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아브라함은 사라의 청으로 여종인 하가르와 그가 낳아 준 아들을 내보내는데, 하느님께서는 광야에서 울부짖는 하가르에게 아들을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가다라인들의 지방에서 마귀 들린 두 사람에게서 마귀를 몰아내 돼지 떼 속에 들어가게 하시어 그들을 고쳐 주신다(복음).

 

제1독서

<저 여종의 아들이 내 아들 이사악과 함께 상속을 받을 수는 없어요.>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21,5.8-20
5 아브라함에게서 아들 이사악이 태어났을 때, 그의 나이는 백 살이었다.
8 아기가 자라서 젖을 떼게 되었다.
이사악이 젖을 떼던 날 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베풀었다.
9 그런데 사라는 이집트 여자 하가르가 아브라함에게 낳아 준 아들이
자기 아들 이사악과 함께 노는 것을 보고, 10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저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세요.
저 여종의 아들이 내 아들 이사악과 함께 상속을 받을 수는 없어요.”
11 그 아들도 자기 아들이므로 아브라함에게는 이 일이 무척이나 언짢았다.
12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그 아이와 네 여종 때문에 언짢아하지 마라.
사라가 너에게 말하는 대로 다 들어주어라.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13 그러나 그 여종의 아들도 네 자식이니, 내가 그도 한 민족이 되게 하겠다.”
14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빵과 물 한 가죽 부대를 가져다
하가르에게 주어 어깨에 메게 하고는, 그를 아기와 함께 내보냈다.
길을 나선 하가르는 브에르 세바 광야에서 헤매게 되었다.
15 가죽 부대의 물이 떨어지자 그 여자는 아기를 덤불 밑으로 내던져 버리고는,
16 활 한 바탕 거리만큼 걸어가서 아기를 마주하고 주저앉았다.
‘아기가 죽어 가는 꼴을 어찌 보랴 !’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그는 아기를 마주하고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
17 하느님께서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그래서 하느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하가르를 부르며 말하였다.
“하가르야, 어찌 된 일이냐? 두려워하지 마라.
하느님께서 저기에 있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18 일어나 가서 아이를 들어 올려 네 손으로 꼭 붙들어라.
내가 그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19 그런 다음 하느님께서 하가르의 눈을 열어 주시니,
그가 우물을 보게 되었다.
그는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우고 아이에게 물을 먹였다.
20 하느님께서는 그 아이와 함께 계셨다.
그는 자라서 광야에 살며 활잡이가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때가 되기도 전에 마귀들을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8-34
예수님께서 호수 28 건너편 가다라인들의 지방에 이르셨을 때,
마귀 들린 사람 둘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너무나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다닐 수가 없었다.
29 그런데 그들이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하고 외쳤다.
30 마침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놓아 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31 마귀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쫓아내시려거든
저 돼지 떼 속으로나 들여보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2 예수님께서 “가라.” 하고 말씀하시자, 마귀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가 모두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물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
33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로 가서는,
이 모든 일과 마귀 들렸던 이들의 일을 알렸다.
34 그러자 온 고을 주민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나왔다.
그들은 그분을 보고 저희 고장에서 떠나가 주십사고 청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하가르와 그 아들 이스마엘을 쫓아내라고 졸라 대자 하느님께서는 사라의 부탁을 들어주라 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느님 말씀대로 행동합니다. 그 결과 하가르와 이스마엘은 집에서 쫓겨납니다. 그들을 생각하면 하느님과 사라가 너무 냉정해 보입니다. 그 냉정함은 호칭에서 드러납니다. 사라는 “저 여종과 그 아들”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녀에게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아들도 아니고 그저 여종의 아들일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이스마엘을 ‘네(아브라함) 아들’이 아니라 “그 아이”라고 부르십니다. 이에 이런 질문을 던져 봅니다. 하느님과 사라에게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아들이기는 한 것일까요?
창세기의 저자는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이름이 바뀌기 전에 태어났음에 주목합니다. 하느님과 계약을 맺기 이전, 아브라함의 이름은 ‘아브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마엘은 ‘아브람’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이사악은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그가 새로운 이름을 얻은 뒤에 얻게 된 아들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께 상속을 약속받은 인물은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사악입니다(창세 17,19 참조). 오늘 독서는 가족 간의 갈등을 전해 주는 냉정한 가족사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하느님 약속이 바탕이 된 상속에 위협이 되는 상황을 하느님께서 해결하시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바로 구원의 역사입니다.
우리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하느님께 항변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시냐고, 계시기는 한 것이냐며,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의 처지이고 우리의 생각일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계획은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외아드님의 죽음으로 완성됩니다. 지금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는 그분의 계획이 잘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감추어진 하느님의 의도가 있음을 믿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박형순 바오로 신부)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말씀의 초대

헤로데 임금은 베드로를 감옥에 가두지만, 천사가 나타나 그를 빼내 준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다고 티모테오에게 고백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 당신을 누구라고 하느냐고 제자들에게 물으시자, 베드로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시라고 고백한다(복음).

