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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1.12 주님 세례 축일 (1/12)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선택하신 이는 성실하게 세상에 공정을 펴리라고 예언한다(제1독서). 베드로는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의 복음을 전하셨다고 강조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소리가 들려온다(복음).


제1독서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이다.> 42,1-4.6-7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2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3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4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6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7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10,34-38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그 무렵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35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36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곧 만민의 주님을 통하여
평화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을
37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38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3,13-17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에서 요르단으로 그를 찾아가셨다.
14 그러나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하면서 그분을 말렸다.
15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제야 요한이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16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17 그리고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요한의 세례는 죄를 씻는 일이었고, 죄를 씻는 것이 하느님을 만나는 일로 이해됩니다. 죄를 씻기 위하여 우리는 죄를 찾아내려 애씁니다. 고해소 앞에서 무엇을 잘못하였는지 되돌아보는 일은 꽤나 아픈 일입니다. 고백하건대, 지난 과오를 진정으로 뉘우쳐서 아프기보다 그 과오 때문에 부끄러운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 더 아픕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시지만 세례를 받으십니다. 오늘 복음이 말하는 예수님의 세례는 ‘모든 의로움’을 이루는 일입니다. 예언자 시대부터 ‘의로움’은 하느님과 제대로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그 만남은 대개 계층 간에 벌어지는 갈등의 자리에서, 권력의 다툼 안에 희생된 약자들의 자리에서 더욱 강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선택하시고 집중하시는 곳은 아픔과 슬픔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에서, 신앙인들이 일상에서 만나고 웃고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되돌아봅니다. 의로움을 이루려고 만나는 자리가 있을 수 있고, 죄를 씻기는커녕 서로의 탓을 곱씹느라 죄 속에 허덕이는 피폐한 영혼들을 맞닥뜨리는 자리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끝은 이렇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이사야서에 따르면 그 아들은 다른 이의 죄를 대신 짊어져도 말 한마디 없이 죽어 가는 고난받는 종이었습니다. 다른 이를 위하여 대신 죄를 짊어지는 희생을 실천하기 어렵다면, 적어도 서로에게 죄를 짊어지우는 일만큼은 줄여야겠습니다. 의로움은 특정한 상황에서 이를 이루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심과 실천으로 실현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평범한 일상에서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자신을 비워 내고, 내어 주고, 참아 주는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Posted by 에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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