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냐며, 어떠한 피조물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당신의 길을 계속 가야 한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어떠한 피조물도 그리스도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8,31ㄴ-39
형제 여러분, 31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35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36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39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31-35
31 그때에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3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33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35 보라, 너희 집은 버려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
정녕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는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헤로데 안티파스가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려드리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예수님께서는 이제 하셔야 할 일을 설명하시며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을 예고하십니다.예수님께서는 비록 헤로데가 당신을 죽이려 해도, 피하지 않으시고 당신이 하셨던 일, 곧 마귀들을 쫓아내시며 병을 고쳐 주시는 일을 계속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결코 사람들의 손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손으로, 하느님의 계획이 완성되는 순간에 마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마귀들을 쫓아내시고 병을 고쳐 주시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일은 예수님의 여정 속에서 그렇게 날마다 계속되어야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정이 예루살렘에서 당신의 죽음으로 끝날 것임을 알고 계셨습니다.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선택된 민족이었지만, 동시에 하느님께 불순명과 배반으로 점철된 역사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성전과 왕궁이 있는 곳, 곧 하느님의 현존과 하느님께서 뽑으신 임금이 머무르는 곳이기에,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에서 중심적인 장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드님을 보내시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그분을 죽음으로 내몰았기에 결국 버려지리라는 선언을 듣습니다.그렇다고 해도 하느님의 계획은 실패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을 이스라엘 백성이 거부하여 복음이 이스라엘 밖으로 전해져 온 세상 끝까지 전해지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합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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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쓰라고 하시며,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룹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8,26-30
형제 여러분, 26 성령께서는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27 마음속까지 살펴보시는 분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29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30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동쪽과 서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22-30
그때에 22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는 동안,
여러 고을과 마을을 지나며 가르치셨다.
23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2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5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26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27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28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29 그러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30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 내용은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구원받을 사람의 수에 대하여 묻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대답을 주시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구원에 집중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몇 사람이나 구원받을지 신경을 쓰기보다는 어떻게 구원받을 것인지를 고민하고 결단하라는 말씀이고, 그것을 위하여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쓰라는 말씀입니다.예수님께서는 또한 집주인이 문을 닫아 버리면 그때까지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리 애원을 해도 잔치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 말씀은 바로 지금이 하느님께서 구원을 베푸시는 은혜의 때이며, 올바로 살아가도록 결단을 내리고 노력해야 하는 때라는 뜻입니다. 언젠가는 집주인이 문을 닫아 버릴 때가 올 터인데, 그때가 되면 돌이킬 수 없으리라고 하십니다.우리가 더욱 새겨들어야 하는 말씀은, 거부당한 사람들이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하면서, 주인과 친교를 나누고 함께 지냈음을 호소해도 집주인은 그들을 모른다고 하리라는 내용입니다. 집주인의 표현대로라면 그들은 불의를 일삼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이 문맥은 심판을 암시하고 있기에 종말에 대한 가르침으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시간이 영원히 연장되지는 않을 것이고, 너무 늦기 전에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노력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말씀입니다. 비록 우리가 그분을 알고, 그분의 공동체 안에서 친교를 나누었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보시는 것은 신앙인으로서의 올바른 생활이고,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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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나무가 되어 새들이 깃들이는 겨자씨와 밀가루를 온통 부풀어 오르게 하는 누룩에 비유하신다(복음).

제1독서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8,18-25
형제 여러분, 18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9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20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21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22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23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24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25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겨자씨는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8-21
그때에 1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그것을 무엇에 비길까?
