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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5.03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5/3)

필립보 사도는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으로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으나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열두 사도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바르톨로메오로 짐작되는 나타나엘을 예수님께 데려와 사도가 되게 하였다(요한 1,43-51 참조).
성경에 나오는 야고보는 제베대오의 아들과 알패오의 아들이 있는데, 오늘 기념하는 야고보 사도는 알패오의 아들이다. ‘작은 야고보’라 불리기도 하는 야고보는 신약 성경 ‘야고보 서간’을 저술하였다. 예수님의 형제로 불리는 야고보(마태 13,55 참조)와 같은 인물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다.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이미 전한 복음을 상기시키며,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자신에게도 나타나셨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필립보에게, 당신을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는 야고보에게, 또 이어서 다른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5,1-8
1 형제 여러분, 내가 이미 전한 복음을 여러분에게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이 복음을 받아들여 그 안에 굳건히 서 있습니다.
2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이 복음 말씀을 굳게 지킨다면,
또 여러분이 헛되이 믿게 된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3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4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5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6 그다음에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7 그다음에는 야고보에게,
또 이어서 다른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8 맨 마지막으로는 칠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6-14
그때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6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은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예수님의 사촌으로 예루살렘의 첫 주교가 되었고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필립보 사도도 예수님을 증언하다가 이방인들의 손에 예수님과 같은 방식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였습니다. 제자들이 하나같이 순교하는 이유는 자기들이 받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을 드러내려고 그분을 가리고 있는 나 자신을 십자가에 매달고 못 박는 것이 증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를 보여 달라는 필립보에게,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당신을 보는 것이 곧 아버지를 뵙는 것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를 위하여 당신의 인간적 원의들 또한 십자가에 함께 못 박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 선포에 ‘기쁨’이 빠져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기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시게 하고, 나를 통하여 행동하시게 하는 것이 ‘기쁨’임을 보여 주는 것, 그것이 참증언입니다. 주님 때문에 내 자아를 버려야 하는 것이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자아에 사로잡혀 사는 것이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내 안의 주님을 드러내고자 십자가를 지면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우울한 복음 전파자는 교회 안에 있을 수 없습니다.

 
 

1일 가톨릭교리(출처 : 가톨릭 청년 교리서 YOUCAT)

4. 우리는 이성을 통해 하느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나요?

 

그렇습니다. 인간의 이성은 하느님을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31-36,44-47)

 

이 세상은 그 근원과 목적이 자기 안에 있지 않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질서와 아름다움, 발전은 자기 자신을 뛰어넘어 하느님을 가리킵니다. 인간은 자기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 즉 선은 행하고 악은 피하라고 경고하는 양심의 소리를 듣습니다. 이 소리에 따라 올바른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느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더듬거리다가 그분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사도 17,27-28)

 

"인간의 가장 뛰어난 능력은 이성이며, 이성의 가장 높은 목표는 하느님을 깨닫는 일입니다."(알베르토 성인, 교회의 위대한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

Posted by 에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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