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이스라엘 자손들은 예리코 벌판에서 파스카 축제를 지내고 그 땅의 소출을 먹는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이라며, 하느님과 화해하라고 권고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고 돌아온 아들을 따뜻이 맞아 주는 아버지의 비유를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의 백성은 약속된 땅에 들어가서 파스카 축제를 지냈다.>

▥ 여호수아기의 말씀입니다. 5,9ㄱㄴ.10-12
그 무렵 9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서 이집트의 수치를 치워 버렸다.”
10 이스라엘 자손들은 길갈에 진을 치고,
그달 열나흗날 저녁에 예리코 벌판에서 파스카 축제를 지냈다.
11 파스카 축제 다음 날
그들은 그 땅의 소출을 먹었다.
바로 그날에 그들은 누룩 없는 빵과 볶은 밀을 먹은 것이다.
12 그들이 그 땅의 소출을 먹은 다음 날
만나가 멎었다.
그리고 더 이상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만나가 내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해에 가나안 땅에서 난 것을 먹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5,17-21
형제 여러분, 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18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기신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19 곧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면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20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의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3.11ㄴ-32
그때에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1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12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13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14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15 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16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17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18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19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20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21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22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24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25 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26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27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28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29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30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31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32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 드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대던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들려준 비유입니다. 이렇게 보면 비유 속 첫째 아들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상징하고, 아버지 가산을 탕진하고 후회하며 돌아오는 둘째 아들은 세리와 죄인들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리와 죄인들을 너무나 싫어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밥을 먹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죄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기꺼이 맞아들이시어 그들과 음식을 드시며 잔치를 벌이십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며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못마땅해 합니다. 
비유 속 큰아들의 대사는 그들의 생각을 대변합니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그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이 말을 듣고 큰아들인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복음서는 큰아들의 반응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는 일종의 열린 결론입니다. 바로, 독자인 우리가 큰아들이라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한번 생각해 보라는 일종의 초대입니다. (염철호 요한 신부)


1일 가톨릭교리(출처:가톨릭교리서 요약본)


409. 공동선이 두드러지게 실현되는 곳은 어디인가?

공동선은 정치 공동체 안에서 가장 완전하게 실현된다. 국가는 전 인류 가족의 공동선을 잊어버리지 않으면서 시민들과 중간 집단들의 공동선을 보호하고 증진시켜야 한다.

 

410. 인간은 공동선을 어떻게 실현하는가?

모든 인간은 각자가 차지하고 있는 지위와 맡은 일에 따라 공동선을 증진하는 데 참여한다. 모든 인간은 정당한 법을 준수하고 또 그 자신이 개인적으로 책임을 맡고 있는 분야의 과제들, 예컨대 자기 가족을 돌보는 일과 직장 일을 수행함으로써 참여한다. 그뿐 아니라 시민들은 될 수 있는 대로 공공 생활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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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호세아 예언자는,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이고,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 비유를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6,1-6
1 자, 주님께 돌아가자.
그분께서 우리를 잡아 찢으셨지만 아픈 데를 고쳐 주시고
우리를 치셨지만 싸매 주시리라.
2 이틀 뒤에 우리를 살려 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어
우리가 그분 앞에서 살게 되리라.
3 그러니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
그분의 오심은 새벽처럼 어김없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비처럼,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시리라.
4 에프라임아,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너희의 신의는 아침 구름 같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슬 같다.
5 그래서 나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들을 찍어 넘어뜨리고
내 입에서 나가는 말로 그들을 죽여 나의 심판이 빛처럼 솟아오르게 하였다.

6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9-14
그때에 9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루카 16,14-15는 그들을 두고,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로 사람들에게는 높이 평가받지만 하느님 앞에서 혐오스러운 자들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런 바리사이가 오늘 비유에서는 “꼿꼿이 서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 곧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 간음하는 자와 같지 않다는 것에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자신이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것에 감사드리는 이 기도 방식은 유다인들이 초세기부터 고유하게 바치던 기도 방식 가운데 하나였는데,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는 같이 기도하고 있던 세리를 지목하며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일주일에 두 번이나 단식하며, 십일조를 낸다고 자랑합니다. 
바리사이와 달리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느님께 간청합니다. 이 모습을 두고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높일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질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죄인임이 드러나 하느님 앞에서 혐오스러운 자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세리처럼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이웃을 업신여기는 법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웃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하느님 앞에서 의롭다고 불리게 될 것입니다. (염철호 요한 신부)


1일 가톨릭교리(출처:가톨릭교리서 요약본)


407. 공동선은 무엇인가?

