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낸 뒤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한 해인 희년으로 선언하고 해방을 선포하라고 하신다(제1독서). 헤로데는 헤로디아의 딸에게 맹세한 대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베어 건네준다(복음).

제1독서

▥ 레위기의 말씀입니다.

25,1.8-17

1 주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8 “너희는 안식년을 일곱 번, 곧 일곱 해를 일곱 번 헤아려라.

그러면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 마흔아홉 해가 된다.

9 그 일곱째 달 초열흘날 곧 속죄일에 나팔 소리를 크게 울려라.

너희가 사는 온 땅에 나팔 소리를 울려라.

10 너희는 이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한 해로 선언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의 희년이다.

너희는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고, 저마다 자기 씨족에게 돌아가야 한다.

11 이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다.

너희는 씨를 뿌려서도 안 되고, 저절로 자란 곡식을 거두어서도 안 되며,

저절로 열린 포도를 따서도 안 된다.

12 이 해는 희년이다. 그것은 너희에게 거룩한 해다.

너희는 밭에서 그냥 나는 것만을 먹어야 한다.

13 이 희년에 너희는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아야 한다.

14 너희가 동족에게 무엇을 팔거나 동족의 손에서 무엇을 살 때,

서로 속여서는 안 된다.

15 너희는 희년에서 몇 해가 지났는지 헤아린 다음 너희 동족에게서 사고,

그는 소출을 거둘 햇수를 헤아린 다음 너희에게 팔아야 한다.

16 그 햇수가 많으면 값을 올리고, 햇수가 적으면 값을 내려야 한다.

그는 소출을 거둘 횟수를 너희에게 파는 것이다.

17 너희는 동족끼리 속여서는 안 된다.

너희는 너희 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12

1 그때에 헤로데 영주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2 시종들에게,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3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붙잡아 묶어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4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

5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그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6 그런데 마침 헤로데가 생일을 맞이하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그를 즐겁게 해 주었다.

7 그래서 헤로데는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8 그러자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9 임금은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어서

그렇게 해 주라고 명령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11 그리고 그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게 하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12 요한의 제자들은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모든 사람의 생각이 내 생각과 같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생각 가운데 언제나 내 생각이 옳은 것은 아님을 인정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많은 사람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그 의견들을 절충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서로 자신의 생각만을 주장하다 보면 다툼도 있고, 공동체에 분열도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양보하고 한 발 물러서서 서로 타협하고 절충점을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만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하는 모습입니다. 
타협은 그렇게 각자의 것을 내어놓는 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타협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습니다. 절대 양보하지도, 물러서지도 말아야 하는 것이지요. 바로 하느님의 뜻이며 예수님의 가치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는 타협하는 헤로데 임금과 타협하지 않는 세례자 요한이 등장합니다. 인륜과 가족에 대한 사랑 앞에서 헤로데는 타협합니다. 또한 요한의 목숨 앞에서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 힘과 권력에 타협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말씀과 가치, 신념과 믿음 앞에서 자신에 대한 사랑과 세상의 가치와 타협합니다. 그렇지만 세례자 요한은 결코 타협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목숨과 타협하지 않았고 국가의 절대 권력이나 무력과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인기나 부와 명예와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생각에서 벗어나 다른 이들의 말을 경청하고 나와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오만과 독선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각을 양보하고 절충하면서 타협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만은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통 앞에 중립이 없듯이 가장 가난하고 가장 아파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권력, 돈과 경제적 원리 앞에서 하느님의 뜻을 양보하고 타협할 수 없습니다. 지금 무엇인가에 타협하고 있습니까? 스스로에게 “이 정도는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타협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보았으면 합니다. (최종훈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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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정해진 때에 소집해야 하는 거룩한 모임, 곧 주님의 축일들을 일러 주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시자 사람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긴다(복음).

제1독서

▥ 레위기의 말씀입니다.

23,1.4-11.15-16.27.34ㄴ-37

1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4 “너희가 정해진 때에 소집해야 하는 거룩한 모임, 곧 주님의 축일들은 이러하다.

5 첫째 달 열나흗날 저녁 어스름에 주님의 파스카를 지켜야 한다.

6 이달 보름에는 주님의 무교절을 지내는데,

너희는 이레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7 첫날에는 거룩한 모임을 열고,

생업으로 하는 일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8 그리고 이레 동안 주님에게 화제물을 바쳐야 한다.