19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20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21 그것은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겨자씨와 누룩에 비유하신 것은, 하느님 나라가 겨자씨나 누룩처럼 그 시작이 비록 작을지라도 그 자체가 지닌 역동성 때문에 커다란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 그 역동성은 온전히 하느님 나라의 본질에 속한 것이기에 하느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집니다.겨자씨가 싹을 틔우고 자라나는 것이나 누룩이 밀가루 반죽을 부풀게 하는 것에 사람이 하는 일은, 오로지 씨를 밭에 뿌리고, 밀가루 반죽에 누룩을 집어넣는 일뿐입니다. 하느님의 나라의 역동성은 사람이 언제 그런 일이 이루어지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이루어지지만, 결국 커다란 결과를 가져옵니다.무엇보다 예수님의 공생활 안에서 이 비유의 의미가 이루어짐을 볼 수 있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의 삶은 비록 소외된 땅 갈릴래아에서 남들 눈에 크게 띄지 않게 조용히 시작되었지만,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겨자 열매처럼 생기와 활력을 주고, 새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는 겨자 나무처럼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였습니다.그 의미는 우리 신앙생활에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바라며 살아갑니다. 그 나라가 지금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 있고, 또 자라고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이 땅에 하느님 나라의 희망이 지속되고 그 완성에 도달할 때를 기다립니다. 그 완성이 언제 올지 안달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역동성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작용하고 있으며, 결국 커다란 결과를 만들어 내리라는 것이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다른 무엇보다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 하루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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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모퉁잇돌이시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시며 하느님께 기도하시고는, 제자들을 부르시어 열둘을 뽑으시고 사도라고 부르신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은 사도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2,19-22
형제 여러분, 19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22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라고 부르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2-19
12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13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14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17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18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 축일인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뽑으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를 뽑으시기 전에 산으로 가셔서 밤을 새우시며 하느님께 기도하십니다. 특별히 루카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바쁜 일과를 보내시면서도, 혼자 물러가셔서 기도하시는 장면을 자주 발견합니다.열두 사도를 뽑으시기 전에도 이렇게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면, 예수님께서 온전히 하느님과 일치하셨다는 것과 열두 사도를 선택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면서 하느님의 뜻에 따른 일이었음을 보여 줍니다.기도가 신앙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는 예수님의 이런 모습만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아무리 많은 활동과 선행을 할지라도, 기도가 빠져 있으면 사상누각에 불과합니다. 본인도 행복하지 않을뿐더러 그 활동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도 없습니다.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바쁘면 바쁠수록, 혼자 조용히 하느님 앞에 서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내 삶과 신앙의 의미가 분명해질 수 있고, 내가 갈 방향을 찾을 수 있습니다.그리고 기도할 때는 내가 하느님께 청할 것만 찾을 것이 아니라, 어디에 하느님의 뜻이 있는지도 찾아야 합니다.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과연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 끊임없이 생각하지 않으면, 삶과 일 속에서 가야 할 방향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사도, 곧 파견된 이들로 선택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부르심 역시 근본적으로 주님의 복음 전파를 위한 것임을 늘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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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집회서의 저자는, 겸손한 이의 기도는 구름을 거쳐서 주님께 도달하기까지 위로를 마다한다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자신은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교만한 바리사이의 기도와 겸손한 세리의 기도를 비유로 드시며,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겸손한 이의 기도는 구름에까지 올라가리라.>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 35,15ㄴ-17.20-22ㄴ
15 주님께서는 심판자이시고 차별 대우를 하지 않으신다.
16 그분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람의 기도를 들어 주시리라.
17 그분께서는 고아의 간청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과부가 쏟아 놓는 하소연을 들어 주신다.
20 뜻에 맞게 예배를 드리는 이는 받아들여지고
그의 기도는 구름에까지 올라가리라.
21 겸손한 이의 기도는 구름을 거쳐서 그분께 도달하기까지 위로를 마다한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살펴 주실 때까지 그만두지 않으니
22 그분께서 의로운 자들의 송사를 듣고 판결해 주신다.
