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나자렛 회당에서 안식일에 이사야 예언서 두루마리를 펴시고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여러분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였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2,1-5
1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뛰어난 말이나 지혜로 하느님의 신비를 선포하려고 가지 않았습니다.
2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3 사실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나는 약했으며,
두렵고 또 무척 떨렸습니다.
4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5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6-30
그때에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2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24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바빌론 유배 이후 예루살렘 성전을 잃은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제사를 바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소의 거룩함 대신 시간의 거룩함을 선택하여 ‘안식일’을 중요시하였고, 하느님 말씀을 바탕으로 전례를 거행하는 ‘회당’을 세웁니다. 간소하였던 회당 전례의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회중 모두 일어서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한 뒤 율법서를 봉독합니다. 유다인들의 신앙 고백인 ‘이스라엘아, 들어라!’(신명 6,4-5 참조)를 낭송한 뒤 시편과 ‘18조 기도문’(2마카 1,24-25 참조)을 바칩니다. 이어서 독서자(히브리어로 ‘마기드’)가 율법서를 봉독하고 설교한 다음, 또 다른 독서자(히브리어로 ‘마프티르’)가 예언서를 읽고 설교를 합니다. 그리고 회당 전례는 회당장의 축복문(민수 6,24-26 참조) 낭송으로 끝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고향 나자렛에 가시어 회당 전례에 참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독서자(마프티르)가 되시어 이사야 예언서를 봉독하십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이어서 설교를 하십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문제는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면서도 그분이 누구의 아들이신지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향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특히 오직 메시아에게만 주어진 ‘눈먼 이들이 다시 보게 되는 일’이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진다는 말에 화가 잔뜩 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고 맙니다.

주님의 영이 내린 예수님을 제대로 받아들이려면, 그분을 바라보는 우리에게도 성령의 힘이 내려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뛰어난 말이나 지혜로 하느님의 신비를 선포하기에 앞서, 그 말씀의 신비를 깨우칠 수 있는 성령의 힘을 청합시다.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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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 초대

    예레미야 예언자는 주님의 꾐에 넘어가 날마다 놀림감이 되어 조롱을 받는다며,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불처럼 타올라 견디지 못하겠다고 하소연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도록,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 예고를 반박하는 베드로를 꾸짖으시며, 십자가를 지고 당신 뒤를 따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의 말씀이 저에게 치욕만 되었습니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20,7-9
    7 주님, 당신께서 저를 꾀시어 저는 그 꾐에 넘어갔습니다.
    당신께서 저를 압도하시고 저보다 우세하시니
    제가 날마다 놀림감이 되어 모든 이에게 조롱만 받습니다.
    8 말할 때마다 저는 소리를 지르며 “폭력과 억압뿐이다!” 하고 외칩니다.
    주님의 말씀이 저에게 날마다 치욕과 비웃음거리만 되었습니다.
    9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여러분의 몸을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2,1-2
    1 형제 여러분, 내가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2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려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21-27
    그때에 21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22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2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꿀벌의 천적인 말벌이 벌집을 습격하면, 일벌들은 도망을 가지만, 파수병 역할을 하는 벌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덤벼듭니다. 그래서 이런 파수병 꿀벌에게는 ‘각오 유전자’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수많은 각오를 해야 할 때가 옵니다. 파수병 꿀벌처럼 정말 죽음까지 각오해야 할 정도의 일은 없다고 하여도 크고 작은 희생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파수병 꿀벌들의 각오 유전자를 빌리고 싶기도 합니다.

