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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2.15 연중 제6주간 월요일 2/15

말씀의 초대

카인은 죄악을 다스리지 못하고 아우 아벨에게 덤벼들어 그를 죽인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는 이들을 보고 깊이 탄식하시며, 그들은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카인이 자기 아우 아벨에게 덤벼들어 그를 죽였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4,1-15.25

1 사람이 자기 아내 하와와 잠자리를 같이하니,

그 여자가 임신하여 카인을 낳고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주님의 도우심으로 남자아이를 얻었다.”

2 그 여자는 다시 카인의 동생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치기가 되고 카인은 땅을 부치는 농부가 되었다.

3 세월이 흐른 뒤에 카인은 땅의 소출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4 아벨은 양 떼 가운데 맏배들과 그 굳기름을 바쳤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꺼이 굽어보셨으나,

5 카인과 그의 제물은 굽어보지 않으셨다.

그래서 카인은 몹시 화를 내며 얼굴을 떨어뜨렸다.

6 주님께서 카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하여 화를 내고, 어찌하여 얼굴을 떨어뜨리느냐?

7 네가 옳게 행동하면 얼굴을 들 수 있지 않느냐?

그러나 네가 옳게 행동하지 않으면,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게 될 터인데,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

8 카인이 아우 아벨에게 “들에 나가자.”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들에 있을 때, 카인이 자기 아우 아벨에게 덤벼들어 그를 죽였다.

9 주님께서 카인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10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들어 보아라.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11 이제 너는 저주를 받아,

입을 벌려 네 손에서 네 아우의 피를 받아 낸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이다.

12 네가 땅을 부쳐도, 그것이 너에게 더 이상 수확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너는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될 것이다.”

13 카인이 주님께 아뢰었다.

“그 형벌은 제가 짊어지기에 너무나 큽니다.

14 당신께서 오늘 저를 이 땅에서 쫓아내시니, 저는 당신 앞에서 몸을 숨겨야 하고,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되어, 만나는 자마다 저를 죽이려 할 것입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아니다. 카인을 죽이는 자는 누구나 일곱 곱절로 앙갚음을 받을 것이다.”

그런 다음 주님께서는 카인에게 표를 찍어 주셔서,

어느 누가 그를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다.

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하니,

그 여자가 아들을 낳고는, “카인이 아벨을 죽여 버려,

하느님께서 그 대신 다른 자식 하나를 나에게 세워 주셨구나.” 하면서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1-13

그때에 11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과 논쟁하기 시작하였다.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13 그러고 나서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성경은 인류 첫 번째 형제인 카인과 아벨의 깊은 우애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질투와 시기로 시작된 감정이 살인으로 이어지는 끔찍한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형제 간의 갈등 원인은 하느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꺼이 굽어보시고, 반대로 카인과 그의 제물은 굽어보지 않으셨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원인이십니다. 카인의 제물이 아벨의 제물보다 정성이 없었습니까? 성경 본문 어디에서도 그런 내용은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냥 그것은 하느님 마음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번만큼은 하느님께서 잘못하셨고, 원인을 제공하신 것이라고. 
그런데 창세기 저자에게는 하느님께서 왜 카인과 그의 제물을 굽어보지 않으셨는지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저자의 눈은, 화를 내고 얼굴을 떨어뜨리면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카인에게 관심을 표현하시는 하느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벨보다 카인을 더 돌보아 주시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카인은 하느님의 말씀과 설득에도 한마디 대꾸도 없이, 들로 나가 동생 아벨을 죽입니다. 
하느님의 행동과 판단과 계획이 우리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고, 더 나아가 우리를 분노하게 만들 때도 있습니다. 카인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카인을 걱정하며 설득하십니다.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게 될 터인데,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 하느님께서는 분노와 미움의 감정으로 가득한 우리를 오늘도 계속하여 설득하고 계십니다. 죄악을 다스릴지 아니면 죄악에 맡길지, 그 선택은 하느님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박형순 바오로 신부)

Posted by 에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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