공동선은 집단이든 개인이든 자기 완성을 추구하도록 하는 사회생활 조건의 총화를 말한다.

 

408. 공동선은 무엇을 전제하는가?

공동선은 인간 기본권의 존중과 신장, 사람들과 사회의 정신적 물질적 선익의 발전, 모든 이의 평화와 안전을 전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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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호세아 예언자는,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죄인들은 그 길에서 비틀거릴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큰 계명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4,2-1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2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 너희는 죄악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3 너희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돌아와 아뢰어라.
‘죄악은 모두 없애 주시고 좋은 것은 받아 주십시오.
이제 저희는 황소가 아니라 저희 입술을 바치렵니다.
4 아시리아는 저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저희가 다시는 군마를 타지 않으렵니다.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고아를 가엾이 여기시는 분은 당신뿐이십니다.’
5 그들에게 품었던 나의 분노가 풀렸으니
이제 내가 반역만 꾀하는 그들의 마음을 고쳐 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해 주리라.
6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
7 이스라엘의 싹들이 돋아나 그 아름다움은 올리브 나무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으리라.
8 그들은 다시 내 그늘에서 살고 다시 곡식 농사를 지으리라.
그들은 포도나무처럼 무성하고 레바논의 포도주처럼 명성을 떨치리라.
9 내가 응답해 주고 돌보아 주는데 에프라임이 우상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나는 싱싱한 방백나무 같으니 너희는 나에게서 열매를 얻으리라.
10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죄인들은 그 길에서 비틀거리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니,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28ㄱㄷ-34
그때에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28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 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이는 당시 율법 학자들 사이에서 매우 많은 관심을 가지던 주제입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바치는 기도문인 “쉐마, 이스라엘”, 곧 “이스라엘아, 들어라.”라고 시작하는 신명 6,4-5의 구절을 들어서 하느님 사랑이 첫째가는 계명임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레위 19,18에 나오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두 번째 계명이라고 밝히십니다. 
예수님의 대답을 들은 율법 학자는 예수님께서 잘 알고 계시다고 말하면서, 구약 성경 구절들(1사무 15,22; 시편 40〔39〕,7-9; 이사 1,11-17; 호세 6,6)을 들어 한 분이신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보다 더 낫다고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올바로 답하는 율법 학자를 보시고 그가 참으로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다고 선언하십니다. 여기서 오늘 등장한 율법 학자가 예수님을 그냥 떠보는 사람이 아니라 참으로 진리를 찾고자 하는 지혜로운 사람이었음이 드러납니다. 
이렇게 보니 모든 유다 지도자가 예수님을 반대한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분을 올바로 깨닫는 이들이 있었기에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오늘날도 예수님 이야기는 당신을 올바로 깨닫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온 세상에 전파됩니다. (염철호 요한 신부)


1일 가톨릭교리(출처:가톨릭교리서 요약본)


405. 사회 안에서 권위(공권력)는 어떤 기초 위에 서 있는가?

인간의 모든 공동체에는 질서를 지켜 주고 공동선에 이바지하는 합당한 권위가 있어야 한다. 이 권위는 하느님께서 세워 주신 것이므로 그 근거는 인간의 본성에 있다.

 

406. 권위는 언제 합법적으로 행사되는가?