    그런 가운데, 지난 주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에 대한 질문에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고 신앙을 고백한 베드로가 오늘 복음에서는 오히려 이 각오 유전자가 꼭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정체성에 함구령을 내리신 뒤,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셨습니다. 문제는 이에 대한 베드로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교회의 반석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일보다는 사람의 일만 생각하다 보면 믿는 이들의 버팀돌도 오히려 믿는 이들을 비틀거리게 하고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이 됩니다. 우리의 이기적인 목적만을 생각하다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계시다는 것을 망각한다면 쉽게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자세를 밝혀 줍니다. 누군가의 발이 걸리게 만들어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면 바오로의 권고를 각오 유전자로 우리 안에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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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당신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라시며, 그와 함께 계시겠다고 하신다(제1독서). 헤로데는 생일에 아내 헤로디아의 딸이 청한 대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베게 하여 선물로 준다(복음).

      제1독서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1,17-19
      그 무렵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17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랬다가는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떨게 할 것이다.
      18 오늘 내가 너를 요새 성읍으로,
      쇠기둥과 청동 벽으로 만들어 온 땅에 맞서게 하고,
      유다의 임금들과 대신들과 사제들과 나라 백성에게 맞서게 하겠다.
      19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7-29
      그때에 17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18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19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0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21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22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23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24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25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26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27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28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29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7-29
      그때에 17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18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19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0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21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22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23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24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25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26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27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28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29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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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지만, 자신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한다고 말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는 걸림돌이지만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17-25
      형제 여러분,
      17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말재주로 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18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19 사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를 부수어 버리고
      슬기롭다는 자들의 슬기를 치워 버리리라.”
      20 지혜로운 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율법 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의 논객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으셨습니까?
      21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22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24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25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5,1-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2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4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5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6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7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8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9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11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12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13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슬기로움과 어리석음의 대비는 예수님의 여러 비유에 나타나는 전형적 형식입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이 그렇고(마태 7,24-27 참조), 자신을 위해서만 재화를 모으던  부자가 어리석은 사람의 예였으며(루카 12,16-21 참조), 영리하여 칭찬받는 약은 집사는 반대로 슬기로운 사람의 예였습니다(루카 16,1-8 참조).

      오늘의 복음인 ‘열 처녀의 비유’도 슬기로움과 어리석음의 대비가 담겨 있습니다. 처녀 열 명이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리석은 처녀 다섯 명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준비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슬기로운 처녀 다섯 명은 등과 함께 기름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랑이 오는 시간이 지체되면서 처녀들은 졸다가 그만 잠이 들었습니다. 한밤중에 신랑이 온다는 외침이 들립니다.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지만 미리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어리석은 처녀들은 뒤늦게 기름을 사러 가고, 이미 신랑은 도착하고 맙니다. 결국 준비하고 있던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처녀들은 문이 닫혀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비유 속 인물들이 더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신랑은 세상의 심판자로 오시는 예수님이시고, 신랑의 도착이 지체되는 것은 ‘그 날과 그 시간’을 알 수 없는 종말의 지연입니다. 열 처녀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교회 공동체를 뜻하고, 기름은 마땅히 해야 할 선행이며, 어리석은 처녀들에 대한 거부는 심판을 뜻합니다.

