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외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하시자 아브라함은 이를 실행하려 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를 보시고 복을 내리시겠다고 맹세하신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냐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는데,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신다(복음). 

제1독서

<우리 성조 아브라함의 제사>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22,1-2.9ㄱ.10-13.15-18

그 무렵 1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시자,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

9 그들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곳에 다다르자,

아브라함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장작을 얹어 놓았다.

10 아브라함이 손을 뻗쳐 칼을 잡고 자기 아들을 죽이려 하였다.

11 그때,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그를 불렀다.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12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마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나를 위하여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있었다.

아브라함은 가서 그 숫양을 끌어와 아들 대신 번제물로 바쳤다.

15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두 번째로 아브라함을 불러 16 말하였다.

“나는 나 자신을 걸고 맹세한다. 주님의 말씀이다.

네가 이 일을 하였으니, 곧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17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너의 후손은 원수들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다.

18 네가 나에게 순종하였으니,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십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8,31ㄴ-34

형제 여러분,

31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2-10

그 무렵 2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3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4 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5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6 사실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제자들이 모두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7 그때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8 그 순간 그들이 둘러보자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만 그들 곁에 계셨다.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10 그들은 이 말씀을 지켰다.

그러나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저희끼리 서로 물어보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제1독서인 아브라함과 이사악의 이야기에서,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순종이 강조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나치지 말아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백 살에 아들 이사악을 낳았고, 창세기에서 이사악을 지칭할 때 사용된 “아이”(창세 22,5.12)는 아기가 아닌 10대의 소년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백 살이 넘는 노인이 힘으로 10대 청소년을 제압하여 제단에 묶어 놓을 수 있었을까요?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이사악의 순종도 함께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는 복음에서 다시 언급됩니다. 바로 하느님 아버지와 그분의 외아드님이신 예수님의 관계입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느님과 예수님의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로 명확하게 언급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자 아들을 봉헌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뜻과 의지로 당신의 외아들을 기꺼이 희생시키고자 하셨습니다.
그럼 이사악을 보겠습니다. 이사악은 기꺼이 아버지 아브라함의 뜻을 따랐지만, 죽음을 맞이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사악을 뛰어넘는 순종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에 대한 신뢰 속에서 수난의 길, 십자가의 희생 제물이 되는 길을 걸어가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길을 걸어가실 수 있으셨던 힘은 바로 당신을 사랑하시는 아버지를 사랑하시고, 당신을 신뢰하시는 아버지를 신뢰하시는 깊은 관계에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 변모의 모습을 보고 기뻐하면서도 두려움을 느꼈던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만 듣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온전히 순명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신뢰하시며 사랑받으시는 아드님으로 좁고 험한 길을 가셨던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예수님의 뜻을 따라, 아버지를 신뢰하면서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 결심의 시기가 바로 사순 시기입니다. 

(박형순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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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모세는 백성에게, 주 하느님의 규정과 법규들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실천하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하늘의 아버지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라.>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26,16-19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6 “오늘 주 너희 하느님께서 이 규정과 법규들을 실천하라고

너희에게 명령하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것들을 명심하여 실천해야 한다.

17 주님을 두고 오늘 너희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곧 주님께서 너희의 하느님이 되시고,

너희는 그분의 길을 따라 걸으며,

그분의 규정과 계명과 법규들을 지키고,

그분의 말씀을 듣겠다는 것이다.

18 그리고 주님께서는 오늘 너희를 두고 이렇게 선언하셨다.

곧 주님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분 소유의 백성이 되고 그분의 모든 계명을 지키며,