권위(공권력)는 공동선을 추구하고, 또한 공동선을 달성하려고 도덕적으로 합당한 방법들을 사용해야 비로소 정당하게 행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 체제들은 시민들의 자유로운 결단에 따라 채택되

어야 하고, 또 사람들의 독단적 의사가 아니라 법에 따라 다스려지는 법치 국가의 원리들을 존중하여야 한다. 옳지 못한 법률과 윤리 질서에 어긋나는 조치들은 양심을 구속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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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예레미야 예언자는 백성에게, 주님께서 명령하신 길만 온전히 걸으면 잘될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당신을 반대하는 자고, 당신과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이 민족은 주 그들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민족이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7,23-28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내 백성에게 23 이런 명령을 내렸다.
‘내 말을 들어라.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길만 온전히 걸어라. 그러면 너희가 잘될 것이다.’
24 그러나 그들은 순종하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제멋대로 사악한 마음을 따라 고집스럽게 걸었다.
그들은 앞이 아니라 뒤를 향하였다.

25 너희 조상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내 모든 종들, 곧 예언자들을 날마다 끊임없이 그들에게 보냈다.
26 그런데도 그들은 나에게 순종하거나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목을 뻣뻣이 세우고 자기네 조상들보다 더 고약하게 굴었다.
27 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씀을 전하더라도 그들은 네 말을 듣지 않을 것이고,
그들을 부르더라도 응답하지 않을 것이다.
28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이 민족은 주 그들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은 민족이다.
그들의 입술에서 진실이 사라지고 끊겼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4-23
그때에 14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마귀가 나가자 말을 못하는 이가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군중이 놀라워하였다.
15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16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18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19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21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22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탈출 8,15에서 파라오의 요술사들은 하느님께서 일으키신 재앙을 보고 이렇게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손가락이 하신 일입니다.” 그리고 탈출 31,18에서 돌로 된 두 증언판을 하느님께서는 당신 손가락으로 직접 쓰셔서 모세에게 주십니다. 또한 시편 8편은 세상 모든 창조물을 하느님 손가락이 만드신 작품이라고 노래합니다. 이렇게 구약 성경은 창조, 계약, 구원 등 모든 것이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이루어진 일들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신 뒤, 당신께서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이 모든 일을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신원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당신은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하느님의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통치가 예수님에게서 온전히 드러납니다.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모든 일을 하고 계시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몇 사람은 예수님이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합니다. 제1독서의 예레 7,26이 이야기하듯 목이 뻣뻣해져 자기네 조상들보다 더 고약하게 되어 버린 것일까요? 그들의 조상들도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이루어진 일들을 보면서도 목이 뻣뻣해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40년간 떠돌았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목이 뻣뻣해져 바빌론 유배까지 겪게 됩니다. 
오늘 화답송은 이렇게 목이 뻣뻣해진 이들에게 분명히 외칩니다.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지금 우리의 목은 어떤가요? (염철호 요한 신부)


1일 가톨릭교리(출처:가톨릭교리서 요약본)


403. 보조성의 원리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보조성의 원리란 상위층의 사회는 하위층 사회의 내적 사안에 간섭하여 그 고유의 임무를 제거하면 안 되고, 오히려 반대로 필요한 경우에 하위층 사회를 도와주어야 함을 말한다.

 

404. 진정한 인간 사회는 무엇을 요구하는가?

물질적이고 본능적 차원을 내적이고 정신적인 차원에 종속시키는 정의로운 가치 체계와 정의가 존중되어야 한다. 특히 죄 때문에 사회의 분위기가 혼탁해지는 곳에서 실제로 각 사람과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회적 변화를 가져오려면 사람들에게 마음의 회개를 촉구하고 하느님의 은총을 청해야 한다. 정의의 실천을 요구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게 해 주는 사랑은 가장 큰 사회적 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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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모세는 백성에게,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규정과 법규들을 잘 지키고 실천하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너희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지키고 실천하여라.>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4,1.5-9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가르쳐 주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들어라.
그래야 너희가 살 수 있고,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곳을 차지할 것이다.