      따라서 슬기로움과 어리석음의 대비를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교회 공동체 구성원인 우리에게 깨어 준비할 것을 경고하시고, 일상의 수고로움에 대한 위로와 혼인 잔치에 들어갈 구원의 약속을 주십니다. 마땅히 깨어 준비하는 수고로움은 우리의 슬기로움에 있습니다. 곧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들은 대로 실행하는 것이 믿는 이의 슬기로움입니다.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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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와 소스테네스는 코린토 교회에 인사하며, 하느님께서 코린토 신자들에게 베푸신 은총을 두고 감사드린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 늘 깨어 있으라고 하시며,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니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처럼 일하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느 모로나 풍요로워졌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시작입니다.
        1,1-9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오로와 소스테네스 형제가 2 코린토에 있는 하느님의 교회에 인사합니다.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다른 신자들이 사는 곳이든 우리가 사는 곳이든
        어디에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들과 함께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3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4 나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에게 베푸신 은총을 생각하며,
        여러분을 두고 늘 나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5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느 모로나 풍요로워졌습니다.
        어떠한 말에서나 어떠한 지식에서나 그렇습니다.
        6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 여러분 가운데에 튼튼히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7 그리하여 여러분은 어떠한 은사도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8 그분께서는 또한 여러분을 끝까지 굳세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흠잡을 데가 없게 해 주실 것입니다.
        9 하느님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도록
        여러분을 불러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4,42-5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2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43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4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45 주인이 종에게 자기 집안 식솔들을 맡겨
        그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주게 하였으면,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46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48 그러나 만일 그가 못된 종이어서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어지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49 동료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또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면,
        50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51 그를 처단하여 위선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집회 26,1-4.13-16)와 복음(루카 7,11-17)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종말론적 담화문’이라고 불리는 마태오 복음 23―25장은 흔히 ‘심판 설교’라고도 합니다. 좀 더 살펴본다면 23장은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 대한 일곱 가지 불행을 담은 유다교 심판 설교이고, 24―25장은 세상 마지막 때에 관한 종말 심판 설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종말의 때를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마태 24,36)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종말이 언제 오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종말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지금이 중요하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강조하십니다. 언제일지 모르는 종말 심판을 대비하여 늘 깨어 준비하도록 예수님께서는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 열 처녀의 비유(마태 25,1-13 참조), 그리고 탈렌트의 비유(마태 25,14-30 참조)를 언급하십니다. 이 가운데 첫 번째 비유가 오늘의 복음입니다.

        충실한 종은 주인이 맡기는 종들을 잘 관리하고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는 종입니다. 이렇게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에게는 주인이 자신의 모든 재산을 맡길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이 늦게 올 것이라 여기고는 맡겨진 종들을 때리고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는 종은 불충실한 종입니다. 결국 주인은 그 종이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도 못한 시간에 돌아와서 그를 처단하여 위선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입니다.

        비유를 이해하기가 어렵지는 않지만 불충실한 종에게 내리는 주인의 ‘처단’이 섬뜩하게 다가옵니다. 우리말에서 처단은 ‘결단을 내려 처치하거나 처분함’을 뜻합니다. 그러나 성경 원문의 그리스어 ‘처단하다’는 고대 페르시아의 극형 방식인 ‘둘로 잘라 버리다’를 뜻하기에, 불충실한 종의 최후는 그만큼 비참하리라는 것입니다.

        충실한 종이 되어 종말을 깨어 준비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미 예수님께서는 복음적 담화문인 산상 설교의 결론에서 답을 주셨습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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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 말하며 게으름을 경고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위선적인 삶을 꾸짖으시며 그들을 회칠한 무덤에 빗대신다(복음).

          제1독서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2서 말씀입니다.
          3,6-10.16-18
          6 형제 여러분,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지시합니다.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을 따르지 않는 형제는
          누구든지 멀리하십시오.
          7 우리를 어떻게 본받아야 하는지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무질서하게 살지 않았고,
          8 아무에게서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9 우리에게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
          여러분이 우리를 본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0 사실 우리는 여러분 곁에 있을 때,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거듭 지시하였습니다.
          16 평화의 주님께서 친히 온갖 방식으로
          여러분에게 언제나 평화를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주님께서 여러분 모두와 함께 계시기를 빕니다.
          17 이 인사말은 나 바오로가 직접 씁니다.
          이것이 내 모든 편지의 표지입니다.
          나는 이런 식으로 편지를 씁니다.
          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3,27-32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7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28 이처럼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29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묘를 꾸미면서,
          30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31 그렇게 하여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
          32 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짓을 마저 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우리는 저마다 나름의 경험과 지식을 통하여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 ‘착한 사람’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려 합니다. 그러나 저마다 지닌 이 개념이 과연 어디서 왔는지는 잘 모릅니다. 곧 다른 이에 대한 판단의 근거가 지인들이나 다양한 언론 매체 또는 그동안 읽어 온 책들일 터인데, 그것들 가운데 무엇을 어디에서 배우고 얻었는지 정확히 모를 때가 많습니다. 구체적인 경험이 모두 다르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을 만큼 확실한 기준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기준과 개념을 남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게 적용한다면 스스로는 얼마나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 ‘착한 사람’이겠습니까? 

