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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4.05 [(자) 사순 제4주간 금요일]4/5

말씀의 초대

지혜서의 저자는, 악인들은 의인을 모욕과 고통으로 시험하려 하지만,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당신을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그들은 그분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2,1ㄱ.12-22
악인들은 1 옳지 못한 생각으로 저희끼리 이렇게 말한다.

12 “의인에게 덫을 놓자. 그자는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자,
우리가 하는 일을 반대하며 율법을 어겨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나무라고
교육받은 대로 하지 않아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탓한다.
13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지녔다고 공언하며 자신을 주님의 자식이라고 부른다.
14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든 우리를 질책하니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짐이 된다.
15 정녕 그의 삶은 다른 이들과 다르고 그의 길은 유별나기만 하다.
16 그는 우리를 상스러운 자로 여기고 우리의 길을 부정한 것인 양 피한다.
의인들의 종말이 행복하다고 큰소리치고
하느님이 자기 아버지라고 자랑한다.
17 그의 말이 정말인지 두고 보자. 그의 최후가 어찌 될지 지켜보자.
18 의인이 정녕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하느님께서 그를 도우시어
적대자들의 손에서 그를 구해 주실 것이다.
19 그러니 그를 모욕과 고통으로 시험해 보자.
그러면 그가 정말 온유한지 알 수 있을 것이고
그의 인내력을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0 자기 말로 하느님께서 돌보신다고 하니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
21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들이 틀렸다.
그들의 악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한 것이다.
22 그들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을 알지 못하며
거룩한 삶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도 않고
흠 없는 영혼들이 받을 상급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2.10.25-30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를 돌아다니셨다.
유다인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하였으므로,
유다에서는 돌아다니기를 원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2 마침 유다인들의 초막절이 가까웠다.
10 형제들이 축제를 지내러 올라가고 난 뒤에 예수님께서도 올라가셨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게 남몰래 올라가셨다.
25 예루살렘 주민들 가운데 몇 사람이 말하였다.
“그들이 죽이려고 하는 이가 저 사람 아닙니까?
26 그런데 보십시오. 저 사람이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는데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최고 의회 의원들이 정말 저 사람을 메시아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27 그러나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터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28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29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30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독서는 헬레니즘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의 불신으로 박해당한 의인의 상황을 반영합니다. 의인에 대한 악인의 박해는 동시대인들에게 배척당한 예수님의 운명을 예고합니다. 의인은 성경을 왜곡하고 모세의 종교를 부패하게 하는 종교 지도자들을 강하게 꾸짖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인 의인은 하느님께서 돌보신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화답송 시편처럼 “의인이 몹시 불행할지라도, 주님은 그 모든 불행에서 구하시리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오늘 복음은,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지만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음을 알려줍니다. 이 때문에 주님께서는 갈릴래아로 가셨고, 초막절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 그분의 때를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예언자처럼 당신의 기원에 대하여 당당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성경을 안다는 율법 학자들은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여 예수님을 평범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자신들의 종교적 전통에 매우 위험한 인물로 여기는 백성의 지도자들은, 그들의 악에 눈이 멀어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하느님을 조롱합니다. “다른 이들은 구원하였으면서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군.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시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믿을 터인데”(마태 27,42). 하느님께서는 확실한 기적을 통하여 강요하는 믿음이 아니라 자유로운 믿음을 바라십니다.(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1일 가톨릭교리(출처:가톨릭교리서 요약본)

419. 옛 법은 구원 경륜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

 

옛 법은 이성이 인지할 수 있는 많은 진리들을 알게 해 주고, 후견인과 같이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를 지적해 주며, 회개와 복음의 수락에 대비하는 마음가짐을 준비시킨다. 그러나 옛 법은 거룩하고 영적이며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행하는 데 필요한 성령의 능력과 은총을 스스로 주지 못하므로 아직 완전한 것이 아니다.

 

420. 새 법, 곧 복음의 법은 무엇인가?

 

새 법, 곧 복음의 법은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시고 실현하신 자연법이거나 또는 계시된 법인 하느님의 법을 충만하게 완성한 것이다. 새 법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는 계약 안에 요약된다. 그리고 이 율법은 인간의 마음에 새겨진 것이다. 새 법은 같은 사랑을 실행할 수 있게 하는 성령의 은총이다. 새 법은 또한 사랑의 자극을 받아 기꺼이 행동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기 때문에 자유의 법” (야고 1,25)이다.

 

Posted by 에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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