5 보아라, 너희가 들어가 차지하게 될 땅에서 그대로 실천하도록,
나는 주 나의 하느님께서
나에게 명령하신 대로 규정과 법규들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었다.
6 너희는 그것들을 잘 지키고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민족들이 너희의 지혜와 슬기를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 모든 규정을 듣고,
‘이 위대한 민족은 정말 지혜롭고 슬기로운 백성이구나.’ 하고 말할 것이다.
7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8 또한 내가 오늘 너희 앞에 내놓는 이 모든 율법처럼
올바른 규정과 법규들을 가진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9 너희는 오로지 조심하고 단단히 정신을 차려,
너희가 두 눈으로 본 것들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그것들이 평생 너희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하여라.
또한 자자손손에게 그것들을 알려 주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7-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제1독서에서 모세는 시나이산 계약 때 하느님께서 명하신 율법 규정과 법규들을 잘 지키고, 그 가르침을 잊지 말며, 자자손손에게 일러 주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그래야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곳을 차지할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서를 읽다 보면 예수님께서 종종 율법 규정을 어기시는 모습을 보이시기에, 예수님을 마치 하느님의 율법을 없애러 오신 분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당신께서는 율법을 없애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고 말입니다. 율법의 정신을 다시 올바로 세우시어 모두가 하느님 계명을 지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그래서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 곧 하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하려고 오셨다고 말합니다. 
오늘 대목에 이어지는 산상 설교(마태 5―7장)는 모두 모세의 율법 규정을 새롭게 해석하시는, 곧 그 정신을 바로 세우시는 말씀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두고 하느님의 뜻이라고 하시며, 그 뜻을 지키는 사람만이 약속의 땅인 하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마태 7,21 참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참된 율법 정신을 알고 있는 위대한 스승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삶으로써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새 계약의 이스라엘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 가르침을 믿음의 후손들에게 계속 전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 이들은 하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염철호 요한 신부)


1일 가톨릭교리(출처:가톨릭교리서 요약본)


401. 인간의 사회적 차원은 무엇인가?

인간은 하느님의 행복으로 들어오라는 요구를 받고 있으므로 그의 본성과 소명의 근본 요소로 사회적 차원을 지닌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동일한 목적, 곧 하느님을 향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진리와 사랑 안에서 사람들이 이루어야 하는 형제애와 성삼위의 친교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분리할 수 없다.

 

402. 인간(개인)과 사회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모든 사회 제도의 근본과 주체와 목적은 인간이어야 한다. 가정이나 국가와 같은 사회들은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이다. 다른 사회 단체들도 보조성의 원리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정치적 공동체 안에서는 물론이요 세계적 차원에서도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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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아자르야는 주님의 자비를 거두지 말아 달라고 불 한가운데에 우뚝 서서 기도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임금의 비유를 드시며,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저희의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을 받아 주소서.>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25.34-43
그 무렵 25 아자르야는 불 한가운데에 우뚝 서서
입을 열어 이렇게 기도하였다.
34 “당신의 이름을 생각하시어 저희를 끝까지 저버리지 마시고
당신의 계약을 폐기하지 마소서.
35 당신의 벗 아브라함, 당신의 종 이사악, 당신의 거룩한 사람 이스라엘을 보시어
저희에게서 당신의 자비를 거두지 마소서.
36 당신께서는 그들의 자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37 주님, 저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저희의 죄 때문에
저희는 오늘 온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백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38 지금 저희에게는 제후도 예언자도 지도자도 없고
번제물도 희생 제물도 예물도 분향도 없으며
당신께 제물을 바쳐 자비를 얻을 곳도 없습니다.
39 그렇지만 저희의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을 보시어
저희를 숫양과 황소의 번제물로,
수만 마리의 살진 양으로 받아 주소서.
40 이것이 오늘 저희가 당신께 바치는 희생 제물이 되어
당신을 온전히 따를 수 있게 하소서.
정녕 당신을 신뢰하는 이들은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41 이제 저희는 마음을 다하여 당신을 따르렵니다.
당신을 경외하고 당신의 얼굴을 찾으렵니다.
저희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 주소서.
42 당신의 호의에 따라,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희를 대해 주소서.
43 당신의 놀라운 업적에 따라 저희를 구하시어
주님, 당신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21-35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7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임금은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의 빚을 모두 탕감해 줍니다. 한 탈렌트가 6,000데나리온, 곧 6,000명의 숙련공 일당이니, 만 탈렌트면 오늘날 우리 돈으로 몇 조 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 이런 빚을 갚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임금은 가엾은 마음에 그를 놓아주고, 부채를 탕감해 줍니다. 
그런데 어마어마한 돈을 탕감받은 사람이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곧 천만 원가량 빚진 동료를 만나자 감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그가 갚겠다고 말했는데도 들어주지 않습니다. 이 장면을 보고 있던 동료 종들이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그 일을 죄다 일러바칩니다. 그러자 주인은 그 매정한 종을 잡아들여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라고 말하며 모든 빚을 다 갚으라고 명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하느님께 창조 이래로 이어진 죄의 고리 속에 빠져 있습니다. 곧, 우리 모두가 바로 임금에게 만 탈렌트를 빚진 종들입니다. 그런데 임금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피로 우리 빚을 모두 탕감해 주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 덕분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 곧 백 데나리온이 아니라 열 데나리온, 아니 한 데나리온을 빚진 이마저 용서하기 힘들어 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오늘 복음은 분명히 밝힙니다.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아버지께서도 용서해 주신 것들을 다 갚도록 만드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염철호 요한 신부)


