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시몬과 안드레아에게, 그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고 하시자, 그들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다(복음).

제1독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0,9-18
형제 여러분, 9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18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8-22
그때에 18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20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21 거기에서 더 가시다가 예수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22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공관 복음은 공통적으로 베드로와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첫 제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모두 갈릴래아 호수에서 일하던 어부였습니다. 고기를 잡던 어부는 이제 사람을 낚는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이와 함께 복음서는 그들이 지체 없이 예수님의 부름에 응답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들은 “나를 따라오너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곧바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첫 제자들의 모습은 말씀에 대한 응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제자들의 모습에서 오늘 독서의 표현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제자들의 응답은 믿음의 행위이고 그들의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행동으로 응답한 제자들도 아직 확고한 믿음을 지니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만 오해하기도 하고 가르침과 상반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모습은 예수님의 말씀에 한 번 응답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자주 그 말씀을 듣고 되새기며 그에 응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면서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제자들의 믿음이 깊어지는 것처럼 우리도 꾸준히 그 말씀을 듣고 말씀에 응답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참된 신앙인의 모습일 것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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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 당신 종들, 당신의 재산인 이 지파들을 생각하시어 돌아오시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이 풍요로워져서 그리스도 안에서 어떠한 은사도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조심하고 깨어 지키고,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깨어 있으라고 제자들에게 거듭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아, 주님께서 하늘을 찢고 내려오신다면!>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63,16ㄹ-17.19ㄷㄹ; 64,2ㄴ-7
16 주님, 당신만이 저희 아버지시고
예로부터 당신 이름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17 주님, 어찌하여 저희를 당신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저희 마음이 굳어져 당신을 경외할 줄 모르게 만드십니까?
당신 종들을 생각하시어,
당신의 재산인 이 지파들을 생각하시어 돌아오소서.
19 아, 당신께서 하늘을 찢고 내려오신다면!
당신 앞에서 산들이 뒤흔들리리이다.
64,2 당신께서 내려오셨을 때 산들이 당신 앞에서 뒤흔들렸습니다.
3 당신 아닌 다른 신이 자기를 고대하는 이들을 위하여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은
예로부터 아무도 들어 보지 못하였고 아무도 귀로 듣지 못하였으며
어떠한 눈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4 당신께서는 의로운 일을 즐겨 하는 이들을,
당신의 길을 걸으며 당신을 기억하는 이들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죄를 지었고 당신께서는 진노하셨습니다.
당신의 길 위에서 저희가 늘 구원을 받았건만
5 이제 저희는 모두 부정한 자처럼 되었고
저희의 의로운 행동이라는 것들도 모두 개짐과 같습니다.
저희는 모두 나뭇잎처럼 시들어
저희의 죄악이 바람처럼 저희를 휩쓸어 갔습니다.
6 당신 이름 부르며 경배드리는 자 없고
당신을 붙잡으려고 움직이는 자도 없습니다.
당신께서 저희를 외면하시고
저희 죄악의 손에 내버리셨기 때문입니다.
7 그러나 주님, 당신은 저희 아버지십니다.
저희는 진흙, 당신은 저희를 빚으신 분
저희는 모두 당신 손의 작품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3-9
형제 여러분,
3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4 나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에게 베푸신 은총을 생각하며,
여러분을 두고 늘 나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5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느 모로나 풍요로워졌습니다.
어떠한 말에서나 어떠한 지식에서나 그렇습니다.
6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 여러분 가운데에 튼튼히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7 그리하여 여러분은 어떠한 은사도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8 그분께서는 또한 여러분을 끝까지 굳세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흠잡을 데가 없게 해 주실 것입니다.
9 하느님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도록
여러분을 불러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깨어 있어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33-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3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4 그것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경우와 같다.
그는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분부한다.
35 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6 주인이 갑자기 돌아와 너희가 잠자는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여라.
