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지혜서의 저자는, 지혜는 늘 빛이 나서 그를 사랑하는 이들은 쉽게 알아보고 그를 찾는 이들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실 것이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다며,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준비하고 깨어 있으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지혜를 찾는 이들은 그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6,12-16
12 지혜는 바래지 않고 늘 빛이 나서 그를 사랑하는 이들은 쉽게 알아보고
그를 찾는 이들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3 지혜는 자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미리 다가가 자기를 알아보게 해 준다.
14 지혜를 찾으러 일찍 일어나는 이는 수고할 필요도 없이
자기 집 문간에 앉아 있는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
15 지혜를 깊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완전한 예지다.
지혜를 얻으려고 깨어 있는 이는 곧바로 근심이 없어진다.
16 지혜는 자기에게 맞갖은 이들을 스스로 찾아 돌아다니고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상냥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의 모든 생각 속에서 그들을 만나 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실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말씀입니다.
4,13-18
13 형제 여러분, 죽은 이들의 문제를 여러분도 알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4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실 것입니다.
15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이 말을 합니다.
주님의 재림 때까지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죽은 이들보다 앞서지는 않을 것입니다.
16 명령의 외침과 대천사의 목소리와 하느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주님께서 친히 하늘에서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고,
17 그다음으로, 그때까지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18 그러니 이러한 말로 서로 격려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말씀입니다.
4,13-14
13 형제 여러분, 죽은 이들의 문제를 여러분도 알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4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5,1-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2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4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5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6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7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8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9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11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12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13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힙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문 앞에 서서 문을 열어 달라고 청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의 말씀은 다소 냉정하게 들립니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비로운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간청하는 어리석은 처녀들에게 주인은 문을 열어 줄 법하지만 그리하지 않습니다. 유다교에서 ‘닫힌 문’은 놓쳐 버린 기회를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마지막 때에, 마지막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기회는 다시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슬기로운 처녀와 어리석은 처녀의 비유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려면 준비가 필요하며 그 준비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이 보여 주는 것처럼 등을 밝힐 수 있는 기름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누구에게서 받을 수 있거나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종말을 말하는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이 열 처녀의 비유는 마지막 때가 아닌 지금의 삶에 관심을 두게 만듭니다. 지금이 혼인 잔치를 위한 기름을 준비할 때입니다. 
현재의 삶에 따라 슬기로운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도 될 수 있습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지금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유다교의 ‘닫힌 문’의 의미를 생각하면 우리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할 수 있고 여전히 우리의 삶 안에서 종말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면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수많은 기회가 있음에도 그것을 잡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문이 닫히기 전에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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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안다며, 자신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필리피 신자들에게 고백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며,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
    4,10-19
    형제 여러분,
    10 여러분이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을 마침내 다시 한번 보여 주었기에,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합니다.
    사실 여러분은 줄곧 나를 생각해 주었지만
    그것을 보여 줄 기회가 없었던 것입니다.
    11 내가 궁핍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어떠한 처지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12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13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14 그러나 내가 겪는 환난에 여러분이 동참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15 필리피 신자 여러분,
    복음 선포를 시작할 무렵 내가 마케도니아를 떠날 때,
    여러분 외에는 나와 주고받는 관계에 있는 교회가 하나도 없었음을
    여러분도 알고 있습니다.
    16 내가 테살로니카에 있을 때에도
    여러분은 두어 번 필요한 것을 보내 주었습니다.
    17 물론 내가 선물을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많은 이익이 돌아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18 나는 모든 것을 다 받아 넉넉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에파프로디토스 편에 보낸 것을 받아 풍족합니다.
    그것은 향기로운 예물이며 하느님 마음에 드는 훌륭한 제물입니다.
    19 나의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영광스럽게 베푸시는
    당신의 그 풍요로움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9ㄴ-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9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10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11 그러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12 또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
    13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14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다.
