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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9.08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9/8)

말씀의 초대

미카 예언자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제1독서).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예언대로, 마리아에게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신다(복음). 

제1독서

▥ 미카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 그러므로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주님은 그들을 내버려 두리라.
그 뒤에 그의 형제들 가운데 남은 자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오리라.
3 그는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
주 그의 하느님 이름의 위엄에 힘입어 목자로 나서리라.
그러면 그들은 안전하게 살리니
이제 그가 땅끝까지 위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4 그리고 그 자신이 평화가 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의 시작입니다.

1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2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3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4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6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8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9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10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11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12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13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14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15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대개 족보는 그 집안의 근본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기능을 합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아브라함과 다윗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집안을 드러내는 듯하나, 동시에 이스라엘 역사와 사회 속에서 용인되기 어려운 다섯 여인(타마르, 라합, 룻, 밧세바, 마리아)을 등장시킴으로써 꽤 복잡하고 심오한 의미를 담아냅니다.

마태오 복음을 가리켜 ‘교회의 복음’이라고들 합니다. ‘교회’라는 용어를 유일하게 사용하는 복음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복합체’로서의 교회 공동체를 강조하기 때문이지요.

교회는 특정 기준에 부합하는 이들만의 고결한 모임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낼지언정 함께하고자 하는 이들이 사랑으로 하나 된 공동체입니다. 그런 이유로 이스라엘 역사 속에 세상 기준으로는 어둡고 불결하다고 여긴 여인들이 족보에 등장한 것이지요. 더욱이 예수님마저 ‘처녀’의 몸을 통하여 탄생하셨다고 기술하고 있는 대목은 보란 듯 우리의 관습과 전통, 그리고 상식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혼인도 하지 않은 딸이 나가서 아이를 배어 들어오는 상황을 맞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떨까요. 어쩌면 복음은 우리의 마음을 찢어 놓고 갈라 놓아 아픔마저 느끼지 못하게 하는 처절한 호소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제아무리 법과 질서를 지키고 윤리적으로 흠이 없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초대와 호소는 얼마간 제 삶을 흔들어 놓고 뒤집어 놓는 데서 시작합니다. 성모님께서는 그런 혼란 속에서 당신의 믿음을 지켜 내신 분이십니다. 그분에 대한 기억과 존경은 삶의 익숙함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신앙의 가장 위험한 요소는 ‘이만하면 되었다.’라는 안도감 속에 기생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늘 새로운 도전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Posted by 에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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