37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대림 시기는 말 그대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때입니다. 대림 시기의 정점은 예수님의 탄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서들이 전하는 것처럼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십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옛 계약과 새 계약의 분기점이 되고 예수님께서는 구약 성경의 예언대로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시어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대림 시기에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면서 그분의 구원 업적을 기억하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따라서 대림 시기는 예수님께서 이미 세상에 오신 것을 통하여 다시 예수님께서 오시기를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영광 속에 다시 오시는 날은 종말입니다. 처음과 마지막이 맞닿아 있는 셈입니다. 
우리는 한 해의 마지막에 종말에 관한 말씀을 들었고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한 해의 시작에 듣게 되는 말씀도 이와 비슷합니다.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기다림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간은 정해지지 않은, 언제까지인지 알 수 없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면서 해마다 그 기쁨을 맛보아야 합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이 두려움을 없애는 기쁨이 된 것처럼 오늘 우리도 다시 오실 예수님께 희망을 두고 그분을 기다립니다. 이것이 대림 시기의 의미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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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하느님께서 머지않아 반드시 일어날 일들을 당신 종들에게 보여 주시려고 당신 천사를 보내셨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다시는 밤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빛이 되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22,1-7
    주님의 천사는 수정처럼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나 요한에게 1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느님과 어린양의 어좌에서 나와,
    2 도성의 거리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었습니다.
    강 이쪽저쪽에는 열두 번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다달이 열매를 내놓습니다.
    그리고 그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에 쓰입니다.
    3 그곳에는 더 이상 하느님의 저주를 받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도성 안에는 하느님과 어린양의 어좌가 있어,
    그분의 종들이 그분을 섬기며 4 그분의 얼굴을 뵐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마에는 그분의 이름이 적혀 있을 것입니다.
    5 다시는 밤이 없고 등불도 햇빛도 필요 없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그들의 빛이 되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토록 다스릴 것입니다.
    6 그 천사가 또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확실하고 참된 말씀이다.
    주님, 곧 예언자들에게 영을 내려 주시는 하느님께서
    머지않아 반드시 일어날 일들을 당신 종들에게 보여 주시려고
    당신 천사를 보내신 것이다.
    7 보라, 내가 곧 간다.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행복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깨어 있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34-3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35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36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신앙인들에게 오늘은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내일부터 대림 시기와 함께 새로운 전례주년을 다시 시작합니다. 우리는 한 해를 되돌아보며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이런 때에 우리가 듣는 예수님의 말씀은 “늘 깨어 기도하여라.”입니다. 늘 깨어 있는 것, 그리고 기도하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신앙인에게 필요한 자세입니다. 
    깨어 있으라는 요청은 마태오 복음서가 전하는 열 처녀의 비유에서 잘 드러납니다(25,1-13 참조). 그날이 언제 올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그날이 언제 오더라도 준비하며 깨어 있는 것이 종말을 맞는 적절한 자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깨어 있지 못하던 제자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인간적인 부족함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 줍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스스로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면서 현실에 안주하며 말씀에 집중하지도 또 말씀을 실천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기도에 대한 말씀은 예수님만이 아니라 제자들 그리고 성인들을 통하여 다방면으로 듣게 됩니다. 기도는 신앙인들의 표지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바로 신앙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모범을 몸소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그 모범에 따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기도로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실행합니다. 매일, 자주 하는 기도는 신앙인의 양식과도 같습니다. 깨어 있는 것과 기도하는 것은 서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늘 기도하는 사람은 늘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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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천사가 사탄을 결박하여 천 년 동안 움직이지 못하게 하며, 어좌에 앉으신 분이 죽은 이들을 그 행실대로 심판하고, 새 예루살렘이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본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나무의 변화를 보고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아는 것처럼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들은 저마다 자기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았습니다. 나는 새 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20,1-4.11―21,2
    나 요한은 1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지하의 열쇠와 큰 사슬을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2 그 천사가 용을, 곧 악마이며 사탄인 그 옛날의 뱀을 붙잡아
    천 년 동안 움직이지 못하도록 결박하였습니다.
    3 그리고 그를 지하로 던지고서는 그곳을 잠그고 그 위에다 봉인을 하여,
    천 년이 끝날 때까지 다시는 민족들을 속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 뒤에 사탄은 잠시 풀려나게 되어 있습니다.