이레째 되는 날에는 다시 거룩한 모임을 열고,

생업으로 하는 일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9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10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으로 들어가서 수확을 거두어들일 때,

너희 수확의 맏물인 곡식 단을 사제에게 가져와야 한다.

11 사제는 그 곡식 단이 너희를 위하여 호의로 받아들여지도록

주님 앞에 흔들어 바친다.

사제는 그것을 안식일 다음 날 흔들어 바친다.

15 너희는 안식일 다음 날부터,

곧 곡식 단을 흔들어 바친 날부터 일곱 주간을 꽉 차게 헤아린다.

16 이렇게 일곱째 안식일 다음 날까지 오십 일을 헤아려,

새로운 곡식 제물을 주님에게 바친다.’

27 또한 일곱째 달 초열흘날은 속죄일이다.

너희는 거룩한 모임을 열고 고행하며, 주님에게 화제물을 바쳐야 한다.

34 ‘이 일곱째 달 보름날부터 이레 동안은 주님을 위한 초막절이다.

35 그 첫날에는 거룩한 모임을 열고, 생업으로 하는 일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36 너희는 이레 동안 주님에게 화제물을 바친다.

여드레째 되는 날에는 다시 거룩한 모임을 열고, 주님에게 화제물을 바친다.

이날은 집회일이므로, 너희는 생업으로 하는 일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37 이는 너희가 거룩한 모임을 소집해야 하는 주님의 축일들로서,

이때 너희는 그날그날에 맞는 번제물과 곡식 제물과

희생 제물과 제주를 주님에게 화제물로 바쳐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54-58

그때에 54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55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56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57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8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우리는 모두 예언자가 되어야 합니다. 국어사전의 정의와는 차이가 있지만, 예언자는 미래의 일을 미리 알려 주는 사람(미리 예: 豫)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사람들에게 전하고(맡길 예: 預) 그 뜻에 따라 살아가면서 그것이 행복임을 주위에 보여 주는 사람입니다.
예언자로서 살아가려면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과 만나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만나려고 기도하고 성사 생활을 하며, 이를 추억하고 점차 깊은 관계를 맺어 갑니다. 성경과 교리의 말씀을 통하여 하느님의 방법과 하느님의 뜻을 깨달으려고 노력합니다. 이처럼 예언자로서 하느님과 만나고 그분의 뜻을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것으로 예언 직무를 완성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예언자는 현실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지금 이 시대에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적용하고 설명해야 할지를 정확하게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특히 하느님의 뜻에 반대되는 문제들을 바르게 지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의함과 불공정, 인권 침해와 하느님을 섬기지 않는 오만함을 용기 있게 지적해야 합니다. 이 일은 예언자로서 선택이 아닌 의무입니다.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특히 사제로서 예언자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첫 번째 역할만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도와 성사 생활만 열심히 하면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드러내는 일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제는 예언자로서 세상의 정의와 공정, 평화와 평등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때로는 시대에 대한 비판과 쓴소리를 해야 하고,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외면하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언자로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시대의 징표를 바라보고, 그 징표를 하느님의 뜻과 가치로 해석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자신의 이익 때문에, 자신의 것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느님의 뜻을 멀리하고 외면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자신의 안위만을 바라보는, 그래서 마침내 예수님을 외면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나자렛 사람들이며 유다인들입니다. 때로는 고향 사람들이나 친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면서도 “예.”가 아닌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있는 예언자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최종훈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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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므로 서로 사랑하라고 권고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당신은 부활이요 생명이니 당신을 믿는 이는 죽더라도 살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4,7-16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9-27