19 그분께서는 너희를 당신께서 만드신 모든 민족들 위에 높이 세우시어,

너희가 찬양과 명성과 영화를 받게 하시고,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분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하늘의 너희 아버지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43-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주님의 규정과 법규를 따르고 실천하면 하느님께 복을 받습니다. 이것은 신명기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상선벌악의 가르침은, 구약 시대에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유효한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막상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살겠노라고 결심하고 살아가려면 많은 희생이 요구되지요. 나만 바보가 되는 것 같은 모습에 억울하기도 합니다. 그뿐만이 아니지요. 주님의 계명에 충실하게 사는 사람보다, 악을 일삼는 사람들이 떵떵거리며 사는 모습에 화가 나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공정과 정의가 이 세상에서 드러나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를 알려 주십니다. 이 세상은 바로 하느님의 자비가 넘치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느님 나라가 자비가 넘치는 세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반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악인과 선인을 동등하게 대우해 주십니다. 악인과 선인에게 똑같이 당신의 햇빛을 비추어 주시고, 의로운 사람과 불의한 사람 모두에게 비를 내려 주십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하느님의 심판으로 가득하고 하느님의 자비가 없는 곳이라면, 하느님께서는 선인에게만 해를 비추어 주시고 비를 내려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공정과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는 모습에 우리는 속상한 마음을 품어 왔습니다. 그러나 공정과 정의는 우리가 훗날 맞이하게 될 하느님 나라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지금은 공정과 정의보다 하느님의 자비가 더 큰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자비가 가득한 세상에서 완전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공정과 정의의 심판 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 길은 지금 이곳에서 주님의 계명과 가르침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면서 시작됩니다. 그 길이 지금 우리의 눈에는 부당하고, 억울하게 보일지라도 말입니다. 

(박형순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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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에제키엘 예언자는, 주 하느님께서는 악인의 죽음을 원하시지 않고 자기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을 바라신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형제에게 화를 내는 사람은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악인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8,21-28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21 “악인도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를 버리고 돌아서서,

나의 모든 규정을 준수하고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22 그가 저지른 모든 죄악은 더 이상 기억되지 않고,

자기가 실천한 정의 때문에 살 것이다.

23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주 하느님의 말이다.

악인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

24 그러나 의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고,

악인이 저지르는 온갖 역겨운 짓을 따라 하면, 살 수 있겠느냐?

그가 실천한 모든 정의는 기억되지 않은 채,

자기가 저지른 배신과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죽을 것이다.

25 그런데 너희는, ‘주님의 길은 공평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집안아, 들어 보아라. 내 길이 공평하지 않다는 말이냐?

오히려 너희의 길이 공평하지 않은 것 아니냐?

26 의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면,

그것 때문에 죽을 것이다. 자기가 저지른 불의 때문에 죽는 것이다.

27 그러나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

28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생각하고 그 죄악에서 돌아서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0ㄴ-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세상에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눈에는 그러한 의로운 사람들보다 악인들이 잘 보이고, 또 악인들이 저지른 악행을 더 많이 접하게 됩니다. 그러는 가운데 ‘하느님께서는 어디에 계신가?’ ‘하느님께서는 왜 악인들의 악행을 가만히 두고 보시는가?’ ‘하느님께서 계시기는 한 것인가?’와 같은 많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이러한 의문과 질문에 대한 답을 오늘 독서 말씀인 에제키엘 예언서가 우리에게 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죽음이 아닌 구원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에 이르는 길은 바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회개’ 또는 ‘회심’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현재를, 오늘을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은 현실감 없는 이야기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사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지상 여정이 우리 삶의 전부가 아니라, 지상 여정을 마친 뒤에도 지속되는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믿고 고백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완성된 삶을 향하여 우리는 지금 걸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는 영원한 생명에 올바르게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회의 시간입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악인과 그들의 악행이 만연하는 세상 때문에 하느님을 불신할 수 있습니다. 의인보다 악인이 더 성공하는 모습에 우리는 하느님의 정의가 사라짐을 슬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의 시간은 바로 하느님께서 하느님을 벗어난 사람들에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회개의 기회를 주신 시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 삶의 방향이 악이 아닌 하느님을 향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노력을 특별히 기울이는 시간이 사순 시기입니다. 악이 아닌 하느님을 향하여 돌아가려는 우리의 움직임, 그것이 바로 우리를 은총으로, 구원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박형순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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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에스테르 왕비는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주님께 피신처를 구하는 기도를 바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 당신 말고는 도와줄 이가 없습니다.>

▥ 에스테르기의 말씀입니다.

4,17(12).17(14)-17(16).17(23)-17(25)

그 무렵 17(12) 에스테르 왕비는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주님께 피신처를 구하였다.

17(14) 그러고 나서 이스라엘의 주님께 이렇게 기도드렸다.

“저의 주님, 저희의 임금님, 당신은 유일한 분이십니다.

외로운 저를 도와주소서.

당신 말고는 도와줄 이가 없는데

17(15)이 몸은 위험에 닥쳐 있습니다.

17(16) 저는 날 때부터 저의 가문에서 들었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이스라엘을

모든 조상들 가운데에서 저희 선조들을 영원한 재산으로 받아들이시고

약속하신 바를 채워 주셨음을 들었습니다.