    4 나는 또 어좌들을 보았는데, 그 위에 앉은 이들에게 심판할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증언과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목이 잘린 이들의 영혼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짐승이나 그의 상에 경배하지도 않고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도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11 나는 또 크고 흰 어좌와 그 위에 앉아 계신 분을 보았습니다.
    땅과 하늘이 그분 앞에서 달아나 그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12 그리고 죽은 이들이 높은 사람 낮은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어좌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책들이 펼쳐졌습니다.
    또 다른 책 하나가 펼쳐졌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었습니다.
    죽은 이들은 책에 기록된 대로 자기들의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았습니다.
    13 바다가 그 안에 있는 죽은 이들을 내놓고,
    죽음과 저승도 그 안에 있는 죽은 이들을 내놓았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았습니다.
    14 그리고 죽음과 저승이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 이 불 못이 두 번째 죽음입니다.
    15 생명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
    21,1 나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2 그리고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9-33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29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30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31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33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계절의 변화는 참으로 신비합니다. 과학적 설명과는 별개로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바뀌는 모습은 자연이 살아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변화를 자세하게 관찰하셨던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무화과나무나 다른 나무들에 잎이 돋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립니다. 하느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느님의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가 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세대’가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단락에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시고 그것을 종말과 연결시키시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은 멸망하였지만, 아직 종말은 오지 않았습니다. 학자들은 ‘이 세대’라는 표현을 우리가 생각하는 한 세대로 보기보다 더 넓은 의미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이 세대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세대, 곧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종말까지의 세대를 나타낸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 표현에 대하여 여전히 토론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연에서 계절의 변화를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업적으로 하느님 나라를 알 수 있다는 점입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안에서 많은 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그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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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대바빌론이 무너졌다는 천사의 소리와 하느님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우시다는 소리를 듣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적군에 포위되는 징벌의 날에, 사람의 아들이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무너졌다, 대바빌론이!>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18,1-2.21-23; 19,1-3.9ㄱㄴ
      나 요한은 1 큰 권한을 가진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의 광채로 땅이 환해졌습니다.
      2 그가 힘찬 소리로 외쳤습니다.
      “무너졌다, 무너졌다, 대바빌론이! 바빌론이 마귀들의 거처가 되고
      온갖 더러운 영들의 소굴, 온갖 더러운 새들의 소굴,
      더럽고 미움받는 온갖 짐승들의 소굴이 되고 말았다.”
      21 또 큰 능력을 지닌 한 천사가 맷돌처럼 큰 돌을 들어 바다에 던지며 말하였습니다.
      “큰 도성 바빌론이 이처럼 세차게 던져질 터이니
      다시는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22 수금 타는 이들과 노래 부르는 이들,
      피리 부는 이들과 나팔 부는 이들의 소리가 다시는 네 안에서 들리지 않고
      어떠한 기술을 가진 장인도 다시는 네 안에서 찾아볼 수 없으며
      맷돌 소리도 다시는 네 안에서 들리지 않을 것이다.
      23 등불의 빛도 다시는 네 안에서 비치지 않고
      신랑과 신부의 목소리도 다시는 네 안에서 들리지 않을 것이다.
      너의 상인들이 땅의 세력가였기 때문이며
      모든 민족들이 너의 마술에 속아 넘어갔기 때문이다.”
      19,1 그 뒤에 나는 하늘에 있는 많은 무리가 내는 큰 목소리 같은 것을 들었습니다.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권능은 우리 하느님의 것.
      2 과연 그분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우시다.
      자기 불륜으로 땅을 파멸시킨 대탕녀를 심판하시고
      그 손에 묻은 당신 종들의 피를 되갚아 주셨다.”
      3 그들이 또 말하였습니다.
      “할렐루야! 그 여자가 타는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간다.”
      9 또 그 천사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행복하다.’고 기록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0-2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된 것을 보거든,
      그곳이 황폐해질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아라.