그때에 19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20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21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23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24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27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습니다. 하지 않을 수도 없고, 하기 싫다고 도망갈 수도 없습니다. 반면에 하고 싶은 일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마음속으로는 하고 싶은 일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해야만 하는 일이 행복하지 않을 때 우리의 삶은 지옥과 같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달라도 지옥이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해야 하는 일을 묵묵히 참아 내며 견디는 가운데 그 나름의 의미와 행복, 재미를 찾아낼 때입니다. 
오늘은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입니다. 요한 복음은 라자로의 죽음에 관한 예수님과 마르타의 대화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이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 복음 대신 오늘 선택할 수 있는 루카 복음은 두 성녀의 모습을 통하여 예수님을 사랑하는 다양한 방법을 보여 줍니다. 
루카 복음에서 마르타는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해야 하는 일이 있기에 하지 못하고, 불평과 불만이 쌓입니다. 동생 마리아를 보니,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것 같아 보여 속상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처음부터 마르타가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보고, 그분의 말씀을 더 듣고, 그분께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다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마르타도 충분히 자신이 바라던 일,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하고 싶고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은 생각에 늘 남과 비교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의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현재의 삶을 지옥으로 만듭니다.
예수님의 협조자로, 교회의 협조자로 살아가는 우리입니다. 분명히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것이고 바라는 점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지는 소임과 역할이 부담과 짐으로 다가올 때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떠올려 보았으면 합니다. 왜 이 일을 시작하였는지,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가르침대로 살고자 이 일을 시작하지는 않았는지, 또한 지금 이 일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는 무엇인지를 말입니다. 여러분은 많은 것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음을 기억하고 현재의 일에 최선을 다하였으면 합니다. 

(최종훈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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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모세는 증언판 두 개를 들고 시나이 산에서 내려왔는데, 그 얼굴의 살갗이 빛나고 있어 사람들이 두려워하자 너울로 자기 얼굴을 가린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나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아 가진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산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34,29-35

29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내려왔다.

산에서 내려올 때 모세의 손에는 증언판 두 개가 들려 있었다.

모세는 주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어

자기 얼굴의 살갗이 빛나게 되었으나, 그것을 알지 못하였다.

30 아론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모세를 보니,

그 얼굴의 살갗이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에게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31 모세가 그들을 불렀다.

아론과 공동체의 모든 수장들이 그에게 나아오자,

모세가 그들에게 이야기하였다.

32 그런 다음에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그에게 가까이 왔다.

모세는 주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였다.

33 모세는 그들과 이야기를 다 하고

자기 얼굴을 너울로 가렸다.

34 모세는 주님과 함께 이야기하러

그분 앞으로 들어갈 때는 너울을 벗고, 나올 때까지 쓰지 않았다.

나와서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였다.

35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얼굴의 살갗이 빛나는 것을 보게 되므로,

모세는 주님과 함께 이야기하러 들어갈 때까지는,

자기 얼굴을 다시 너울로 가리곤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44-46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45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46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저는 평소에 투신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몸을 내던지는 삶을 무모하다고, 위험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누군가는 그렇게 몸을 내던져 봤자 돌아오는 것은 실망뿐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저는 투신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또한 어떻게 투신하며 살아야 할지 매번 고민합니다.
하늘 나라는 투신의 삶이라고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의 비유를 통해서 이야기하십니다. 가진 것을 다 파는 모험과 위험을 감수하는 삶,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삶을 말씀하십니다. 어쩌면 우리는 보물의 가치는 알지만 밭의 가치는 모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보물을 얻으려고 평생을 찾아 헤매면서도, 보물이 숨겨진 밭의 가치가 너무나 보잘것없기에, 또는 너무나 두렵고 위험한 것이기에, 너무 힘들고 아픈 것이기에, 그 밭을 위하여 온 몸을 던지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평생 진주를 찾아다니는 상인은 많은 곳을 찾아 헤매는 고통과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멸시를 감수해야 진주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녀야 하며, 좋은 진주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연구하는 노고를 감수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주 상인에게 주어진 밭의 모습일 것입니다. 하늘 나라를 발견하려면 우리는 그러한 아픔과 고통, 수고와 두려움을 감수해야 합니다.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시는’(마태 14,22-33 참조) 예수님의 목소리에 베드로는 물 위로 자신을 내던집니다. 물 위를 걸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물에 빠지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풍랑 때문에 놀라고 두려운 마음인 채로 물에 뛰어듭니다.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거기 계셨고 예수님께서 자신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투신, 곧 자신을 내던질 수 있었습니다. 
투신의 삶을 위해서 두려움을 이겨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불확실에서 기인한 두려움과 의심은 우리에게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두려움과 의심을 이겨 낼 수 있는 것은 믿음뿐입니다. 낭떠러지에서 몸을 내던져도 우리를 받아 안아 주실 예수님께서 계시다는 믿음,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용기와 힘을 주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걸어가 주신다는 믿음입니다. 내어 맡기십시오. 두려움 속에서도 투신하십시오. 하늘 나라를 위하여, 예수님의 가치를 위하여, 사랑을 위하여 투신하십시오. 여러분의 그 삶을 응원합니다. (최종훈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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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며 말씀하시곤 하셨다. 모세는 주님과 함께 사십 일을 지내면서 십계명을 판에 기록하였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밭의 가라지 비유를 설명하시며,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33,7-11; 34,5ㄴ-9.28

그 무렵 7 모세는 천막을 챙겨 진영 밖으로 나가

진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그것을 치곤 하였다.