주님께서는 머뭇거리지 않으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 4,6-8.16-18
사랑하는 그대여,
6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7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8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16 나의 첫 변론 때에 아무도 나를 거들어 주지 않고,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
그들에게 이것이 불리하게 셈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17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
18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9-14
그때에 9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에게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비유에 나오는 바리사이와 세리는 유다교 입장에서 완전히 대조되는 사람들입니다.바리사이들은 누구보다도 율법을 잘 알고 그것을 가장 우선시하는 사람들이면서 또 율법을 지키기 위한 세부 규정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종교적으로는 경건한 사람으로 인정받았고 사회적으로도 존경받는 위치에 있던 사람들입니다.반면에 세리들은 당시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있던 로마 제국을 위하여 백성에게서 세금을 거두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민족적으로는 반역자요 수탈자의 앞잡이였으며 종교적으로도 죄인 중의 죄인이었습니다.예수님께서는 이 두 사람이 성전에 가서 기도하는 모습을 비유로 들려주십니다. 먼저 바리사이는 양팔을 벌리고 자신만만하게 서서 자신은 죄인이 아닐뿐더러 단식 규정과 십일조 규정을 지키는 경건한 사람임을 하느님 앞에 내세웁니다. 반면에 세리는 감히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하느님께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였다고 말씀하십니다.바리사이의 기도는 하느님 앞에서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보거나 무엇을 청하는 내용은 없고 오직 자신을 내세우는 내용뿐입니다. 반면 세리의 기도는 간단하면서도 절실하고 진지합니다. 스스로 죄인임을 자각하고 하느님 앞에 그것을 인정하며 하느님의 자비에 모든 것을 맡기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기도할 때 하느님 앞에서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며, 하느님의 자비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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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영 안에 있게 된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한다고 하시며, 포도 재배인의 비유를 드신다(복음).

제1독서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십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8,1-11
형제 여러분,
1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4 이는 육이 아니라 성령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채워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5 무릇 육을 따르는 자들은 육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성령을 따르는 이들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6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7 육의 관심사는 하느님을 적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것은 하느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8 육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9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11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멸망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9
1 그때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을 예수님께 알렸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3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4 또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5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6 예수님께서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 그 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7 그래서 포도 재배인에게 일렀다.
‘보게, 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8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9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빌라도가 성전 뜰에서 희생 제물을 바치던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인 것과 실로암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사람들의 예를 드시면서, 회개하지 않으면 그처럼 멸망하리라고 경고하십니다.이 두 사건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더 낫지도 못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뜻하지 않게 생명을 잃은 것이고,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예측할 수 없는 것인지 보여 줍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갑자기 기회를 잃어버리기 전에 회개할 필요가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같은 맥락에서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를 심어 놓고 열매를 수확하려고 삼 년이나 기다렸는데, 열매가 달리지 않자 잘라 버리려 합니다. 올리브 나무도 마찬가지이지만 무화과나무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특별히 거름을 주지 않아도 열매를 맺는 효자 식물입니다. 그런데 삼 년이 되어도 아무 수확을 내지 못하자 그 나무를 잘라 버리려는 주인의 마음은 당연합니다. 열매를 내지 못하면서 땅만 차지하고 있는 나무는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그런데 포도 재배인이 나서서 한 해만 더 시간을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면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어 보고, 그 다음에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잘라 버리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거름이 필요 없는 무화과나무에 거름을 준다는 것은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나무를 보살핀다는 뜻입니다.신앙인들은 계속해서 회개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느 누구도 회개의 필요성에서 제외될 수 없으며, 은총의 시간이 남아 있지만, 그 시간은 마냥 지속될 수 없는 제한된 시간임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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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그의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냐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7,18-25ㄱ
형제 여러분,
18 내 안에, 곧 내 육 안에 선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음을 나는 압니다.
나에게 원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좋은 것을 하지는 못합니다.
19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
20 그래서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하면,
그 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은 죄입니다.
21 여기에서 나는 법칙을 발견합니다.