제1독서

<이제야 참으로 알았다. 주님께서 헤로데의 손에서 나를 빼내어 주셨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2,1-11
그 무렵 1 헤로데 임금이 교회에 속한 몇몇 사람을 해치려고 손을 뻗쳤다.
2 그는 먼저 요한의 형 야고보를 칼로 쳐 죽이게 하고서,
3 유다인들이 그 일로 좋아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아들이게 하였다.
때는 무교절 기간이었다.
4 그는 베드로를 붙잡아 감옥에 가두고
네 명씩 짠 네 개의 경비조에 맡겨 지키게 하였다.
파스카 축제가 끝나면 그를 백성 앞으로 끌어낼 작정이었던 것이다.
5 그리하여 베드로는 감옥에 갇히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6 헤로데가 베드로를 끌어내려고 하던 그 전날 밤,
베드로는 두 개의 쇠사슬에 묶인 채 두 군사 사이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문 앞에서는 파수병들이 감옥을 지키고 있었다.
7 그런데 갑자기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더니 감방에 빛이 비치는 것이었다.
천사는 베드로의 옆구리를 두드려 깨우면서,
“빨리 일어나라.”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쇠사슬이 떨어져 나갔다.
8 천사가 베드로에게 “허리띠를 매고 신을 신어라.” 하고 이르니
베드로가 그렇게 하였다.
천사가 또 베드로에게 “겉옷을 입고 나를 따라라.” 하고 말하였다.
9 베드로는 따라 나가면서도,
천사가 일으키는 그 일이 실제인 줄 모르고 환시를 보는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10 그들이 첫째 초소와 둘째 초소를 지나 성안으로 통하는 쇠문 앞에 다다르자,
문이 앞에서 저절로 열렸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어떤 거리를 따라 내려갔는데,
천사가 갑자기 그에게서 사라져 버렸다.
11 그제야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야 참으로 알았다.
주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헤로데의 손에서,
유다 백성이 바라던 그 모든 것에서 나를 빼내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
4,6-8.17-18
사랑하는 그대여,
6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7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8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17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
18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3-19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오늘의 묵상

