리고 주님의 천사는 그의 눈에서 사라졌다.
22 그제야 기드온은 그가 주님의 천사였다는 것을 알고 말하였다. “아, 주 하느님, 제가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주님의 천사를 뵈었군요!” 23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죽지 않는다.” 하고 말씀하셨다.
24 그래서 기드온은 그곳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주님은 평화’라고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23-30

그때에 2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24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25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몹시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말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27 그때에 베드로가 그 말씀을 받아 예수님께 물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2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 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29 그리고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30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이러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하느님을 믿으라고? 아니야. 난 나를 믿어.” 어느 누구에게 의지하기보다 열심히 살면 된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나를 믿는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독일 출신의 유명한 철학자 야스퍼스에 따르면, 인간은 죄와 고통, 허무와 죽음 같은 한계 상황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은 본디 이 한계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지만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종교란 바로 이러한 인간의 한계 상황을 벗어난 영역, 곧 초월적인 영역을 제시하고 안내하며 이끌어 주는 공동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한계 상황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여기서 부자는 단순히 돈 많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힘’에 의존하는 이를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며 의아하게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무슨 일이든 하실 수 있다”(『공동번역 성서』 인용).
사람의 힘, 그것이 권력이든 재력이든 사교술이든, 또는 인내력이나 기획력, 창의력 등 어떤 능력이든 그 힘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그 능력들이 인간의 한계 상황을 벗어나게 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그 능력에 의존하는 정도가 크면 클수록 죄와 고통, 허무와 죽음 같은 한계 상황은 더욱 뚜렷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사람의 힘에 의지하며 사는 부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1. 유경주아녜스 2013.08.20 14:02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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