1일 가톨릭교리(출처:가톨릭교리서 요약본)


399. 다른 이들이 지은 죄에 대하여 우리의 책임이 있는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죄에 협력하면 거기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

 

400. 죄의 구조들은 무엇인가?

죄의 구조들은 하느님의 법에 반대되는 사회적 상황이나 제도들, 개인들이 지은 죄의 표현이며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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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몸소 표징을 보여 주실 것인데,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한다(제1독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다고 한다(제2독서). 천사가 마리아에게,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자, 마리아는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한다(복음).

제1독서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할 것입니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7,10-14; 8,10ㄷ
그 무렵 10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르셨다.
11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
12 아하즈가 대답하였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13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14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8,10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0,4-10
형제 여러분, 4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5 그러한 까닭에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6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7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8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6-38
그때에 26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오늘의 묵상

성경에서 하느님께 사명을 부여받는 이들은 하느님의 보증으로 종종 듣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판관 6,12; 1역대 22,11.16)입니다. 주님께 파견되는 이, 주님의 사명을 맡은 이들에게 주님께서 함께 계시리라는 약속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도 천사는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라고 말하며, 마리아에게 성령이 내려와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그녀를 덮어, 그녀가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을 낳게 될 것이라고 알려 줍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큰 은총을 받았으므로 기뻐하라고, 또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권고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 선택받은 이, 하느님의 총애를 입은 이는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하시기에 자신이 받은 임무를 반드시 완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임무를 완수하는 것은 그의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오직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면 그만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마리아의 순종으로 엄청난 일이 이루어집니다. 교회는 마리아가 천사의 말을 받아들인 순간 그 태중에 예수님께서 잉태되셨다고 생각합니다. 마리아가 하느님께 철저히 순종한 그 순간 온 세상의 구원자께서 우리 가운데 오시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보니 마리아가 들은 인사말, 곧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는 단순히 마리아만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말씀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염철호 요한 신부)


1일 가톨릭교리(출처:가톨릭교리서 요약본)


397. 죄는 우리 안에서 어떻게 증식되는가?

죄는 죄로 이끌며, 같은 행위를 되풀이함으로써 악습을 낳는다.

 

398. 악습은 무엇인가?

덕과 반대되는 악습은 양심을 흐리게 하고 악으로 기울게 하는 사악한 습관이다. 악습은 죄종(罪宗)이라는 일곱 가지 죄와 연관시킬 수 있다. 죄종은 교만, 인색, 시기, 분노, 음욕, 탐욕, 나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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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어느새 겨울이 지나가고 따듯한 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만드신 아름다운 자연 속으로 성서가족들과 함께 소풍을 떠나고자 합니다.

2019년 상반기 만남의 잔치를 안내드리니 꼭 함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장소 : 사봉공소(정찬문 안토니오 순교성지)
※ 주소 : 진주시 사봉면 동부로1751번길 46-6

 

- 일시 : 3.31. 주일 오전 11:00 ~ 오후 4:30

- 대상 : 성서연수를 수료한 성서가족 누구나

- 내용 : 기도와 찬양, 친교, 주일미사

-준비물 : 점심비 5천원(도시락 제공)

 

※ 갈때와 올때 왕복으로 차량 운행합니다.