          마태오 복음사가는 마음이 가난하고, 슬픔에 젖어 있지만 온유하며 자비로운 이들은 물론,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르면서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리고 평화를 이루려 노력하다 의로움 때문에 박해받는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행복 선언을 산상 설교(마태 5―7장)로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심판 설교(마태 23―25장)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 대한 일곱 가지 불행 선언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복음은 그 가운데 여섯째와 일곱째입니다.

          이렇게 일곱 가지 불행 선언은 모두,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 ‘착한 사람’으로 자기 자신을 보이고자 영성을 잘못 이용하고 신심을 권력으로 여기는, 예수님 당대의 종교 지도자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찌 이 불행 선언이 지난날의 사람들에게만 유효하겠습니까? 잘못을 저지르기 쉬운, 곧 악의 경향에 쉽게 빠질 수 있는 우리이기에 예수님의 불행 선언은 우리 양심을 성찰하라는 경고입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데리고 온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예수님께서 주신 가르침을 상기시키는 오늘 복음입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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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그의 말이나 편지로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라고 당부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불행을 선언하시며, 십일조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실행하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이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2서 말씀입니다.
          2,1-3ㄱ.14-17
          1 형제 여러분,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우리가 그분께 모이게 될 일로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2 누가 예언이나 설교로 또 우리가 보냈다는 편지를 가지고
          주님의 날이 이미 왔다고 말하더라도,
          쉽사리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3 누가 무슨 수를 쓰든 여러분은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14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복음을 통하여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차지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5 그러므로 이제 형제 여러분,
          굳건히 서서 우리의 말이나 편지로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또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영원한 격려와 좋은 희망을 주신 하느님 우리 아버지께서,
          17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어
          온갖 좋은 일과 좋은 말을 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더 중요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3,23-26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3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했다.
          24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다.
          25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26 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노골적으로 ‘위선자’라고 부르십니다. 실제 삶에서는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면서 매우 하찮은 것까지 십일조를 내는 것에 치중하기 때문입니다. 

          ‘시라’는 1미터 정도 곧추 자라는 다년초로, 유다인들은 향기가 나는 그 씨를 양념으로 썼다고 합니다. ‘소회향’은 30센티미터 정도 자라는 한해살이 풀로, 그 씨를 역시 음식의 맛과 향을 돋우는 데 썼습니다. 박하는 매우 흔한 것이었고, 시라와 소회향은 들에서 그냥 자라기도 하지만 경작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매우 하찮은 것까지 십일조를 내면서 더 중요한 실천 사항들은 간과하고 무시하니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불행 선언은 마땅하고 옳은 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겉보기에 하느님을 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들을 위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율법의 가르침을 일상의 삶에서 실천하는 자선, 단식, 기도를 심지어 ‘숨은 일’로 하라 하셨던(마태 6,18 참조) 예수님의 눈에는, 그들의 신앙 행위가 그저 자신들의 공적을 드러내고 남에게 보여 주려는 비뚤어진 행위였을 뿐입니다.