17(23) 기억하소서, 주님, 저희 고난의 때에 당신 자신을 알리소서.

저에게 용기를 주소서, 신들의 임금님, 모든 권세의 지배자시여!

17(24) 사자 앞에 나설 때 잘 조화된 말을 제 입에 담아 주시고

그의 마음을 저희에게 대적하는 자에 대한 미움으로 바꾸시어

그 적대자와 동조자들이 끝장나게 하소서.

17(25) 당신 손으로 저희를 구하시고,

주님, 당신밖에 없는 외로운 저를 도우소서.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을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7-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8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9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을 청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0 생선을 청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12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성경 말씀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청하는 것을 다 들어주십니다. 시편의 기도자는 “제가 부르짖던 날 제게 응답하시고, 저를 당당하게 만드시어 제 영혼에 힘이 솟았습니다.”(시편 138[137],3)라고 고백하고, 오늘 독서와 복음도 청원을 들어주시는 하느님을 이야기합니다. 청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말씀을 따라 우리는 하느님께 우리의 청원을 아룁니다. 그렇게 우리가 청원을 드리면 하느님께서 항상 들어주셨나요? 물론, 하느님께서 우리의 청원을 들어주십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나의 청원을 들어주신 기억보다, 들어주시지 않으셨던 기억이 더 많지 않은가요? 청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체험으로 우리의 청원을 하느님께서 들어주지 않으신다고 판단하게 되고, 결국에는 우리 신앙의 자존감을 우리 스스로 낮추게 됩니다. ‘내가 아직 부족한 신앙인이라서’ 또는 ‘하느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시지 않아.’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한번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또 내가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에게 돌을 달라고, 뱀을 달라고 청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돌과 뱀을 주겠습니까? 우리는 돌과 뱀이 아닌 빵과 생선을 주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도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좋은 것’,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돌을 달라고 청한다고 무조건 돌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돌을 달라고 청하여도 빵을 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이제 다시 묻게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무엇을 청하였던가요? 내가  바라는 것, 좋아하는 것이었습니까? 아니면 나에게 필요한 것이었습니까? 이 질문과 함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좋은 것도 함께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박형순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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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요나 예언자가 주님의 말씀을 전하자 니네베 사람들은 하느님을 믿고 악한 길에서 돌아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니네베 사람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섰다.>

▥ 요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10

주님의 말씀이 1 요나에게 내렸다.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3 요나는 주님의 말씀대로 일어나 니네베로 갔다.

니네베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성읍이었다.

4 요나는 그 성읍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하룻길을 걸은 다음 이렇게 외쳤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5 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 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었다.

6 이 소식이 니네베 임금에게 전해지자,

그도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자루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 위에 앉았다.

7 그리고 그는 니네베에 이렇게 선포하였다. “임금과 대신들의 칙령에 따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든 양이든 아무것도 맛보지 마라.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라.

8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자루옷을 걸치고 하느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

9 하느님께서 다시 마음을 돌리시고 그 타오르는 진노를 거두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10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9-32

그때에 29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30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32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구약 성경에는 많은 예언자들이 등장합니다. 그 가운데 자신의 이름으로 예언서를 가지고 있는 예언자는 모두 열다섯 명입니다(히브리어 성경 기준으로, 우리 성경의 애가, 바룩서, 다니엘서는 제외됩니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단 한 명의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오늘 독서에 등장하는 요나 예언자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이방 민족인 니네베 사람들을 향하여 하느님 심판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요나가 큰 도시 니네베에서 하느님의 심판을 선포하자 니네베 사람들은 임금부터 모든 백성이,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자루옷을 걸치고 회개의 길을 걷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고 예고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의 회개가 하느님의 마음을 돌리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요나보다 더 큰 이”라고 소개하십니다. 그런데도 군중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럼 이제 주님의 자기소개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물어봅시다. 예수님을 요나보다 더 크신 분으로 생각하나요? “예!”라는 대답은 쉽게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럼 질문을 바꾸어 봅니다. 성체를 모시면서 예수님을, 요나보다 솔로몬보다 위대하신 분을 만나고 있나요? 이 질문에 우리가 “예!”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미사는 은총이 가득한 시간 그 자체가 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 어떤 성인보다, 성경의 인물보다 위대하시고 거룩하신 분이시며 그분께서 바로 미사 안에서, 그리고 일상 안에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박형순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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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의 입에서 나가는 말은 반드시 주님께서 뜻하시는 바를 이루고 만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할 때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라고 하시며,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신다(복음).