    1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루카 복음서는 다른 복음서와 비교하여 재물을 사용하는 것에 많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부유함을 좇기보다 가난을 실천하고, 이웃들과 재물을 나누라고 권고합니다. 이렇게 가난과 나눔을 강조하는 것에서 당시 공동체 안에 그만큼 빈부 격차가, 부와 가난의 문제가 심각하였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참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동체 안의 이런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더욱 현실적이고 실천을 강조하는 가르침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루카는 재물을 도구처럼 표현합니다. 신앙인들은 재물을 잘 다루어야 합니다. 재물을 많이 모으고 쌓아 두는 것이 아니라, 올바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눔은 재물을 사용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재물은 분명 삶의 목적이 아니라 도구입니다. 누구도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우리 삶의 목적이며 재물은 도구일 뿐입니다. 재물이 목적이 되면 그때부터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추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세상 안에서 재물을 다루며 살아가지만 어디에 목적을 두고 살아야 하는지 알려 줍니다. 목적과 도구를 구분하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방향을 잃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삶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일깨우며 언제나 하느님을 선택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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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구세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하며 하늘의 시민답게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으라고 권고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집사의 영리한 처사에 관한 비유를 드시며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고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우리는 구세주를 고대합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
      3,17―4,1
      17 형제 여러분, 다 함께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이 우리를 본보기로 삼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다른 이들도 눈여겨보십시오.
      18 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자주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데,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19 그들의 끝은 멸망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배를 하느님으로,
      자기네 수치를 영광으로 삼으며 이 세상 것만 생각합니다.
      20 그러나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세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합니다.
      21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키실 수도 있는 그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4,1 그러므로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형제 여러분,
      나의 기쁨이며 화관인 여러분,
      이렇게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8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집사를 두었는데, 이 집사가 자기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2 그를 불러 말하였다.
      ‘자네 소문이 들리는데 무슨 소린가? 집사 일을 청산하게.
      자네는 더 이상 집사 노릇을 할 수 없네.’
      3 그러자 집사는 속으로 말하였다.
      ‘주인이 내게서 집사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니 어떻게 하지?
      땅을 파자니 힘에 부치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다. 4 옳지, 이렇게 하자.
      내가 집사 자리에서 밀려나면
      사람들이 나를 저희 집으로 맞아들이게 해야지.’
      5 그래서 그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첫 사람에게 물었다.
      ‘내 주인에게 얼마를 빚졌소?’
      6 그가 ‘기름 백 항아리요.’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으시오.
      그리고 얼른 앉아 쉰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7 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당신은 얼마를 빚졌소?’ 하고 물었다.
      그가 ‘밀 백 섬이오.’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아 여든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8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많은 사람이 오늘 복음의 비유를 읽으면서 의문을 가질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불의해 보이는 집사를 칭찬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비유 속의 집사처럼 자신을 내쫓는 주인에게, 자신에게 불이익을 주는 사람에게 집사처럼 행동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불의한 집사의 비유는 우리에게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세상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자신에게 득이 되는 것을 찾습니다. 불의한 집사는 그 모습을 잘 보여 줍니다. 자기 자리를 잃게 된 집사는 ― 그 원인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표현되지는 않지만 ― 세상의 셈법대로 자신을 위하여 행동합니다.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행동은 정의에 따른 것도 사람들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그는 자신을 위하여 주인과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 줍니다. 그런 집사는 칭찬을 받습니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집사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그의 행동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찾아가는 모습입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에게 득이 되는 것을 찾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치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신앙인들 또한 믿음 안에서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찾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세상 안에도 영리한 사람들이 있듯이 우리도 신앙 안에서 영리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도 줄 수 없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영리함보다 더 영리하게 우리의 구원을 찾고 얻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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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그에게 이롭던 것들을,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는 의인 아흔아홉보다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
        3,3-8ㄱ
        형제 여러분, 3 하느님의 영으로 예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랑하며
        육적인 것을 신뢰하지 않는 우리야말로 참된 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4 하기야 나에게도 육적인 것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있기는 합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육적인 것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5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입니다.
        6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고,
        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7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8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
        3,3-8ㄱ
        형제 여러분, 3 하느님의 영으로 예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랑하며
        육적인 것을 신뢰하지 않는 우리야말로 참된 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4 하기야 나에게도 육적인 것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있기는 합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육적인 것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5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입니다.