          이 복음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지금 각자가 일상에서 행하는 신앙생활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과연 나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 살아가는가, 아니면 내 욕심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합리화하며 살아가는 위선자인가를 식별해야만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일상의 삶에서 하느님의 뜻에 집중할 수 있도록 중요한 기도를 제시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또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영원한 격려와 좋은 희망을 주신 하느님 우리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어 온갖 좋은 일과 좋은 말을 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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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천사에게 이끌려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본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필립보에게 이끌려 온 나타나엘에게,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리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 초석들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21,9ㄴ-14
            천사가 나에게 9 말하였습니다.
            “이리 오너라. 어린양의 아내가 될 신부를 너에게 보여 주겠다.”
            10 이어서 그 천사는 성령께 사로잡힌 나를
            크고 높은 산 위로 데리고 가서는,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11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광채는 매우 값진 보석 같았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 같았습니다.
            12 그 도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과 열두 성문이 있었습니다.
            그 열두 성문에는 열두 천사가 지키고 있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의 열두 지파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13 동쪽에 성문이 셋, 북쪽에 성문이 셋, 남쪽에 성문이 셋,
            서쪽에 성문이 셋 있었습니다.
            14 그 도성의 성벽에는 열두 초석이 있는데,
            그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5-51
            그때에 45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46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은 예수님의 열두 사도 명단에는 있지만(마태 10,3 참조) 이후 복음서에서 별다른 언급이 없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바르톨로메오 축일입니다. 히브리어로 ‘바르’는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르톨로메오는 ‘톨마이’ 또는 ‘탈마이’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순교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은 『황금 전설』을 보면 예수님의 첫 기적인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신랑이 바로 바르톨로메오이고, 인도나 아르메니아에 선교하러 갔다가 체포되어 산 채로 살가죽을 벗기는 참혹한 형벌로 순교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학자들은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기적이 일어난 장소인 카나와 관련하여, 카나 사람 나타나엘을 바르톨로메오와 같은 인물로 여깁니다. 여기에는 구체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나타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한 이가 필립보이고, 복음서의 열두 사도 명단에 늘 필립보 다음에 바르톨로메오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필립보는 친구 나타나엘을 찾아가 복음을 전합니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나타나엘은 율법서와 예언서를 열심히 공부하며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고정 관념 때문에 필립보가 이야기하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구약 성경에 나자렛이 언급되지 않았고,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고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타나엘은 필립보의 초대를 거절하지 않고 따라와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의 이런 태도를 오히려 칭찬하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선물을 주십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마음의 가죽을 벗겨 진리를 보았기에, 산 채로 살가죽이 벗겨지는 고통 속에서도 믿음을 드러낼 수 있던 바르톨로메오 사도입니다. 오늘 미사의 본기도를 다시 바쳐 봅니다. “주님, 복된 바르톨로메오 사도가 오롯한 믿음으로 성자를 따르게 하셨으니, 저희에게도 굳센 믿음을 주소서.”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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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궁궐의 시종장 세브나를 내쫓으시고 힐키야의 아들 엘야킴에게 그의 권력을 넘겨주시리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다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간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고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다윗 집안의 열쇠를 그의 어깨 위에 메어 주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22,19-23
              주님께서 궁궐의 시종장 세브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19 “나는 너를 네 자리에서 내쫓고, 너를 네 관직에서 끌어내리리라.
              20 그날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
              나는 힐키야의 아들인 나의 종 엘야킴을 불러
              21 그에게 너의 관복을 입히고
              그에게 너의 띠를 매어 주며 그의 손에 너의 권력을 넘겨주리라.
              그러면 그는 예루살렘 주민들과 유다 집안의 아버지가 되리라.
              22 나는 다윗 집안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메어 주리니
              그가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그가 닫으면 열 사람이 없으리라.
              23 나는 그를 말뚝처럼 단단한 곳에 박으리니
              그는 자기 집안에 영광의 왕좌가 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1,33-36
              33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
              34 “누가 주님의 생각을 안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분의 조언자가 된 적이 있습니까?
              35 아니면 누가 그분께 무엇을 드린 적이 있어
              그분의 보답을 받을 일이 있겠습니까?”
              36 과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분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3-20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20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질문하십니다. 제자들은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예언자”라고 답을 드립니다. 명칭은 각기 다르나 공통점이 있는데, 하느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세상 마지막 날을 예고하는 인물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대답에서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생각을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답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제자들에게 연이어 질문하시는 예수님과 정답이 된 베드로의 신앙 고백 때문에 마음과 마음으로 미소가 번집니다.