제1독서

<나의 말은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5,10-1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0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11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주일 미사에 참례하면, 미사가 참으로 재미없고, 지루하고 따분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유일하게 기쁘던 시간이 있었는데, 바로 주님의 기도를 봉헌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유일하게 아는 기도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호경도 제대로 긋지 못하고, 다른 기도문은 물론이고 신자들이 응답하는 부분의 기도는 제대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어떤 연유인지 주님의 기도만은 누구보다 큰 소리로 외워서 바칠 수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계시던 부모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봉헌할 때가 되면 늘 제게 주님의 기도를 외우는 시간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위풍당당하게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 부모님께서는 매우 기쁘게 웃으시며 그 모습을 바라보셨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는 빈말의 되풀이가 아니며, 말을 많이 해야 하느님께서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빈말의 되풀이가 아니요 기도의 핵심이 담긴 기도,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에 담긴 신학적 의미를 하나하나 되새기면서 기도할 수 있다면 참 좋은 일일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고,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고 …….” 그런데 막상 주님의 기도를 봉헌하다 보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고 시작한 기도는 어느새 “악에서 구하소서.” 하고 끝이 나고 말지요. 주님께서 직접 제자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 주신 기도가 형식적인 기도가 되는 듯한 기분이 드는 순간입니다. 그래도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바친 어린이의 기도를 웃으면서 기쁘게 쳐다보던 부모의 마음을 생각한다면, 하느님 앞에 어린이요 자녀인 우리가 기도를 바치면, 부모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웃으시면서 우리를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아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의탁하는 마음으로 “아빠, 아버지”께 우리의 기도로 웃음을 드려 보면 어떨까요? (박형순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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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베드로 사도는 원로들에게, 그들 가운데에 있는 하느님의 양 떼를 잘 치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시몬 베드로라는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시며,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시겠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난의 증인인 원로>

▥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

5,1-4

사랑하는 여러분,

1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는 원로들에게 같은 원로로서,

또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난의 증인이며

앞으로 나타날 영광에 동참할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2 여러분 가운데에 있는 하느님의 양 떼를 잘 치십시오.

그들을 돌보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진해서 하십시오.

부정한 이익을 탐내서 하지 말고 열성으로 하십시오.

3 여러분에게 맡겨진 이들을 위에서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4 그러면 으뜸 목자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은 시들지 않는 영광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3-19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먹고사는 문제로 고민하며 살아가는 우리와 오늘 기념하는 성 베드로 사도좌와는 제법 큰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우리 삶의 자리와 베드로 사도좌와의 거리는 물리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앙과도 그렇게 가깝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인 교황님이나,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주교님들과 성직자들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지 몰라도, 스스로 주일만 간신히 지킨다고 생각하는 신자들에게는 이 축일이 큰 의미로 와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심은 교황님과 주교님들을 비롯한 성직자, 수도자들의 신앙심에 한참 못 미치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과 예수님께 온전히 삶을 투신하면서 살기에는 생각할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우리의 일상다반사가 예수님보다 더 크고 중요하게 다가올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부족한 신앙인이라고 자책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로 그런 신앙인이기에, 부족해 보이는 신앙인이기에 오늘의 축일이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 사도는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자신을 단 한 번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표현한 적 없으셨던 예수님 앞에서,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을 반석 삼아 예수님께서는 그 위에 교회를 세우십니다. 
그럼 베드로 사도는 위대한 인물이었을까요? 우리는 그가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어부였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지닌 예수님을 향한 믿음은 한결같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물 위를 걷다가도 풍랑을 바라보고 두려워서 물에 빠지고, 두려움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그가 위대해서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인공이십니다. 우리의 신앙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체험한 예수님의 첫 제자가 베드로이기에, 오늘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은 우리와 깊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임을 기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박형순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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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하느님께서는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다시는 땅을 파멸시키지 않겠다 하시며,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 이것이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제1독서). 베드로 사도는 소아시아에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세례가 그들을 구원한다고 가르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시고 나서,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신다(복음).

제1독서

<홍수에서 구원된 노아와 맺은 하느님의 계약>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9,8-15

8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말씀하셨다.

9 “이제 내가 너희와 너희 뒤에 오는 자손들과 내 계약을 세운다.