모세는 그것을 만남의 천막이라 불렀다.

주님을 찾을 일이 생기면, 누구든지 진영 밖에 있는 만남의 천막으로 갔다.

8 모세가 천막으로 갈 때면, 온 백성은 일어나 저마다 자기 천막 어귀에 서서,

모세가 천막으로 들어갈 때까지 그 뒤를 지켜보았다.

9 모세가 천막으로 들어가면, 구름 기둥이 내려와 천막 어귀에 머무르고,

주님께서 모세와 말씀을 나누셨다.

10 구름 기둥이 천막 어귀에 머무르는 것을 보면,

온 백성은 일어나 저마다 자기 천막 어귀에서 경배하였다.

11 주님께서는 마치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말하듯,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여 말씀하시곤 하였다.

모세가 진영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의 젊은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천막 안을 떠나지 않았다.

34,5 주님께서 모세와 함께 서시어,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셨다.

6 주님께서는 모세 앞을 지나가며 선포하셨다.

“주님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며

7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풀고 죄악과 악행과 잘못을 용서한다.

그러나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고

조상들의 죄악을 아들 손자들을 거쳐 삼 대 사 대까지 벌한다.”

8 모세는 얼른 땅에 무릎을 꿇어 경배하며 9 아뢰었다.

“주님, 제가 정녕 당신 눈에 든다면,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백성이 목이 뻣뻣하기는 하지만, 저희 죄악과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당신 소유로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28 모세는 그곳에서 주님과 함께 밤낮으로 사십 일을 지내면서,

빵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

그는 계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판에 기록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36-43

그때에 36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와,

“밭의 가라지 비유를 저희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7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르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38 밭은 세상이다.

그리고 좋은 씨는 하늘 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

40 그러므로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41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42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43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코로나 시대에 생긴 ‘살고픔’이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무엇을 먹지 못하면 배고픔을 느끼듯 사람들을 만나지 못해서 느끼는 ‘살고픔’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만나 인사 나누고, 서로 안아 주고 눈을 맞추며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위로해 주는 것을 그리워하는 살고픔의 시대가 되었다고 합니다. 본당 소임을 맡지 않고 있는 사제에게도 신자들에 대한 살고픔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려움과 고민을 공유하고 많은 대화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같은 것을 보고 살아간다는 기쁨과 위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바로 신자들에 대한 살고픔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신자들에게 사제는 어려운 사람입니다. 친해지고 싶지만 언제나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존재지요. 그것은 존경의 의미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자신의 존재가 초라하게 느껴져 다가가지 못하기도 합니다. 또한 늘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으니 접근 자체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교회 내 봉사 등 어떠한 계기로 만남이 잦아지고,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사제에 대한 거리감은 점차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예수님 주위에도 늘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고, 그분의 말씀에 힘과 권위가 있어 일반 사람들은 그분께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였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려고 해도 쉽게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을 뵐 수도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밭의 가라지에 대한 비유 말씀을 설명해 달라고 거리낌 없이 예수님께 청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 일이 제자들에게는 일상과도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제나 그분 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이야기하고 더 많이 그분을 알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더 많이 묻게 되고 더 자연스러워지고 더 친근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을 더 가까이에서 만나려고 구약에서 성막을 만든 것처럼, 거룩하신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하늘을 찌를 듯 높다 하더라도, 우리의 삶 가까이에서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그분을 알게 되고 친근해집니다. 
예수님에 대한 살고픔을 가지십시오. 늘 그분 가까이에서 그분과 함께 지내십시오. 더 많이 묻고 더 많이 알아가고 그래서 더 많이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더 많은 것을 예수님에게서 받을 것입니다. (최종훈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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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증언판을 들고 시나이 산에서 내려온 모세는,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는 것을 보고 그 판들을 깨 버리고는, 주님께 돌아가 백성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아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고 누룩과 같다며 모든 것을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32,15-24.30-34

그 무렵 15 모세는 두 증언판을 손에 들고 돌아서서 산을 내려왔다.

