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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6.30 (녹) 연중 제13주간 수요일(6/30)

말씀의 초대

아브라함은 사라의 청으로 여종인 하가르와 그가 낳아 준 아들을 내보내는데, 하느님께서는 광야에서 울부짖는 하가르에게 아들을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가다라인들의 지방에서 마귀 들린 두 사람에게서 마귀를 몰아내 돼지 떼 속에 들어가게 하시어 그들을 고쳐 주신다(복음).

 

제1독서

<저 여종의 아들이 내 아들 이사악과 함께 상속을 받을 수는 없어요.>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21,5.8-20
5 아브라함에게서 아들 이사악이 태어났을 때, 그의 나이는 백 살이었다.
8 아기가 자라서 젖을 떼게 되었다.
이사악이 젖을 떼던 날 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베풀었다.
9 그런데 사라는 이집트 여자 하가르가 아브라함에게 낳아 준 아들이
자기 아들 이사악과 함께 노는 것을 보고, 10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저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세요.
저 여종의 아들이 내 아들 이사악과 함께 상속을 받을 수는 없어요.”
11 그 아들도 자기 아들이므로 아브라함에게는 이 일이 무척이나 언짢았다.
12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그 아이와 네 여종 때문에 언짢아하지 마라.
사라가 너에게 말하는 대로 다 들어주어라.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13 그러나 그 여종의 아들도 네 자식이니, 내가 그도 한 민족이 되게 하겠다.”
14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빵과 물 한 가죽 부대를 가져다
하가르에게 주어 어깨에 메게 하고는, 그를 아기와 함께 내보냈다.
길을 나선 하가르는 브에르 세바 광야에서 헤매게 되었다.
15 가죽 부대의 물이 떨어지자 그 여자는 아기를 덤불 밑으로 내던져 버리고는,
16 활 한 바탕 거리만큼 걸어가서 아기를 마주하고 주저앉았다.
‘아기가 죽어 가는 꼴을 어찌 보랴 !’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그는 아기를 마주하고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
17 하느님께서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그래서 하느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하가르를 부르며 말하였다.
“하가르야, 어찌 된 일이냐? 두려워하지 마라.
하느님께서 저기에 있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18 일어나 가서 아이를 들어 올려 네 손으로 꼭 붙들어라.
내가 그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19 그런 다음 하느님께서 하가르의 눈을 열어 주시니,
그가 우물을 보게 되었다.
그는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우고 아이에게 물을 먹였다.
20 하느님께서는 그 아이와 함께 계셨다.
그는 자라서 광야에 살며 활잡이가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때가 되기도 전에 마귀들을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8-34
예수님께서 호수 28 건너편 가다라인들의 지방에 이르셨을 때,
마귀 들린 사람 둘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너무나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다닐 수가 없었다.
29 그런데 그들이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하고 외쳤다.
30 마침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놓아 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31 마귀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쫓아내시려거든
저 돼지 떼 속으로나 들여보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2 예수님께서 “가라.” 하고 말씀하시자, 마귀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가 모두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물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
33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로 가서는,
이 모든 일과 마귀 들렸던 이들의 일을 알렸다.
34 그러자 온 고을 주민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나왔다.
그들은 그분을 보고 저희 고장에서 떠나가 주십사고 청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하가르와 그 아들 이스마엘을 쫓아내라고 졸라 대자 하느님께서는 사라의 부탁을 들어주라 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느님 말씀대로 행동합니다. 그 결과 하가르와 이스마엘은 집에서 쫓겨납니다. 그들을 생각하면 하느님과 사라가 너무 냉정해 보입니다. 그 냉정함은 호칭에서 드러납니다. 사라는 “저 여종과 그 아들”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녀에게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아들도 아니고 그저 여종의 아들일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이스마엘을 ‘네(아브라함) 아들’이 아니라 “그 아이”라고 부르십니다. 이에 이런 질문을 던져 봅니다. 하느님과 사라에게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아들이기는 한 것일까요?
창세기의 저자는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이름이 바뀌기 전에 태어났음에 주목합니다. 하느님과 계약을 맺기 이전, 아브라함의 이름은 ‘아브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마엘은 ‘아브람’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이사악은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그가 새로운 이름을 얻은 뒤에 얻게 된 아들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께 상속을 약속받은 인물은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사악입니다(창세 17,19 참조). 오늘 독서는 가족 간의 갈등을 전해 주는 냉정한 가족사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하느님 약속이 바탕이 된 상속에 위협이 되는 상황을 하느님께서 해결하시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바로 구원의 역사입니다.
우리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하느님께 항변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시냐고, 계시기는 한 것이냐며,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의 처지이고 우리의 생각일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계획은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외아드님의 죽음으로 완성됩니다. 지금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는 그분의 계획이 잘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감추어진 하느님의 의도가 있음을 믿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박형순 바오로 신부)

Posted by 에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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