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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4.10 [백] 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 (4/10)

말씀의 초대

베드로와 요한 사도는 최고 의회에서 담대하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한다(제1독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신다(복음).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그 무렵 유다 지도자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은

13 베드로와 요한의 담대함을 보고

또 이들이 무식하고 평범한 사람임을 알아차리고 놀라워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다니던 사람들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14 그러나 병이 나은 사람이 사도들 곁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하였다.

15 그래서 그들은 사도들에게 최고 의회에서 나가라고 명령한 다음,

저희끼리 의논하며 16 말하였다. “저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저들을 통하여 명백한 표징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에게 알려진 터이고,

우리도 그것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17 그러니 이 일이 더 이상 백성 가운데로 퍼져 나가지 않도록,

다시는 아무에게도 그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만 합시다.”

18 그리하여 그들은 사도들을 불러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절대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지시하였다.

19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20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1 그들은 백성 때문에 그들을 처벌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거듭 위협만 하고 풀어 주었다.

그 일로 백성이 모두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 예수님께서는 주간 첫날 새벽에 부활하신 뒤,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다.

그는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 주신 여자였다.

10 그 여자는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이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다.

11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며

그 여자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12 그 뒤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돌아가 다른 제자들에게 알렸지만

제자들은 그들의 말도 믿지 않았다.

14 마침내,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5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부활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셨기에, 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들의 증언을 받아들이고,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받아들이며, 예수님의 전 생애를 받아들이고, 그분 삶의 모습대로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히신 지 사흘 만에 살아나셔서 사람들을 만나십니다.
주간 첫날 새벽에 예수님께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달려가 자신이 본 것을 말하지만 그들은 믿지 않습니다. 그날 오후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들도 다른 제자들에게 와서 알리지만 그들의 말도 믿지 않습니다. 마침내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십니다.
불신과 믿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믿음은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도 그 사랑을 따라 살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과 사랑이 마침내 승리한다는 것은 받아들일 만하고 누리고 싶으나, 삶에 그 고난을 받아들이기에는 우리가 아직 완고한 것은 아닐까요?
어느 신부님이 마르코 복음서에 관한 글에서 예수님의 사랑은 ‘길’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 길은 정해 놓고 몇 년만 고생하면 끝나는 것이 아닌 힘든 길이라고 말입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Posted by 에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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