그 판들은 양면에, 곧 앞뒤로 글이 쓰여 있었다.

16 그 판은 하느님께서 손수 만드신 것이며,

그 글씨는 하느님께서 손수 그 판에 새기신 것이었다.

17 여호수아가 백성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진영에서 전투 소리가 들립니다.” 하고 모세에게 말하였다.

18 그러자 모세가 말하였다.

“승리의 노랫소리도 아니고 패전의 노랫소리도 아니다.

내가 듣기에는 그냥 노랫소리일 뿐이다.”

19 모세는 진영에 가까이 와 사람들이 춤추는 모습과 수송아지를 보자 화가 나서,

손에 들었던 돌판들을 산 밑에 내던져 깨 버렸다.

20 그는 그들이 만든 수송아지를 가져다 불에 태우고,

가루가 될 때까지 빻아 물에 뿌리고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마시게 하였다.

21 모세가 아론에게 말하였다.

“이 백성이 형님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그들에게 이렇게 큰 죄악을 끌어들였습니까?”

22 아론이 대답하였다.

“나리, 화내지 마십시오. 이 백성이 악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아시지 않습니까?

23 그들이 나에게 ‘앞장서서 우리를 이끄실 신을 만들어 주십시오.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저 모세라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기에,

24 내가 그들에게 ‘금붙이를 가진 사람은 그것을 빼서 내시오.’ 하였더니,

그들이 그것을 나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것을 불에 던졌더니 이 수송아지가 나온 것입니다.”

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큰 죄를 지었다.

행여 너희의 죄를 갚을 수 있는지, 이제 내가 주님께 올라가 보겠다.”

31 모세가 주님께 돌아가서 아뢰었다.

“아, 이 백성이 큰 죄를 지었습니다. 자신들을 위하여 금으로 신을 만들었습니다.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지 않으려거든,

당신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제발 저를 지워 주십시오.”

33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나에게 죄지은 자만 내 책에서 지운다.

34 이제 너는 가서 내가 너에게 일러 준 곳으로 백성을 이끌어라.

보아라, 내 천사가 네 앞에 서서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내 징벌의 날에 나는 그들의 죄를 징벌하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31-35

그때에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31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

32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33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34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35 예언자를 통하여 “나는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리라.

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것을 드러내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많은 분들이 저에게 ‘성소’에 대해서 물어보십니다. 어떻게 신부가 되었는지, 어떤 계기로 사제 성소를 택하였는지 ……. 그럴 때 저는 늘 대답합니다. 그저 그 물에서 노는 것이 좋았다고 말입니다. 성당에서 노는 것, 그곳의 친구들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신학교에 들어갔고, 그곳에서도 여전히 어렵고 힘든 일이 있었지만 동료들과 함께 노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놀다 보니 어느새 개울물은 강물이 되고, 강물은 바다가 되어 있었습니다. 물살에 몸을 맡기고 놀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감당할 수 없는 바다에까지 와 있었습니다. 이것이 저의 성소 이야기입니다.
창대한 꿈을 꾸며 많은 것을 이루고자 어떤 일을 시작할 때도 있습니다. 큰 기대를 가지지 않고, 즐겁고 좋아하는 일이라서 시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많은 기대를 걸었던 일은 실망하기 일쑤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즐거운 일을 할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그 일을 하고 있음에 만족하고 즐거워합니다. 씨를 뿌리고 물을 주어 새싹을 틔워 내고 꽃을 피우는 그 일을 즐기면 됩니다. 밀가루 반죽을 만들고 누룩을 넣어 빵을 구워 내는 과정이 행복하면 됩니다. 많은 열매를 맺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맛있는 빵을 만들어 부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면 실망하거나 좌절할 수 있습니다. 똑같은 일을 하고 많은 수고와 노력을 기울이지만, 어떤 마음으로 다가가느냐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갑니다. 당신이 지금 서 있는 자리는 어디입니까? 그 자리에서 즐겁게 살다 보면 하느님께서 열매를 맺어 주실 것입니다.
바다에서는 마음 편히 놀지 못합니다. 해야 할 의무가 있고 책임져야 할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마냥 놀기에는 바다라는 곳이 너무도 두렵습니다. 그렇지만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더 멋진 곳으로 저를 이끌어 주실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여기에서 놀아 보렵니다. (최종훈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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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엘리사 예언자는 맏물로 만든 보리 빵 스무 개로 백 명이나 되는 사람을 먹인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라며,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시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다(복음).