교회 공동체는 완전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닌, 완전한 사람들의 공동체를 향하여 나아가는 지상 여정의 순례자들의 모임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오늘 축일의 주인공인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의 모습에서 잘 드러납니다.
베드로 사도는 명문가의 자제도 이른바 잘나가는 사람도 아닌 그저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였습니다. 그런 그가 하느님의 이끄심으로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는 예수님의 신원을 정확하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는 결정적 순간에 예수님을 모른다며 두려움 속에서 주님께서 가신 십자가 길을 멀리서 바라보았고, 주님께서 돌아가신 뒤에도 숨어서 지냈습니다. 그런 그가 교회의 반석이 되어 하늘 나라의 열쇠를 관리합니다.
그럼 바오로 사도는 어떠하였나요? 그는 베드로 사도와는 달리 명문가 출신으로 율법의 가르침에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정면으로 반대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에게 예수님은 선동가며 하느님에 관한 가르침을 어지럽히는 불순분자였을 뿐입니다. 그런 그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주님을 박해하는 사람에서 주님을 선포하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렇게 베드로와 바오로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 속에서 교회는 시작됩니다. 하느님께서 두 사도를 이끌어 주지 않으셨다면, 그 둘은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갔을 것이고 우리는 누구도 그들을 기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완전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닙니다. 완성된 공동체가 아닙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가 변화되었듯이, 우리 자신도 우리가 만나는 공동체의 구성원도 하느님의 이끄심 안에서 변화될 것입니다. 교회는 우리들의 뜻과 계획이 아닌 주님의 뜻에 따라 완전하고 완성된 공동체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형순 바오로 신부)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말씀의 초대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간청하자, 소돔과 고모라에서 의인을 열 명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그곳을 파멸시키지 않겠다고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진정 의인을 죄인과 함께 쓸어버리시렵니까?>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18,16-33
사람들은 마므레의 참나무들 곁을 16 떠나 소돔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배웅하려고 함께 걸어갔다. 17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앞으로 하려는 일을 어찌 아브라함에게 숨기랴?
18 아브라함은 반드시 크고 강한 민족이 되고,
세상 모든 민족들이 그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19 내가 그를 선택한 것은, 그가 자기 자식들과 뒤에 올 자기 집안에 명령을 내려
그들이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여 주님의 길을 지키게 하고,
그렇게 하여 이 주님이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을 그대로 이루려고 한 것이다.”
20 이어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원성이 너무나 크고, 그들의 죄악이 너무나 무겁구나.
21 이제 내가 내려가서, 저들 모두가 저지른 짓이 나에게 들려온
그 원성과 같은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보아야겠다.”
22 그 사람들은 거기에서 몸을 돌려 소돔으로 갔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주님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23 아브라함이 다가서서 말씀드렸다. “진정 의인을 죄인과 함께 쓸어버리시렵니까?
24 혹시 그 성읍 안에 의인이 쉰 명 있다면, 그래도 쓸어버리시렵니까?
그 안에 있는 의인 쉰 명 때문에라도 그곳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
25 의인을 죄인과 함께 죽이시어 의인이나 죄인이나 똑같이 되게 하시는 것,
그런 일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온 세상의 심판자께서는 공정을 실천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26 그러자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소돔 성읍 안에서 내가 의인 쉰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들을 보아서 그곳 전체를 용서해 주겠다.”
27 아브라함이 다시 말씀드렸다.
“저는 비록 먼지와 재에 지나지 않는 몸이지만,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
28 혹시 의인 쉰 명에서 다섯이 모자란다면,
그 다섯 명 때문에 온 성읍을 파멸시키시렵니까?”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그곳에서 마흔다섯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파멸시키지 않겠다.”
29 아브라함이 또다시 그분께 아뢰었다.
“혹시 그곳에서 마흔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그 마흔 명을 보아서 내가 그 일을 실행하지 않겠다.”
30 그가 말씀드렸다. “제가 아뢴다고 주님께서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혹시 그곳에서 서른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그곳에서 서른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 일을 실행하지 않겠다.”
31 그가 말씀드렸다. “제가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
혹시 그곳에서 스무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그 스무 명을 보아서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
32 그가 말씀드렸다. “제가 다시 한 번 아뢴다고 주님께서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혹시 그곳에서 열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그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
33 주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자리를 뜨셨다.
아브라함도 자기가 사는 곳으로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를 따라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8-22
그때에 18 예수님께서는 둘러선 군중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호수 건너편으로 가라고 명령하셨다.
19 그때에 한 율법 학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스승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21 그분의 제자들 가운데 어떤 이가,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2티모 2,22ㄴ-26)와 복음(요한 17,20-26)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이 열 명도 없었습니다. 의로운 사람 열 명만 있었다면 그곳은 비록 죄악이 가득했지만 구원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열 명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의 구원을 위해서 노력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을 상대로 흥정합니다. 의인 쉰 명에서 시작해서 깎고 깎은 끝에 의인 열 명으로 하느님과 합의를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결과를 잘 알고 있습니다. 소돔은 말 그대로 파멸됩니다. 의인 단 열 명이 소돔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약 성경 전체에서 의인으로 지칭된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그 수가 제법 적지 않으리라 생각되겠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구약 성경에서 의인으로 지칭된 사람은 노아, 다니엘, 그리고 욥, 단 세 사람뿐입니다. 놀랍지 않은가요? 구약의 수천 년 역사 가운데 단 세 명만이 그 이름이 언급되면서 ‘의인’이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이제 다시 질문을 던져 봅니다. 죄악이 가득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열 명은 적은 수였을까요? 아니면 많은 수였을까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드라마인 구약 성경 전체에서 단 세 명만이 의인이라고 불렸던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죄악이 가득한 도성 소돔과 고모라에서 의인 열 명은 매우 많은 수였습니다. 어쩌면 그곳에는 의인이 한 명도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우리가 지나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느님께서는 그토록 죄로 가득한 도성에도 기회를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분께서는 의인을 외면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세상에 의인은 얼마나 될까요? 열 명의 수가 많게 느껴집니다. 오늘도 기회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나부터 의로움으로 나아가는 걸음을 내딛어 보면 어떨까요? 그 발걸음은 나와 우리 공동체를 구원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박형순 바오로 신부)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말씀의 초대

지혜서의 저자는,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으나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다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그들이 누리는 풍요로 가난한 이들의 궁핍을 채워 주라고 권고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옷에 손을 댄 하혈하는 여자의 병을 고쳐 주시고, 회당장 야이로가 간곡히 청하자 그의 죽은 딸을 살려 내신다(복음).