내가 좋은 것을 하기를 바라는데도 악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22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23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
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24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54-59
그때에 54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면 곧
‘비가 오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55 또 남풍이 불면 ‘더워지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56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57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58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
그러지 않으면 그가 너를 재판관에게 끌고 가,
재판관은 너를 옥리에게 넘기고 옥리는 너를 감옥에 가둘 것이다.
59 내가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오늘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을 향하여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고 질책하십니다.일기 예보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늘 자연을 살피면서 기후를 예측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서쪽에는 지중해가 있었기에 바다가 있는 서쪽에서 구름이 몰려오면 비가 올 것을 예상하였고, 남쪽의 사막 지대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더워질 것을 예측하였습니다.그렇게 하늘과 땅의 변화를 풀이할 때는 통찰력을 지니고 있으면서, 어떻게 이 시대의 징표, 곧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고, 가르침과 기적을 주신 것을 보면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냐고 질책하십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위선자라고 하시는데, 이때 말씀하시는 위선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속은 그렇지 않으면서 겉으로만 선한 척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예수님과 그분께서 하시는 모든 일을 보고 들으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완고한 마음을 가리킵니다.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시대의 징표’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관련된 표징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선뜻 나서서 신앙을 고백하지도, 회개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내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으면 결코 시대의 흐름을 올바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신앙에서도 주저하고 망설이면서,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태도로는 하느님을 알 수도, 신앙을 실천할 수도 없습니다. 마음을 열어서 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용기를 내어 신앙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신앙을 통해서 앎이 깊어지고, 신앙생활이 어떤 맛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용기를 내어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하루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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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죄가 주는 품삯은 죽음이지만, 하느님의 은사는 영원한 생명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고, 평화가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다고 하시며, 한 집안의 식구들이 갈라져 맞서리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이제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6,19-23
형제 여러분,
19 나는 여러분이 지닌 육의 나약성 때문에 사람들의 방식으로 말합니다.
여러분이 전에 자기 지체를 더러움과 불법에 종으로 넘겨
불법에 빠져 있었듯이,
이제는 자기 지체를 의로움에 종으로 바쳐 성화에 이르십시오.
20 여러분이 죄의 종이었을 때에는 의로움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21 그때에 여러분이 지금은 부끄럽게 여기는 것들을 행하여
무슨 소득을 거두었습니까?
그러한 것들의 끝은 죽음입니다.
22 그런데 이제 여러분이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종이 되어 얻는 소득은 성화로 이끌어 줍니다.
또 그 끝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23 죄가 주는 품삯은 죽음이지만,
하느님의 은사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받는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49-5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9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50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53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다고 하시며, 평화를 주러 오신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이 말씀은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성경 안에서 일반적으로 불은 더러움을 태워서 정화시키는 것을 상징하고,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시며 회개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상기시킵니다.또 구약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이나 엘리야 예언자의 말을 불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처럼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하느님 나라 선포를 ‘불’이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말씀은, 하느님 나라의 선포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지기를 열망하신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평화를 주러 오신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다는 말씀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메시아는 평화의 임금으로 오시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미카 예언자는 구원의 때에 앞서 재난과 분쟁의 시기가 도래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가족들마저 신앙 때문에 갈라졌고, 사람들은 이제 예수님을 받아들일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 분명한 입장을 취해야만 하는 시기가 된 것입니다. 이런 분열과 불화가 마지막 때를 특징짓는 사건이 되고, 각각의 사람들에게 선택을 요구하는 사건이 됩니다.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신앙은 언제나 도전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회개하고 변화되어야 한다고 일깨워 주기 때문입니다. 그 신앙을 뜨겁게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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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죄의 욕망에 순종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며,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되어 의로움의 종이 되었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올 것이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난 사람으로서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6,12-18
형제 여러분, 12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여
여러분이 그 욕망에 순종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13 그리고 여러분의 지체를 불의의 도구로 죄에 넘기지 마십시오.
오히려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난 사람으로서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고,
자기 지체를 의로움의 도구로 하느님께 바치십시오.