- 마산 : 마산교구청 10:20 출발 ~ 17:00 도착

- 진주 : 가좌동성당 10:40 출발 ~ 17:30 도착

- 중간에 합류하시는 분들은 인근(2Km) 반성역에 도착 후 연락(010-3156-6993)주시면 차량 운행합니다.

 

-문의 :  010-3156-6993 (신병두 필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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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떨기나무 불꽃 속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시어, “나는 있는 나다.” 하시고, 이스라엘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하겠다고 하신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 조상들이 광야에서 죽은 일들은 우리를 위한 본보기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고 하시며 열매를 맺지 않는 무화과나무에 관한 비유를 드신다(복음).

제1독서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3,1-8ㄱㄷ.13-15
그 무렵 1 모세는 미디안의 사제인 장인 이트로의 양 떼를 치고 있었다.
그는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갔다.
2 주님의 천사가 떨기나무 한가운데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꽃 속에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가 불에 타는데도, 그 떨기는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3 모세는 ‘내가 가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아야겠다.
저 떨기가 왜 타 버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4 모세가 보러 오는 것을 주님께서 보시고,
떨기 한가운데에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5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6 그분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그러자 모세는 하느님을 뵙기가 두려워 얼굴을 가렸다.
7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작업 감독들 때문에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
8 그래서 내가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하여,
그 땅에서 저 좋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려고 내려왔다.”
13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분 이름이 무엇이오?’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14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15 하느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신 야훼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히 불릴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대대로 기릴 나의 칭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모세와 함께한 백성의 광야 생활은 우리에게 경고가 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0,1-6.10-12
1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사실도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 아래 있었으며 모두 바다를 건넜습니다.
2 모두 구름과 바다 속에서 세례를 받아 모세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3 모두 똑같은 영적 양식을 먹고, 4 모두 똑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따라오는 영적 바위에서 솟는 물을 마셨는데,
그 바위가 곧 그리스도이셨습니다.
5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 대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그들은 광야에서 죽어 널브러졌습니다.
6 이 일들은 우리를 위한 본보기로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악을 탐냈던 것처럼 우리는 악을 탐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10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이 투덜거린 것처럼 여러분은 투덜거리지 마십시오.
그들은 파괴자의 손에 죽었습니다.
11 이 일들은 본보기로 그들에게 일어난 것인데,
세상 종말에 다다른 우리에게 경고가 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12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멸망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9
1 바로 그때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을 예수님께 알렸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3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4 또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5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6 예수님께서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 그 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7 그래서 포도 재배인에게 일렀다. ‘보게, 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8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9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오늘의 묵상

회개하지 않으면 종말에 심판받을 것임을 경고하는 복음 말씀을 듣고 있자면 조금 섬뜩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화답송이 노래하듯이 주님께서 자비롭고 너그러운 분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제1독서는 우리에게 자비로우신 주님의 모습을 잘 보여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불꽃 모양으로 모세를 찾아오십니다. 여기서 떨기나무로 번역된 히브리 말은 ‘서네’입니다. 이 ‘서네’는 광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로 작은 잎이 무성하며, 가지가 매우 얇아 불꽃이 닿기만 해도 금방 타 버릴 것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꼭 이스라엘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서네, 곧 덤불 속에 사시는 주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는 분, 광야에 사시면서 불모지에서 약한 존재들 사이에 머무시는 분이십니다. ‘시나이’라는 말도 이 낱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데, 신명 33,16도 주님을 직접 ‘서네 속에 사시는 분’이라고 표현합니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은 주님께서 자신들과 함께하시지 않는다고 여기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을 덤불처럼 살도록 내버려 두시는 하느님을 원망하곤 하였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에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이야말로 백성들의 고통을 직접 보고, 들어, 알고 계신 분, 그들 속에 사시는 분이심을 밝히십니다. 그 하느님 이름이 바로 “야훼”, 곧 “있는 나”이십니다. 계시지 않는 어떤 분이 아니라 언제나 그들과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늘 우리에게 다가와서 “나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간다면 즉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런 하느님이십니다. (염철호 요한 신부)


1일 가톨릭교리(출처:가톨릭교리서 요약본)


395. 대죄(죽을죄)는 무엇인가?