 

제1독서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다.>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1,13-15; 2,23-24
13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이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14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존재하라고 창조하셨으니
세상의 피조물이 다 이롭고 그 안에 파멸의 독이 없으며
저승의 지배가 지상에는 미치지 못한다.
15 정의는 죽지 않는다.
2,23 정녕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
24 그러나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와
죽음에 속한 자들은 그것을 맛보게 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여러분이 누리는 풍요가 가난한 형제들의 궁핍을 채워 줄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8,7.9.13-15
형제 여러분, 7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곧 믿음과 말과 지식과 온갖 열성에서,
또 우리의 사랑을 받는 일에서도 뛰어나므로,
이 은혜로운 일에서도 뛰어나기를 바랍니다.
9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
13 그렇다고 다른 이들은 편안하게 하면서 여러분은 괴롭히자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이루게 하자는 것입니다.
14 지금 이 시간에 여러분이 누리는 풍요가 그들의 궁핍을 채워 주어
나중에는 그들의 풍요가 여러분의 궁핍을 채워 준다면,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15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많이 거둔 이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이도 모자라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1-43
그때에 21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건너편으로 가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데,
22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을 뵙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려,
23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청하였다.
24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
25 그 가운데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
26 그 여자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
27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28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9 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30 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31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반문하였다.
“보시다시피 군중이 스승님을 밀쳐 대는데,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십니까?”
3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 보시려고 사방을 살피셨다.
33 그 부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다 아뢰었다.
3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35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37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다.
38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소란한 광경과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을 보시고,
39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40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41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42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43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거듭 분부하시고 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또는>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1-24.35ㄴ-43
그때에 21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건너편으로 가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데,
22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을 뵙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려,
23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청하였다.
24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그때에 35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37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다.
38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소란한 광경과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을 보시고,
39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40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41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42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43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거듭 분부하시고 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오늘의 묵상

열두 해 동안 하혈하는 여자, 열두 살 어린 소녀. 열둘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두 사람입니다. 한 명은 난치병을 앓았고 다른 한 명은 죽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인간의 힘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를 마주하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둘에게는 예수님을 만나서 구원을 체험하였다는 교집합이 생깁니다. 물론 한 명은 예수님을 능동적으로 찾아가서 예수님께 손을 댔고, 다른 한 명은 수동적으로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께 손이 잡혔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닮은 듯하면서도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방법이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우리 스스로 예수님께 다가갈 수도 있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손이 예수님의 옷을 만지기도 하고 예수님께 붙잡히기도 합니다. 숱한 고생을 하고 많은 의사에게 가진 것을 다 쏟아부으며 열두 해를 보낸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예수님에 대한 소문만 듣고 그분을 믿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아픈 딸을 고쳐 주실 거라는 믿음으로 그분을 집으로 모시고자 하였지만, 집으로 가는 동안에 딸이 죽었다는 비보를 듣고 예수님을 더 수고스럽게 할 필요가 없다던 회당장은 어떻게 예수님을 쉽게 믿을 수 있었을까요? 그들이 마주한 상황은 비록 다른 모습이었지만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처지라는 같은 상황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만났습니다.
그러한 이들과 예수님의 만남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전해 줍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그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구원으로 이어집니다. 믿음은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가 아닙니다. 적당한 인간적 사고 안에서 만들어진 타당성의 결론이 아닙니다. 믿음은 때로는 무모하게 예수님께 다가가는 것이기도 하고, 그분께 손을 내밀기도 하면서 그분께서 건네시는 손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박형순 바오로 신부)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말씀의 초대

아브라함이 길손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주님을 대접하자, 주님께서는 내년 이맘때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그저 한 말씀만 해 달라는 백인대장의 믿음에 감탄하시며 그의 종을 고쳐 주시고, 열병으로 드러누워 있는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 주신다(복음).

 