14 죄가 여러분 위에 군림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총 아래 있습니다.
15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총 아래 있으니 죄를 지어도 좋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16 여러분이 어떤 사람에게 자신을 종으로 넘겨 순종하면
여러분이 순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라는 사실을 모릅니까?
여러분은 죽음으로 이끄는 죄의 종이 되거나
의로움으로 이끄는 순종의 종이 되거나 하는 것입니다.
17 그러나 하느님께 감사하게도, 여러분이 전에는 죄의 종이었지만,
이제는 여러분이 전해 받은 표준 가르침에 마음으로부터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18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되어 의로움의 종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신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9-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41 베드로가, “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42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43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45 그러나 만일 그 종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46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불충실한 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48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어제에 이어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종말에 대한 준비를 당부하십니다. 종말에 대한 가르침의 핵심은 언제나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라는 말씀으로 요약됩니다. 그리고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의 비유를 통하여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알려 주십니다.흥미로운 것은 예수님께서 이 비유에서 모든 사람을 집사에 비유하신다는 점입니다. 모든 사람이 집사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자기 집 종들에게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줌으로써 주인에게 상을 받습니다. 자신이 맡아서 해야 할 일을 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곧 주인을 맞을 준비에 해당됩니다.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의 끝에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여기에서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내가 받은 모든 것은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고, 그것은 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을 관리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너무 쉽게 잊고 살아갑니다.둘째로는, 하느님의 것을 관리하는 데는 슬기와 충실함이 요구됩니다. 내가 맡은 바를 잘 이해하고, 충실하고 현명하게 관리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셋째로는, 내가 받은 것이 많으면 그만큼 하느님께 많이 돌려드려야 합니다. 모든 것을 내 힘으로 얻은 양 움켜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충실하게 살아가며, 주님과의 만남을 준비하는 하루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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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은총과 의로움의 선물을 충만히 받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하여 생명을 누리며 지배할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은 행복하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한 사람의 범죄로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을 누리며 지배할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5,12.15ㄴ.17-19.20ㄴ-21
형제 여러분,
12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15 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운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충만히 내렸습니다.

17 그 한 사람의 범죄로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
은총과 의로움의 선물을 충만히 받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하여 생명을 누리며 지배할 것입니다.
18 그러므로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듯이,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
19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20 그러나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21 이는 죄가 죽음으로 지배한 것처럼,
은총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의로움으로 지배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5-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오늘 비유에서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의 모습을 통하여 종말에 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깨어 기다리다 주인을 맞이하는 종은 상급을 받으리라는 내용입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불충한 종은 벌을 받으리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지만 종말의 근본적인 내용은 만남입니다.지금은 거울을 보듯이 희미하게 보이지만 그때는 얼굴을 맞대고 보듯이 모든 것이 분명하리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에게 그때는 하느님을 만나는 순간입니다. 우리가 신앙 안에서 가장 바라고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기쁨과 행복이 하느님을 만나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종말은 고통과 혼란이 아니라 기쁨과 행복의 완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예수님께서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기다리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런 기쁨을 기다리며 그 희망으로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종이 주인을 기다리는 것은 겁이 나거나 불안해서가 아닙니다. 주인이 돌아오면 자신을 축복해 주리라는 기쁨에 차서 취하는 자세입니다. 주인이 종의 식사 시중을 들어 줄 것이라는 말씀에서, 우리가 머리로 다 알아차리지 못하는 하느님의 커다란 신비와 축복이 드러납니다. 이제 종은 더 이상 종이 아니라 벗이 된 것입니다.이런 맥락에서 내일 복음에서 듣게 될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12,40)라는 주님의 권고는, 어떤 위협이나 협박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다가올 무한한 행복에 마음을 활짝 열고 희망 속에 살기를 바라시는 정감 가득한 말씀이며, 우리에게 당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나누어 주시고자 하는 사랑 가득한 마음이기도 합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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