10 그리고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곧 방주에서 나와,

너희와 함께 있는 새와 집짐승과 땅의 모든 들짐승과 내 계약을 세운다.

11 내가 너희와 내 계약을 세우니,

다시는 홍수로 모든 살덩어리들이 멸망하지 않고,

다시는 땅을 파멸시키는 홍수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12 하느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미래의 모든 세대를 위하여, 나와 너희,

그리고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은 이것이다.

13 내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

14 내가 땅 위로 구름을 모아들일 때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나타나면,

15 나는 나와 너희 사이에,

그리고 온갖 몸을 지닌 모든 생물 사이에 세워진 내 계약을 기억하고,

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어 모든 살덩어리들을 파멸시키지 못하게 하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이제는 세례가 여러분을 구원합니다.>

▥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

3,18-22

사랑하는 여러분,

18 그리스도께서는 죄 때문에 단 한 번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여러분을 하느님께 이끌어 주시려고,

의로우신 분께서 불의한 자들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육으로는 살해되셨지만 영으로는 다시 생명을 받으셨습니다.

19 그리하여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시어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20 옛날에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하느님께서는 참고 기다리셨지만

그들은 끝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몇몇 사람 곧 여덟 명만 방주에 들어가 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21 이제는 그것이 가리키는 본형인 세례가 여러분을 구원합니다.

세례는 몸의 때를 씻어 내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힘입어 하느님께 바른 양심을 청하는 일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오르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계시는데,

그분께 천사들과 권력들과 권능들이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15

그때에 12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13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또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 말씀의 무대는 광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을 머무십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광야를 향하여 나아가신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광야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집트를 탈출하고 약속의 땅을 향한 여정 속에서 광야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들은 사십 년간의 유랑을 마치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광야 여정은 어떠하였습니까? 배고프고 목마르다고 투정을 부렸으며, 하느님을 시험하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믿다가도 하느님께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그들은 이집트를 탈출하였던 ‘노예 집단’에서 ‘하느님의 백성’으로 성장해 갑니다. 그들은 광야라는 그 척박한 공간에서 조금씩 성숙합니다.
광야는 그런 의미에서 성장과 성숙의 장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비록 노예 신분이었어도 모든 것이 보장되고 안정적인 이집트에서는 하느님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고기는 아니어도 빵이라도 편하게 먹을 수 있었던 익숙하고 안정된 이집트에서 벗어났을 때, 하느님을 체험하고 하느님 백성의 여정을 걸어갑니다. 
광야는 편안함보다 불편함을, 생명보다 죽음을, 희망보다 절망을 먼저 생각하게 하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불편함 때문에, 죽음의 공포 때문에, 절망 가득한 신음 때문에 하느님을 체험하게 되고, 그 체험은 신앙의 성숙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광야에서의 시간이 피곤하고 피하고 싶은 시간이 아닌, 머물러야 하는 은총의 시간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박형순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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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8,9ㄷ-14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9 “네가 네 가운데에서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린다면

10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

11 주님께서 늘 너를 이끌어 주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네 넋을 흡족하게 하시며

네 뼈마디를 튼튼하게 하시리라.

그러면 너는 물이 풍부한 정원처럼,

물이 끊이지 않는 샘터처럼 되리라.

12 너는 오래된 폐허를 재건하고 대대로 버려졌던 기초를 세워 일으키리라.

너는 갈라진 성벽을 고쳐 쌓는 이,

사람이 살도록 거리를 복구하는 이라 일컬어지리라.

13 ‘네가 삼가 안식일을 짓밟지 않고

나의 거룩한 날에 네 일을 벌이지 않는다면

네가 안식일을 ′기쁨′이라 부르고

주님의 거룩한 날을 ′존귀한 날′이라 부른다면

네가 길을 떠나는 것과 네 일만 찾는 것을 삼가며

말하는 것을 삼가고 안식일을 존중한다면

14 너는 주님 안에서 기쁨을 얻고

나는 네가 세상 높은 곳 위를 달리게 하며

네 조상 야곱의 상속 재산으로 먹게 해 주리라.’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7ㄴ-32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27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28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29 레위가 자기 집에서 예수님께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세리들과 다른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함께 식탁에 앉았다.