        6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고,
        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7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8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다양한 활동을 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꼽자면 하느님 나라의 선포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통하여 하느님의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또한 그분께서는 가르침을 통하여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던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 주십니다. 이런 모습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보여 주신 예수님의 행동입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은 그 단면을 보여 줍니다.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물론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볼멘소리지만, 오히려 이것이 예수님의 모습을 잘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죄를 용서하시고, 죄인을 받아들이시고 그들과 화해하시며 그들도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드러내시려고 함께 음식을 나누십니다. 함께 식탁에 앉는 것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친교와 화해를 나타냅니다. 지금 우리가 거행하는 성체성사의 의미와 비슷합니다. 죄인들도 하느님의 식탁에 초대받은 자녀들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행동은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죄인을 받아들이고 친교 안에 함께 머무는 것은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자신이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일 수도 은전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아흔아홉 마리의 양이나 은전 아홉 닢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한데 모여 친교를 나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식탁에 모두가 모인다는 것은 하늘에서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분명 기쁜 일입니다. 이제 우리도 예수님의 행동에 동참하도록 초대받고 있습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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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당신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십시오. 하느님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시어 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
          2,12-18
          12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늘 순종하였습니다.
          내가 함께 있을 때만이 아니라 지금처럼 떨어져 있을 때에는
          더욱더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십시오.
          13 하느님은 당신 호의에 따라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시어,
          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14 무슨 일이든 투덜거리거나 따지지 말고 하십시오.
          15 그리하여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허물 없는 사람, 순결한 사람,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
          16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니십시오.
          그러면 내가 헛되이 달음질하거나 헛되이 애쓴 것이 되지 않아,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17 내가 설령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가 되어
          여러분이 봉헌하는 믿음의 제물 위에 부어진다 하여도,
          나는 기뻐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18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기뻐하십시오. 나와 함께 기뻐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25-33
          그때에 25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8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29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30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32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33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로마 12,3-13)와 복음(요한 10,11-16)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공관 복음에서 제자가 되는 것을 말할 때, 공통적인 것은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진다는 것은 우선 무엇이 나의 십자가인지 고민하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십자가를 짊어지고 당신 뒤를 따르기를 요구하십니다. 어쩌면 우리는 나의 십자가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고, 또 쉽지 않지만 그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따르는 모습 안에서 제자로서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두 가지 예가 들어 있습니다. 탑을 세우는 사람은 공사를 마칠 수 있는지 계산해 봅니다. 탑을 완성하지 못한다면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전투에 나서는 임금은 상대방의 전력을 헤아려 싸울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아무런 승산이 없다면 화해를 청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이 예시들은 제자가 되려는 이들에게 식별이 필요하다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탑을 세우는 사람이나 전투에 나서는 임금처럼,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루카 복음은 그것을 “자기 소유를 다 버리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이렇게 ‘내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것’을 지는, ‘나’에 연연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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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 잔치에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사람들은 아무도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
            2,5-11
            형제 여러분,
            5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6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8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11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5-24
            그때에 15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던 이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그분께,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였다.
            17 그리고 잔치 시간이 되자 종을 보내어 초대받은 이들에게,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 하고 전하게 하였다.
            18 그런데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양해를 구하기 시작하였다.
            첫째 사람은 ‘내가 밭을 샀는데 나가서 그것을 보아야 하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고 그에게 말하였다.
            19 다른 사람은 ‘내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부려 보려고 가는 길이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였다.
            20 또 다른 사람은 ‘나는 방금 장가를 들었소. 그러니 갈 수가 없다오.’ 하였다.
            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알렸다.
            그러자 집주인이 노하여 종에게 일렀다.
            ‘어서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
            22 얼마 뒤에 종이
            ‘주인님, 분부하신 대로 하였습니다만 아직도 자리가 남았습니다.’ 하자,
            23 주인이 다시 종에게 일렀다.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하느님의 초대와 그것에 대한 거부는 성경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주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구약 성경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초대하십니다. 사람들은 그 초대에 기쁘게 응답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그것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초대와 사람들의 거부를 주제로 합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준비하고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그런데 이 잔치는 언제 열리는지 미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준비되었을 때, 때가 되었을 때, 주인은 이미 초대받은 이들에게 잔치에 오라고 알리지만 사람들은 초대를 거부합니다. 이미 초대받은 사람들은 밭을 사고, 겨릿소를 부리고, 장가를 들었다는 다양한 이유로 초대에 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처음에 초대하지 않았던 이들을 불러 그의 집을 가득 차게 만듭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하느님 나라에 관한 것입니다. 또한 이 비유는 처음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던 유다인들이 아닌 다른 이들이 교회 공동체 안에 어떻게 포함되었는지 알려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초대하셨고 우리는 초대받은 사람들이지만 초대받은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때가 되었을 때, 하느님 나라가 준비되었을 때 그 초대에 응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비유가 말하듯이 그 시간이 언제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초대에 대한 준비와 응답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지금 초대에 준비하고 응답하기 위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하여 하느님 나라의 초대에 우리가 제대로 응답할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기를 요청하고 계십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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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큰 환난을 겪어 내고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한 큰 무리를 본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한다고 말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산으로 오르시어 여덟 가지 참된 행복을 가르치신다(복음).