      21 그때에 유다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달아나고,
      예루살렘에 있는 이들은 거기에서 빠져나가라.
      시골에 있는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마라.
      22 그때가 바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는 징벌의 날이기 때문이다.
      23 불행하여라, 그 무렵에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
      이 땅에 큰 재난이, 이 백성에게 진노가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24 사람들은 칼날에 쓰러지고 포로가 되어 모든 민족들에게 끌려갈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25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26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27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28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루살렘의 성전은 두 번 파괴됩니다. 기원전 8세기 바빌론에 의해서, 그리고 기원후 70년 로마에 의해서입니다. 성전이 파괴된 사건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큰 충격이었기에, 이를 계기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고 자신들의 죄를 성찰합니다. 요한 묵시록은 이 두 사건을 마치 하나의 사건처럼 연결합니다. 시대적으로 요한 묵시록에서는 로마가 성전을 파괴한 사건을 나타내려고 ‘바빌론’이라는 명칭을 사용합니다. 묵시록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아주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마치 그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전하는 말처럼 들립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사람들에게 종말을 떠올리게 할 만큼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전쟁으로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가며 포로가 되고 삶의 터전은 무너집니다. 전쟁을 피하기 힘든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은 더 큰 고통을 받습니다. 성경은 이런 재난의 상황을 말하면서 백성들의 행동을 신앙 안에서 성찰합니다. 여기에는 하느님께서 아무 이유 없이 이런 재난을 허락하시지 않으실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 안에서 멸망의 이유를 찾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종말에 관한 말씀이 우리의 잘못이나 죄를 탓하기 위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도 큰 사건들이 생기면 사람들은 ‘왜?’라고 질문합니다. 그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은 우리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면서 동시에 하느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종말이 모든 것의 끝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께서 재난의 상황에서도 우리를 속량으로 이끄신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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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일곱 천사가 마지막 일곱 재앙을 가지고 있는 표징을 본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박해할 것이나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니 인내로써 생명을 얻으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들은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15,1-4
      나 요한은 1 크고 놀라운 다른 표징이 하늘에 나타난 것을 보았습니다.
      일곱 천사가 마지막 일곱 재앙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하느님의 분노가 끝나게 될 것입니다.
      2 나는 또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 유리 바다 위에는 짐승과 그 상과 그 이름을 뜻하는 숫자를
      무찌르고 승리한 이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수금을 들고,
      3 하느님의 종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주님께서 하신 일은 크고도 놀랍습니다.
      민족들의 임금님, 주님의 길은 의롭고 참되십니다.
      4 주님, 주님을 경외하지 않을 자 누구이며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지 않을 자 누구입니까?
      정녕 주님 홀로 거룩하십니다. 모든 민족들이 와서 주님 앞에 경배할 것입니다.
      주님의 의로운 처사가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2-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13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17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우리는 세례 때 악과 악의 행실을 끊어 버리고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참다운 신앙인은 이 고백에 맞갖은 삶을 살아갑니다. 그저 마음과 생각으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는 행동으로 믿음을 표현해야 합니다. 또한 믿음은 개인적인 차원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믿음을 가진 이들은 공동체 안에서 함께 믿음을 표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느님을 향한 개인적 믿음의 표현이 ‘고백’이라면, 공동체 안에서 이웃이나 다른 이들을 향하여 믿음을 표현하는 것은 ‘증언’입니다. 이렇게 증언은 믿음을 고백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이 경험하게 될 박해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믿음 때문에 환난을 겪고 죽음까지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신앙인들에게는 증언의 기회가 됩니다. 우리는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고 그것에 믿음을 두기 때문입니다. 