30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투덜거렸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32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는 예수님의 모습에 불편한 감정을 드러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투덜거리며 의문을 제기합니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이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죄인의 회개가 바로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의인이고 누가 죄인일까요?
에제키엘 예언서를 참고하면 구약에서 ‘의로운 인물’로 언급되는 이는 노아와 다니엘과 욥 세 명뿐이었습니다(에제 14,14.20 참조). 구약 성경 전체에서 의인으로 칭송받은 인물이 이 세 명뿐이라면, 예수님 시대에도 의인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에서 죄인으로 주로 언급되는 세리와 창녀와 병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의인이 아닌 죄인의 범주에 들어감을 알 수 있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을 세리, 죄인들과 철저하게 구별합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의인이며, 세리 같은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강한 자의식과 확신은 그들을 오만함으로 이끌어 예수님의 구원 행위에 대한 불평과 불만을 일으키고, 결국에는 예수님을 죽음에 이르게 만듭니다. 그들이 오히려 죄인이 됩니다. 
내가 누구보다 낫다는 교만한 판단으로 타인과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타인과 비교해서 좀 더 의로워 보이면 기분이야 좋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구원을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구원의 보장은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느님께 몸과 마음을 돌리는 회개에서 시작됩니다. 

(박형순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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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단식이 무엇인지를 알려 준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선생님의 제자들은 왜 단식하지 않느냐는 요한의 제자들의 물음에,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오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8,1-9ㄴ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목청껏 소리쳐라, 망설이지 마라. 나팔처럼 네 목소리를 높여라.

내 백성에게 그들의 악행을, 야곱 집안에 그들의 죄악을 알려라.

2 그들은 마치 정의를 실천하고

자기 하느님의 공정을 저버리지 않는 민족인 양

날마다 나를 찾으며 나의 길 알기를 갈망한다.

그들은 나에게 의로운 법규들을 물으며 하느님께 가까이 있기를 갈망한다.

3 ‘저희가 단식하는데 왜 보아 주지 않으십니까?

저희가 고행하는데 왜 알아주지 않으십니까?’

보라, 너희는 너희 단식일에 제 일만 찾고 너희 일꾼들을 다그친다.

4 보라, 너희는 단식한다면서 다투고 싸우며 못된 주먹질이나 하고 있다.

저 높은 곳에 너희 목소리를 들리게 하려거든

지금처럼 단식하여서는 안 된다.

5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단식이냐? 사람이 고행한다는 날이 이러하냐?

제 머리를 골풀처럼 숙이고 자루옷과 먼지를 깔고 눕는 것이냐?

너는 이것을 단식이라고, 주님이 반기는 날이라고 말하느냐?

6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7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

9 그때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

네가 부르짖으면 ‘나 여기 있다.’ 하고 말씀해 주시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신랑을 빼앗길 때에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4-15

14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윗 임금은 가장 모범적인 임금이요 훌륭한 성군이었습니다. 그런 그도 인간적인 약점을 지녔습니다. 사무엘기 하권 7장에서 그는 나탄 예언자에게서 자신의 왕권이 영원할 것이라는 하느님의 말씀과 약속을 듣게 됩니다. 그 약속을 들은 다윗은 어떠하였을까요?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그러나 사무엘기 하권 11장에서는 자기 부하의 아내를 탐하고, 그것을 감추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가 실패하여 결국에는 부하를 죽이고 맙니다. 
오늘 우리가 화답송으로 만나는 시편은 이 이야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래서 시편 51편의 머리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지휘자에게. 시편. 다윗. 그가 밧 세바와 정을 통한 뒤 예언자 나탄이 그에게 왔을 때”(시편 51[50],1-2). 이 시편에서 다윗 임금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죄를 뉘우치며 하느님께 용서와 자비를 구합니다. 하느님 자비에 호소합니다. 호소하는 가운데 그는 하느님을 향한 신뢰를 잃지 않습니다. “부서진 영. 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을” 하느님께서 업신여기지 않으신다는 그 강한 믿음이 그를 다시 일으켜 줍니다. 
다윗 임금이 위대한 이유는 그가 백성을 잘 통치하였거나 하느님께 한결같은 모습으로 충실하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이스라엘 백성의 위대한 임금이자 성군으로 기억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자신의 잘못을 빠르게 인정하여 그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참으로 많은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잘하는 것보다 부족함이 많아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와 부족함이 우리가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을 막아설 수는 없습니다. 다윗의 모습을 기억합시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번제가 아니라, 우리의 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박형순 바오로 신부)

Posted by 에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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