            제1독서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7,2-4.9-14
            나 요한은 2 다른 한 천사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인장을 가지고
            해 돋는 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땅과 바다를 해칠 권한을 받은 네 천사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3 “우리가 우리 하느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장을 찍을 때까지
            땅도 바다도 나무도 해치지 마라.”
            4 나는 인장을 받은 이들의 수가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인장을 받은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지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9 그다음에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그들은,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손에는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또 어린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
            10 그들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구원은 어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느님과 어린양의 것입니다.”
            11 그러자 모든 천사가 어좌와 원로들과 네 생물 둘레에 서 있다가,
            어좌 앞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하느님께 경배하며 12 말하였습니다.
            “아멘. 우리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영예와 권능과 힘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13 그때에 원로 가운데 하나가,
            “희고 긴 겉옷을 입은 저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느냐?” 하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14 “원로님, 원로님께서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고
            내가 대답하였더니, 그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우리는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입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3,1-3
            사랑하는 여러분,
            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12ㄴ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불행을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국제 연합(UN)은 해마다 행복 지수를 나라별로 조사하는데 국내 총생산, 기대 수명, 사회적 지원, 선택의 자유, 타인에 대한 관대함, 사회의 부정부패 수준 등을 고려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기준들로 개인이 느끼는 행복을 모두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행복하여라.” 예수님의 이 선포는 그 당시에도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향한, ‘나’ 자신을 향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만일 지금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면 아직 마음이 가난하지 못하고, 함께 슬퍼하거나 온유하지 못하고, 자비를 실천하거나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여 평화를 이루는 데 부족한지도 모릅니다. 또한 행복을 위한 의로움의 추구가 부족하거나, 사람들에게 박해를 당할 만큼 주님을 따르는 일에 열성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행복의 기준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은 많이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런 이들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는지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전하신 말씀이고 삶에서 실천해야 할 행복의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은 행복에 대한 우리의 기준을 바꾸라는 초대처럼 들립니다. 행복 선언은 신앙인에게 주어지는 행복을 위한 새로운 기준일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모든 성인을 기억하면서 이 말씀을 듣고 성인들의 삶을 생각하게 됩니다. 성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삶을 살아간 이들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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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 초대

              욥은, 구원자께서 살아 계시고 그분께서 마침내 먼지 위에서 일어서시리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산으로 오르시어 여덟 가지 참된 행복을 가르치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 욥기의 말씀입니다.
              19,1.23-27ㄴ
              1 욥이 말을 받았다.
              23 “아, 제발 누가 나의 이야기를 적어 두었으면!
              제발 누가 비석에다 기록해 주었으면!
              24 철필과 납으로 바위에다 영원히 새겨 주었으면!
              25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그분께서는 마침내 먼지 위에서 일어서시리라.
              26 내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뒤에라도 이 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27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는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5,5-11
              형제 여러분, 5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6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7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8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9 그러므로 이제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11 그뿐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자랑합니다.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12ㄴ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행복하여라.” 군중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은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분명 큰 힘과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그들이 받을 상을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주어지는 행복이 꼭 미래에 있지만은 않습니다. 지금의 현실에서 이미 그 행복을 맛보며 살아가는 것이 참된 행복의 의미일 것입니다. 행복 선언의 마지막은 하느님과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 때문에 박해받고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하늘에서 주어질 상과 함께 표현되는 것은 지금 여기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신앙에는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미래 지향적인 면입니다. 흔히 죽음을 넘어서는 희망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리고 오늘 우리가 죽은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신앙에는 현재 지향적인 면도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신앙생활을 통하여 참된 행복과 영원한 생명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이 그저 참고 견뎌야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현실의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분명 믿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선물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것을 미리 맛보며 살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Posted by 에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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