      증언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선조들이 전해 준 증언을 통하여 하느님과 예수님을 알 수 있었고, 또 우리의 증언으로 다른 이들에게 주님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증언은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이나 행동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박해를 겪은 많은 신앙의 선조들 또한 그들의 신앙을 우리에게 이런 방식으로 증언합니다. 고백과 증언은 신앙의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개인의 고백을 넘어 공동체 안에서 믿음을 증언하는 것은 모든 신앙인의 과제입니다. 그에 필요한 언변과 지혜는 주님께서 마련해 주실 것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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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이 땅 위로 낫을 휘두르시어 땅의 곡식을 수확하시는 것을 본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인데, 그때에 하늘에서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할 때가 왔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14,14-19
      나 요한이 14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그 구름 위에는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앉아 계셨는데,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손에는 날카로운 낫을 들고 계셨습니다.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 나와,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께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낫을 대어 수확을 시작하십시오.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할 때가 왔습니다.”
      16 그러자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이 땅 위로 낫을 휘두르시어
      땅의 곡식을 수확하셨습니다.
      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왔는데,
      그도 날카로운 낫을 들고 있었습니다.
      18 또 다른 천사가 제단에서 나왔는데, 그는 불에 대한 권한을 지닌 천사였습니다.
      그가 날카로운 낫을 든 천사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 날카로운 낫을 대어 땅의 포도나무에서 포도송이들을 거두어들이십시오.
      포도가 다 익었습니다.”
      19 그러자 그 천사가 땅 위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들이고서는,
      하느님 분노의 큰 포도 확에다 던져 넣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5-11
      그때에 5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6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7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8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9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10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11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지혜 3,1-9)와 복음(마태 10,17-22)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5-11
      그때에 5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6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7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8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9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10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11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지혜 3,1-9)와 복음(마태 10,17-22)을 봉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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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어린양이 시온산에 서 있고, 십사만 사천 명이 새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본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헌금함에 넣는 것을 보시고,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들의 이마에는 그리스도와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14,1-3.4ㄴ-5
      나 요한이 1 보니 어린양이 시온산 위에 서 계셨습니다.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2 그리고 큰 물소리 같기도 하고 요란한 천둥소리 같기도 한 목소리가
      하늘에서 울려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내가 들은 그 목소리는 또 수금을 타며 노래하는 이들의 목소리 같았습니다.
      3 그들은 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노래는 땅으로부터 속량된 십사만 사천 명 말고는
      아무도 배울 수 없었습니다.
      4 그들은 어린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과 어린양을 위한 맏물로
      사람들 가운데에서 속량되었습니다.
      5 그들의 입에서는 거짓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흠 없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4
      그때에 1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2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이스라엘의 성전은 제사뿐만 아니라 자선의 중심지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모이고, 예배의 핵심 역할을 한 곳이기에 성전을 중심으로 유다인의 자선 활동이 활발하였을 것입니다. 또한 유다인들에게 자선은 제사나 기도만큼 중요하고, 신앙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대한 오늘 복음은 성전을 배경으로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십니다. 부자와 과부, 풍족함과 궁핍함이 대조됩니다. 부자들이 헌금함에 어느 정도의 예물을 넣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과부는 렙톤 두 닢이라는 얼마 되지 않는 예물을 봉헌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과부를 칭찬하십니다. 가난한 과부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봉헌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마치 하느님께 받은 것을 모두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것에 대하여 말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여기서 ‘예물’이라는 표현은 ‘선물’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부자들은 자신들이 받은 것 중에 일부만을 하느님께 돌려드리지만 과부는 자신이 받은 모든 것을 예물로 내놓습니다. 예물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봉헌의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봉헌하는지, 나에게 주어진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이해하는지가 중요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것이 나의 노력만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받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나의 것이라 여겨지는 것을 다시 하느님께 돌려드리고 이웃과 나누는 것이 조금은 더 수월할 것 같습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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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 초대

      에제키엘 예언자는, 주님께서 양과 양 사이, 숫양과 숫염소 사이의 시비를 가리실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종말에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을 파멸시키시고 나서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것이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와서 옥좌에 앉아 모든 민족들을,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가를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너희 나의 양 떼야. 나 이제 양과 양 사이의 시비를 가리겠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4,11-12.15-17
      11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12 자기 가축이 흩어진 양 떼 가운데에 있을 때,
      목자가 그 가축을 보살피듯, 나도 내 양 떼를 보살피겠다.