중대한 문제를 대상으로 하고, 완전히 의식하면서, 고의로 저지른 죄는 대죄이다. 대죄는 우리 안에서 사랑을 파괴하고, 성화 은총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가며, 뉘우침이 없다면 우리를 지옥의 영원한 죽음으로 이끈다. 대죄를 용서받는 길은 보통 세례성사와 고해성사이다.

 

396. 소죄는 무엇인가?

소죄는 대죄(죽을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가벼운 문제이거나, 또는 중대한 문제일지라도 완전히 인식하지 못했거나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은 경우에는 소죄가 된다. 소죄는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파괴하지 않으나 사랑을 약화시키며, 세상 재물에 대하여 애착을 갖게 하고, 덕과 윤리적 선의 실천으로 이루어지는 영혼의 진보를 방해하며, 정화의 기능을 하는 잠벌을 받게 한다.  

Posted by 에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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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미카 예언자는, 주님께서는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꺼이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방탕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고 돌아온 아들을 맞아 주는 아버지의 비유를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 미카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7,14-15.18-20
주님, 14 과수원 한가운데 숲속에 홀로 살아가는 당신 백성을,
당신 소유의 양 떼를 당신의 지팡이로 보살펴 주십시오.
옛날처럼 바산과 길앗에서 그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15 당신께서 이집트 땅에서 나오실 때처럼 저희에게 놀라운 일들을 보여 주십시오.
18 당신의 소유인 남은 자들, 그들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못 본 체해 주시는 당신 같으신 하느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분은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꺼이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19 그분께서는 다시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고 우리의 허물들을 모르는 체해 주시리라.
당신께서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20 먼 옛날 당신께서 저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을 성실히 대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자애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의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3.11ㄴ-32
그때에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1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12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13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14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15 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16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17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18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19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20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21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22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24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25 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26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27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28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29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30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31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32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작은아들은 아버지에게서 자기 것을 모두 챙겨 먼 고장으로 떠난 뒤 방종한 생활로 재산을 탕진합니다. 때마침 기근마저 들어 곤궁에 허덕이자 작은아들은 아버지께 용서를 청하려고 되돌아가야겠다고 결심합니다. 아버지만이 자신을 거두어 주실 분임을 기억해 낸 것입니다. 그런 작은아들이 아버지께 돌아올 때 아버지는 아직 멀리 있는 그를 알아보고 달려가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춥니다. 제1독서에서 미카 예언자가 이야기하듯 죄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용서를 청하자 아무것도 묻지 않고 모든 것을 되돌려 줍니다. 그리고 큰 잔치를 열어 줍니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큰아들은 아버지에게 불평을 터트립니다. 종처럼 아버지를 섬긴 자신에게는 잔치를 열어 주지 않으면서, 작은아들에게만 잔치를 열어 주는 모습에 섭섭함을 표현합니다. 아버지는 그런 큰아들을 타이르며 돌아온 탕자인 작은아들을 보고 기뻐해야 하는 것이 도리라고 가르칩니다. 
이 비유 말씀은 작은아들들, 곧 세리들과 죄인들과 음식을 나누시는 예수님께 불평을 터트리던 큰아들들인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루카 15,1-2 참조). 그런데 오늘 복음은 그 큰아들이 아버지 말씀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큰아들과 같은 이들은 죄인들을 사랑하고 받아들이신 예수님을 죽음에 빠트리고 말 것입니다. 자신의 불만을 아버지에게 터트리며 그분을 죽음에 빠트린 꼴입니다. (염철호 요한 신부)


1일 가톨릭교리(출처:가톨릭교리서 요약본)


393. 죄는 다양한가?

죄는 매우 다양하다. 죄는 그 대상이나 덕에 따라 또는 위반하는 계명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죄는 하느님이나 이웃이나 우리 자신과 직접 관련된 것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생각이나 말이나 행위나 궐함으로 짓는 죄로 구분할 수도 있다.

 

394. 죄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경중에 따라 대죄(죽을죄)와 소죄로 구분된다.

 

Posted by 에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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