제1독서

<너무 어려워 주님이 못 할 일이라도 있다는 말이냐? 내가 너에게 돌아올 터인데, 그때에는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18,1-15
그 무렵 1 주님께서는 마므레의 참나무들 곁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아브라함은 한창 더운 대낮에 천막 어귀에 앉아 있었다.
2 그가 눈을 들어 보니 자기 앞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그는 그들을 보자 천막 어귀에서 달려 나가 그들을 맞으면서
땅에 엎드려 3 말하였다.
“나리, 제가 나리 눈에 든다면, 부디 이 종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시어 발을 씻으시고, 이 나무 아래에서 쉬십시오.
5 제가 빵도 조금 가져오겠습니다.
이렇게 이 종의 곁을 지나게 되셨으니, 원기를 돋우신 다음에 길을 떠나십시오.”
그들이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6 아브라함은 급히 천막으로 들어가 사라에게 말하였다.
“빨리 고운 밀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 반죽하여 빵을 구우시오.”
7 그러고서 아브라함이 소 떼가 있는 데로 달려가
살이 부드럽고 좋은 송아지 한 마리를 끌어다가 하인에게 주니,
그가 그것을 서둘러 잡아 요리하였다.
8 아브라함은 엉긴 젖과 우유와 요리한 송아지 고기를 가져다
그들 앞에 차려 놓았다.
그들이 먹는 동안 그는 나무 아래에 서서 그들을 시중들었다.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댁의 부인 사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그가 “천막에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내년 이때에 내가 반드시 너에게 돌아올 터인데,
그때에는 너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등 뒤 천막 어귀에서 이 말을 듣고 있었다.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미 나이 많은 노인들로서,
사라는 여인들에게 있는 일조차 그쳐 있었다.
12 그래서 사라는 속으로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렇게 늙어 버린 나에게 무슨 육정이 일어나랴?
내 주인도 이미 늙은 몸인데.’
13 그러자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사라는 웃으면서,
‘내가 이미 늙었는데, 정말로 아이를 낳을 수 있으랴?’ 하느냐?
14 너무 어려워 주님이 못 할 일이라도 있다는 말이냐?
내가 내년 이맘때에 너에게 돌아올 터인데,
그때에는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15 사라가 두려운 나머지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 하면서 부인하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너는 웃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5-17
5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6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7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8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9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10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1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12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1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바로 그 시간에 종이 나았다.
14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으로 가셨을 때,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드러누워 있는 것을 보셨다.
15 예수님께서 당신 손을 그 부인의 손에 대시니 열이 가셨다.
그래서 부인은 일어나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16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마귀 들린 이들을 예수님께 많이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악령들을 쫓아내시고,
앓는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17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그는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졌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웃음’에 관한 표현이 오늘 독서에서 네 차례 등장합니다. 모두 사라의 웃음과 관련됩니다. 물론 이 웃음은 나중에 ‘그가 웃다.’라는 뜻의 이름인 ‘이사악’의 탄생을 위한 복선입니다. 그러나 사라의 마음으로 사라의 웃음을 읽어 본다면 기뻐서 짓는 웃음이라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사라가 젊은 여인이었다면, 그의 웃음은 아기를 잉태하게 된다는 기쁨의 웃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사라가 나이가 많고, 가임기가 지났음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도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사라는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의 웃음이 아닌 씁쓸한 웃음을 짓게 됩니다.
아울러 사라의 웃음은 하느님을 향한 부족한 믿음을 보여 줍니다.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의 나이가 여든아홉 살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흔아홉 살이었습니다. 그의 상식과 판단에 따르면, 임신과 출산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비록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아들의 출생 예고를 들었을 때, 사라는 신앙의 응답이 아닌 현실적 판단에 따른 응답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사라가 웃었다는 사실만 우리에게 알려 줄 뿐, 그가 하느님의 말씀을 믿었다고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믿기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믿음은 우리의 생각과 상식을 뛰어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알고 있거나 생각한 대로 또 예측 가능한 대로 흘러간다면, 믿음이란 참으로 쉬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눈에는 불가능한 것이 당신께는 가능하다고, 당신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으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언제나 감사와 찬미를 드리고 있는지, 아니면 우리의 생각과 판단에 따라 쓴웃음을 짓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박형순 바오로 신부)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말씀의 초대