      캄캄한 구름의 날에, 흩어진 그 모든 곳에서 내 양 떼를 구해 내겠다.
      15 내가 몸소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몸소 그들을 누워 쉬게 하겠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16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겠다.
      그러나 기름지고 힘센 양은 없애 버리겠다.
      나는 이렇게 공정으로 양 떼를 먹이겠다.
      17 너희 나의 양 떼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양과 양 사이, 숫양과 숫염소 사이의 시비를 가리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는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5,20-26.28
      형제 여러분,
      20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21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하여 왔으므로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온 것입니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
      23 그러나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맏물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께 속한 이들입니다.
      24 그러고는 종말입니다.
      그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권세와 모든 권력과 권능을 파멸시키시고 나서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것입니다.
      25 하느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 잡아다 놓으실 때까지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합니다.
      26 마지막으로 파멸되어야 하는 원수는 죽음입니다.
      28 그러나 아드님께서도 모든 것이 당신께 굴복할 때에는,
      당신께 모든 것을 굴복시켜 주신 분께 굴복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의 아들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아 모든 민족들을 가를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5,31-4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1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32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33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34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36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37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39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40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41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43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44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45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46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우리는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인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최후 심판에 관한 복음을 듣습니다. 마지막 날에 “사람의 아들”께서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사람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리하여 의인들은 세상 창조 때부터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이미 창조와 함께 시작된 하느님의 구원이 완성되는 모습입니다.
      이와 반대로 악한 이들은 영원한 불 속에서 벌을 받습니다. 그러나 의인이나 악인이나 모두 자신들이 “언제” 예수님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하였는지 또는 하지 않았는지 묻습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의 답은 명확합니다. 기준은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의 수난 전에 마지막으로 최후 심판의 내용을 전합니다. 이 말씀은 마태오 복음의 전체적인 구도와도 잘 어울립니다. 마태오는 예수님께서 공생활 초기에 하신 산상 설교를 통하여 가르침을 요약합니다(5-7장 참조). 그리고 산상 설교의 마지막 가르침에서,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고 하며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을 강조합니다(7,24 참조). 최후 심판에서 강조되는 것 또한 말씀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가장 작은 이들에게 말씀을 실행하였는지가 심판의 기준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구분되어 있지 않습니다. 심판은 마지막 날에 있겠지만 지금 여기에서 말씀을 실행하며 사는지 아닌지가 심판의 기준이 됩니다. 따라서 최후 심판에 관한 말씀은 지금 여기서의 삶을 생각하게 합니다. 결국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가르침을 실행에 옮기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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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 초대

      즈카르야 예언자는 시온에게, 만군의 주님께서 그 한가운데에 머무르시리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딸 시온아, 즐거워하여라. 내가 이제 가서 머무르리라.>
      ▥ 즈카르야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2,14-17
      14 “딸 시온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15 그날에 많은 민족이 주님과 결합하여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그때에 너는 만군의 주님께서 나를 너에게 보내셨음을 알게 되리라.
      16 주님께서는 이 거룩한 땅에서 유다를 당신 몫으로 삼으시고
      예루살렘을 다시 선택하시리라.
      17 모든 인간은 주님 앞에서 조용히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의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46-50
      그때에 4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47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48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49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라는 표현 때문에 혼란스러워합니다. 마리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에 의구심을 가지기도 하고 다양한 해석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를 소개한다면 당시에 ‘형제’라는 표현이 지금보다는 넓은 의미로 이해되었고 사촌들에게도 적용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이 강조하는 것은 새로운 관계입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을 형제자매로 생각합니다.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시는 것을 보여 주고 우리에게 증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죄인으로 여겨지던 이들과 함께 어울리시고 그들을 용서하시고 받아들이십니다. 이것 때문에 종교 지도자들과 마찰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과 과부들도 돌보시고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공동체에서 소외된 이들을  공동체 안으로 돌려보내십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기존의 관계에서 벗어나시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가십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의 관계도 이런 새로운 관계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새로운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인이 가지는 새로운 정체성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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