              어느 날 부처님이 제자들을 영산에 모이게 합니다. 그리고 한마디 말씀도 없이 연꽃 한 송이를 손가락 끝으로 잡은 채 제자들에게 보입니다. 다들 그 뜻을 알지 못하여 말 없이 스승의 손가락 끝에 들린 꽃만 보는데, 그 가운데 ‘가섭’만이 그 뜻을 깨닫고 빙그레 미소 짓습니다. 그래서 이를 ‘염화미소’라 하고, ‘이심전심’이라고도 합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에 법을 가섭에게 맡겼는데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했다고 하여 생긴 말입니다. 

              그동안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시고, 기적을 통하여 그 의미를 밝혀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셨던 것입니다. 이때 베드로의 대답은 가섭의 미소처럼 완벽하였고, 베드로가 받은 하늘 나라의 열쇠는 가섭이 부처님에게 받은 법처럼 하늘의 뜻을 땅에 이루게 하는 도구였습니다. 

              제2독서인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은 베드로가 예수님에게서 받은 하늘 나라의 열쇠가 얼마나 큰 것인지 미루어 짐작하게 합니다.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 누가 주님의 생각을 안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분의 조언자가 된 적이 있습니까?”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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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 초대

              에제키엘 예언자는 천사에게 이끌려 주님의 집으로 들어가 주님의 영광을 보고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스승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라며,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의 영광이 주님의 집으로 들어갔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43,1-7ㄷ
              천사가 1 나를 대문으로, 동쪽으로 난 대문으로 데리고 나갔다.
              2 그런데 보라, 이스라엘 하느님의 영광이 동쪽에서 오는 것이었다.
              그 소리는 큰 물이 밀려오는 소리 같았고, 땅은 그분의 영광으로 빛났다.
              3 그 모습은 내가 본 환시,
              곧 그분께서 이 도성을 파멸시키러 오실 때에 내가 본 환시와 같았고,
              또 그 모습은 내가 크바르 강 가에서 본 환시와 같았다.
              그래서 나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4 그러자 주님의 영광이 동쪽으로 난 문을 지나 주님의 집으로 들어갔다.
              5 그때 영이 나를 들어 올려 안뜰로 데리고 가셨는데,
              주님의 집이 주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었다.
              6 그 사람이 내 곁에 서 있는데,
              주님의 집에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7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사람의 아들아, 이곳은 내 어좌의 자리, 내 발바닥이 놓이는 자리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영원히 살 곳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3,1-12
              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4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5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6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7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8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9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10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이사 9,1-6)와 복음(루카 1,26-38)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주요 호칭 가운데 하나가 ‘사람의 아들’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몇 번을 제외하고는 예수님께서 이 표현을 직접 쓰십니다. 사실 구약 성경에서도 ‘사람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나오지만 대부분은 인간 존재나 인류를 가리킵니다. 특히 에제키엘서나 다니엘서에서 ‘사람의 아들’은 하느님과 구별된 이로 ‘보통의 인간’이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오늘 독서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를 ‘사람의 아들’이라 부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호칭을 다른 의도로 당신께 사용하셨습니다. 이 호칭은 그분의 인성만이 아니라 지상에서 수행하신 메시아 사명을 통하여 드러난 존엄한 신성까지 모두 담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하느님과 같은 권능을 지니고 계시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버림받고 고통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람의 신분과 사명을 가지고 계심을 드러내는 호칭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신을 비우시어 사람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군중과 제자들에게 겸손한 섬김의 삶을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남들에게 보이려고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이며, 잔칫집이나 회당에서 높은 자리에 앉아 사람들에게 인사받기만을 좋아하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1요한 3,1 참조)가 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 보통의 인간으로서 ‘사람의 아들’로 불린 에제키엘은 영광으로 가득 찬 하느님의 천상 어좌를 보았습니다. ‘사람의 아들’로서 신성과 인성을 모두 지니신 예수님의 명을 우리가 따른다면, 우리는 그 이상의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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