모세는 백성에게,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주 하느님께서 그들의 운명을 되돌려 주실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고 권고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두 사람이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다시 모아들이실 것이다.>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30,1-5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 “이 모든 말씀, 곧 내가 너희 앞에 내놓은 축복과 저주가 너희 위에 내릴 때,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몰아내 버리신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너희가 마음속으로 뉘우치고, 2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서,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대로
너희와 너희의 아들들이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3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의 운명을 되돌려 주실 것이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또 너희를 가엾이 여기시어,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흩어 버리신 모든 민족들에게서
너희를 다시 모아들이실 것이다.
4 너희가 하늘 끝까지 쫓겨났다 하더라도,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그곳에서 너희를 모아들이시고
그곳에서 너희를 데려오실 것이다.
5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 조상들이 차지하였던 땅으로 너희를 들어가게 하시어,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하고 조상들보다 더 잘되고 번성하게 해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서로 용서하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4,29―5,2
형제 여러분, 29 여러분의 입에서는 어떠한 나쁜 말도 나와서는 안 됩니다.
필요할 때에 다른 이의 성장에 좋은 말을 하여,
그 말이 듣는 이들에게 은총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하십시오.
30 하느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속량의 날을 위하여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31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32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5,1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9ㄴ-2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9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입니다.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민족이 하루빨리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 기도해 봅니다. 민족의 분단이라는 쓰라린 역사의 상흔이 한 세기가 다 되어 가도록 우리의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칠십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우리는 기도해 왔습니다. 그런데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여전히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듯 보입니다. “왜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까?”라는 의문도 가져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기도에 관련된 말씀과 용서에 관한 말씀이 함께 등장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께 청하는 것으로 그분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반면에 용서는 인간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역할과 인간의 역할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움직여 오신 전형적인 방법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뜻대로 세상을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언제나 인간과 공동 작업을 하고자 하십니다. 이것은 기도로 청원을 드리는 것만으로 하느님을 움직일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노력이 함께 필요한 것입니다.
다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을 바라봅니다. 우리 민족은 지난 칠십 년 동안 하나 됨을 위해서 긴 시간 기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 되고자 하느님과 함께하는 노력이 부족하였음을 의미합니다. 분단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우리에게 통일의 필요성과 간절함은 점점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남북이 평화로이 교류하고 소통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하나 되기를 희망합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며 노래도 불러 왔습니다. 희망과 노래만이 아닌 진정한 화해와 용서를 위한 우리의 노력이 필요함을 기억하면서 다시 한번 기도해야겠습니다.
(박형순 바오로 신부)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말씀의 초대

이사야는, 주님께서 그를 모태에서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그의 이름을 지어 주셨다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다고 한다(제2독서).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고 열린 할례식에서 아기 아버지 즈카르야가 아기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겠다고 하는 순간, 즈카르야는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한다(복음).

 

제1독서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9,1-6
1 섬들아, 내 말을 들어라.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2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시어
당신의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
3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4 그러나 나는 말하였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5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야곱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고
이스라엘이 당신께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6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3,22-26
그 무렵 바오로가 말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조상들에게 22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23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24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25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6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의 후손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의 이름은 요한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7-66.80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80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오늘의 묵상

세례자 요한이 탄생합니다. 우여곡절을 거쳐 세상에 탄생합니다. 복음서에는 그의 탄생이 매우 놀라운 일로 묘사됩니다. 먼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그 이유입니다. 이웃과 친척들에게,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 엘리사벳이 출산하였다는 사실은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셨음을 뜻하기에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아버지 즈카르야입니다. 요한의 탄생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한 예고부터 시작됩니다. 탄생 예고 이후에 천사가 예고한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즈카르야는 벙어리가 됩니다. 요한이 태어나고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기록되고서야 그의 입이 열리고 혀가 풀리면서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두려워하면서 이 이야기를 화제로 삼습니다. 만일 이야기가 여기에서 끝나면 요한의 탄생이 놀라운 것은 그의 부모 엘리사벳과 즈카르야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의 탄생이 놀라운 마지막 이유가 등장합니다. 그의 탄생과 관련된 소문과 함께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이 던져지면서, 엘리사벳도, 즈카르야도 아닌 요한이 특별함의 이유가 됩니다. 복음사가는 그의 탄생이 특별한 이유가 바로 요한 자신임을 알려 줍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자비와 기적을 통해서 세상에 태어난 특별한 인물,세례자 요한입니다. 그런데 그는 더 큰 특별함과 놀라움을 위하여 자신을 낮추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마르 1,7). 자신이 지닌 특별함에도 예수님 때문에 모든 것을 스스로 낮춘 겸손한 세례자 요한입니다. 우리도 요한만큼은 아니지만 매우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탄생도 특별하고 놀라웠습니다. 그런 우리가 예수님을 위하여 겸손하게 우리 자신을 낮추고자 노력한다면, 세례자 요한을 닮아 가는 한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박형순 바오로 신부)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이집트 강에서 유프라테스강까지 이르는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겠다고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라고 하신다. 거짓 예언자들은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알아볼 수 있다(복음).

 

제1독서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니 하느님께서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로마 4,3ㄴ). 주님께서는 그와 계약을 맺으셨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15,1-12.17-18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그 무렵 1 주님의 말씀이 환시 중에 아브람에게 내렸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너는 매우 큰 상을 받을 것이다.”
2 그러자 아브람이 아뢰었다.
“주 하느님, 저에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저는 자식 없이 살아가는 몸,
제 집안의 상속자는 다마스쿠스 사람 엘리에제르가 될 것입니다.”
3 아브람이 다시 아뢰었다. “저를 보십시오. 당신께서 자식을 주지 않으셔서,
제 집의 종이 저를 상속하게 되었습니다.”
4 그러자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내렸다.
“그가 너를 상속하지 못할 것이다. 네 몸에서 나온 아이가 너를 상속할 것이다.”
5 그러고는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너의 후손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6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7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주님이다.
이 땅을 너에게 주어 차지하게 하려고, 너를 칼데아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이다.”
8 아브람이 “주 하느님, 제가 그것을 차지하리라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자,
9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삼 년 된 암송아지 한 마리와 삼 년 된 암염소 한 마리와 삼 년 된 숫양 한 마리,
그리고 산비둘기 한 마리와 어린 집비둘기 한 마리를 나에게 가져오너라.”
10 그는 이 모든 것을 주님께 가져와서 반으로 잘라,
잘린 반쪽들을 마주 보게 차려 놓았다. 그러나 날짐승들은 자르지 않았다.
11 맹금들이 죽은 짐승들 위로 날아들자, 아브람은 그것들을 쫓아냈다.
12 해 질 무렵, 아브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는데,
공포와 짙은 암흑이 그를 휩쌌다.
17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연기 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그 쪼개 놓은 짐승들 사이로 지나갔다.
18 그날 주님께서는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5-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5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
16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거두어들이고,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거두어들이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19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 불에 던져진다.
20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언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지금 현재의 이야기가 아니라, 미래의 다가올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의미입니다. 둘째는, 하느님께서 예언자에게 맡겨 주신 말씀입니다. 이 의미는 지금, 그리고 여기에 전해지는 하느님 말씀입니다.
구약 성경의 예언서는 미래의 이야기를 예고하기도 하지만 더 중요하게 다룬 것은 현재가 강조된 예언입니다. 문제는 하느님께 위탁받은 말씀을 전하는 하느님의 예언자들이 거짓 예언자들에게 탄압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참예언자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듣기 좋은 이야기가 아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반면에 거짓 예언자들은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이야기만 합니다. 그들은 임금의 귀에, 통치자의 눈에, 권력자의 마음에 드는 이야기만 전합니다. 거짓 예언자들에게는 하느님이 아닌 권력자들이 중심에 서 있습니다. 예언의 의미가 왜곡됩니다.
신약 시대에도 거짓 예언자들의 영향력은 여전하였습니다. 자신들이 거룩한 사람이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 말씀을 전한다고 하였지만, 구약의 거짓 예언자들처럼 그들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거짓 예언자들의 위험성을 아시고, 참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를 구별하는 기준을 제시해 주십니다. 그것은 그들의 선포가 맺는 열매를 통해서입니다.
그러기에 생각합니다. 우리가 전하는 이야기는 참예언입니까? 거짓 예언입니까? 우리가 이웃들 앞에서 전하는 이야기는, 우리 자신이 한 행동은 어떠한 열매를 맺을까요? 우리 가운데 누구도 거짓 예언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참예언자가 되고 싶습니까? 우리의 말과 행동이 우리 이웃의 눈만이 아니라, 예수님께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며 행동합시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라는 좋은 나무에서 ‘주님’이라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박형순 바오로 신부)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말씀의 초대

아브람의 가축을 치는 목자들과 롯의 가축을 치는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자, 롯은 요르단 들판을 선택하고 동쪽으로 옮겨 간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라며,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너와 나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한 혈육이 아니냐?>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13,2.5-18
2 아브람은 가축과 은과 금이 많은 큰 부자였다.
5 아브람과 함께 다니는 롯도 양과 소와 천막들을 가지고 있었다.
6 그래서 그 땅은 그들이 함께 살기에는 너무 좁았다.
그들의 재산이 너무 많아 함께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7 아브람의 가축을 치는 목자들과
롯의 가축을 치는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때 그 땅에는 가나안족과 프리즈족이 살고 있었다.
8 아브람이 롯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한 혈육이 아니냐? 너와 나 사이에,
그리고 내 목자들과 너의 목자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9 온 땅이 네 앞에 펼쳐져 있지 않느냐? 내게서 갈라져 나가라.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
10 롯이 눈을 들어 요르단의 온 들판을 바라보니,
초아르에 이르기까지 어디나 물이 넉넉하여
마치 주님의 동산과 같고 이집트 땅과 같았다.
그때는 주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기 전이었다.
11 롯은 요르단의 온 들판을 제 몫으로 선택하고 동쪽으로 옮겨 갔다.
이렇게 두 사람은 서로 갈라지게 되었다.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서 살고, 롯은 요르단 들판의 여러 성읍에서 살았다.
롯은 소돔까지 가서 천막을 쳤는데,
13 소돔 사람들은 악인들이었고, 주님께 큰 죄인들이었다.
14 롯이 아브람에게서 갈라져 나간 다음,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눈을 들어 네가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을, 또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아라.
15 네가 보는 땅을 모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히 주겠다.
16 내가 너의 후손을 땅의 먼지처럼 많게 할 것이니,
땅의 먼지를 셀 수 있는 자라야 네 후손도 셀 수 있을 것이다.
17 자, 일어나서 이 땅을 세로로 질러가 보기도 하고
가로로 질러가 보기도 하여라. 내가 그것을 너에게 주겠다.”
18 아브람은 천막을 거두어,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의 참나무들 곁으로 가서 자리 잡고 살았다.
그는 거기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6.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6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12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13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14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이라는 ‘선민의식’이 가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선민의식은 자연스럽게 ‘이스라엘=하느님 백성’이라는 도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지닌 민족의 정체성과 민족주의적 사고는 강한 배타성을 지닙니다. 게다가 자신들이 하느님의 백성이듯이 하느님께서는 자신들만의 하느님으로 계셔야 한다는 신학적 명제를 제시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닌 선민의식과 강한 정체성은 하느님을 전능하신 창조주며 모든 민족들의 하느님이 아닌, 이스라엘만의 민족 신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이런 보수적 신학의 입장을 거부하는 신학도 있습니다. 하느님 백성이 되는 길은 단순하게 혈통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견해입니다. 중요한 것은 혈통이 아니라, 윤리적 가르침과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충실하게 살아가는 이라면, 누구라도 하느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혈통이 아닌, 윤리 중심의 공동체를 지향하고, 이를 위한 표현으로 시편에서는 “주님, 누가 당신 천막에 머물 수 있습니까?”(시편 15[14],1)라고 노래합니다. 기존의 가르침에서는 하느님의 천막인 주님의 집에 머무는 것은 유다인에게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화답송에서는 의로운 사람, 악의와 불의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 이웃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성별이나 민족이나 능력을 떠나서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거듭난 하느님 백성이며, 그분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자격을 얻은 것은 모태 신앙이거나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견진성사를 받아서는 더더욱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주님의 가르침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하였다면, 남에게 바라는 그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실천하면서 다시 주님의 장막에 머물 수 있는 신앙인의 특권을 누려 봅시다.
(박형순 바오로 신부)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당신께서 보여 주실 땅으로 가라고 하시자, 그가 길을 떠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남을 심판하지 말라시며,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고 하신다. 아울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12,1-9
그 무렵 1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2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3 너에게 축복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겠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4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그와 함께 떠났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 그의 나이는 일흔다섯 살이었다.
5 아브람은 아내 사라이와 조카 롯과,
자기가 모은 재물과 하란에서 얻은 사람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을 향하여 길을 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이르렀다.
6 아브람은 그 땅을 가로질러 스켐의 성소 곧 모레의 참나무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그때 그 땅에는 가나안족이 살고 있었다.
7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내가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주겠다.”
아브람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주님을 위하여 그곳에 제단을 쌓았다.
8 그는 그곳을 떠나 베텔 동쪽의 산악 지방으로 가서,
서쪽으로는 베텔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아이가 보이는 곳에 천막을 쳤다.
그는 그곳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불렀다.
9 아브람은 다시 길을 떠나 차츰차츰 네겝 쪽으로 옮겨 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2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3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5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1요한 5,1-5)와 복음(마태 22,34-40)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아브람이 하느님의 말씀을 처음으로 듣게 됩니다. 그 말씀 안에서 “가거라.”라는 명령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아주 단순하게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납니다. 이 짧은 구절 안에서 함께 생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먼저, 하느님의 말씀이 끝난 뒤에 이어지는 아브람의 행동을 성경은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라고 단순하게 알려 줍니다.
아브람은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서 “왜요?”라고 반문하거나,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지 않고, 말씀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움직입니다. 그의 행동에는 망설임이 없습니다. 그는 하느님 말씀에 자신의 온 존재를 던지면서, 곧바로 행동으로 옮깁니다. 둘째로, 그는 자신이 원하거나 이해한 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는 “도대체 어디로 가라는 말씀입니까?” 하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그는 가나안 땅에 도착해서야 “내가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주겠다.”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가거라.”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들었을 때,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행동할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브람(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그가 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생각하면 그는 복을 받은 사람이고, 그를 통해서 세상의 모든 사람이 복을 받게 됩니다. 복된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런 하느님 축복의 통로요, 믿음의 조상이 되고자 보여 준 행동은 자신의 의지나 뜻이 아닌,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망설임 없이 움직이는 것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말씀과 부르심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습니까? 아브람의 모습과 비교하여 봅시다.
(박형순 바오로 신부)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