제1독서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4,42-44

그 무렵 42 어떤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 왔다.

그는 맏물로 만든 보리 빵 스무 개와 햇곡식 이삭을 자루에 담아,

하느님의 사람에게 가져왔다.

엘리사는 “이 군중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 하고 일렀다.

43 그러나 그의 시종은

“이것을 어떻게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엘리사가 다시 말하였다. “이 군중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

주님께서 이들이 먹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44 그리하여 그것을 사람들에게 내놓으니,

과연 주님의 말씀대로 그들이 먹고도 남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4,1-6

형제 여러분, 1 주님 안에서 수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3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4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5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6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15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2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3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앉으셨다.

4 마침 유다인들의 축제인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

5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6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7 필립보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8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9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0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11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12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모았더니,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14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다.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살기 위해서 먹는가? 먹기 위해서 사는가?” 음식을 두고 이런 장난스러운 질문을 하는 것이 실례같지만, 굳이 답을 해야 한다면 이른바 ‘맛집 투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저는 “살기 위해 먹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 질문에는 저마다 성향에 따라 답이 달라지겠지요. 그러나 가톨릭 신자라면 적어도 다음의 질문에 대해서만큼은 정답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살기 위해서 먹습니까? 아니면 죽기 위해서 먹습니까?”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신앙 안에서는 ‘어떻게 먹느냐’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먹고 있습니까?
오늘 복음을 통하여 두 가지 모습의 빵을 떠올려 봅니다. 한 가지는, 그저 자신의 배를 채우고자 저 혼자 숨기고 먹는 빵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부족하고 초라하지만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많은 사람 앞에 내어놓은 아이의 빵입니다. 빵을 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지만, 그 빵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함께 살아가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 초라한 빵이 아무 소용없다는 포기와 절망은, 다만 살기 위해서 먹는 빵일 뿐입니다. 반면에 부족함을 느끼면서도 조심스레 내어놓은 아이의 빵은 작은 봉헌임에도 미안함과 감사한 마음이 깃든 빵입니다. 그 빵을 예수님께서는 모두를 살리는 빵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빵을 먹고 있습니까?
우리는 또 다른 빵을 먹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살기 위하여 먹는 빵이 아니고, 그것만 먹고 살아갈 수도 없는 빵입니다. 어찌 보면 그것은 죽기 위해서 먹는 빵입니다. 내어놓고 봉헌하고 희생하기 위해서 먹는 빵입니다. 그 빵은 인간의 생명을 버리고 하느님의 생명을 선택하게 이끌어 줍니다. 바로 예수님의 몸, 성체입니다. 그분께서 주신 성체를 받아 모시는 우리는 자신을 죽이고 함께 살아가는 삶을 택하였으면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신다는 것은 내가 살기 위하여 먹는 것조차도 또한 누군가를 살리고자 먹는 것임을 깨달았으면 합니다. 

(최종훈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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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모세가 백성에게 주님의 모든 말씀과 법규를 일러 주자, 그들은 모든 것을 실행하고 따르겠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린 사람과 같다고 하시며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드신다(복음).

제1독서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24,3-8

그 무렵 3 모세가 백성에게 와서 주님의 모든 말씀과 모든 법규를 일러 주었다.

그러자 온 백성이 한목소리로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실행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4 모세는 주님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였다.

그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산기슭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 따라 기념 기둥 열둘을 세웠다.

5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몇몇 젊은이들을 그리로 보내어,

번제물을 올리고 소를 잡아 주님께 친교 제물을 바치게 하였다.

6 모세는 그 피의 절반을 가져다 여러 대접에 담아 놓고,

나머지 절반은 제단에 뿌렸다.

7 그러고 나서 계약의 책을 들고 그것을 읽어 백성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실행하고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8 모세는 피를 가져다 백성에게 뿌리고 말하였다.

“이는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24-30

그때에 24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25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26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27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28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29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30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항상 옳은 결정을 하고 싶습니다. 그런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바로 알고 그분의 뜻을 실현할 수 있는 선택을 하고자 더 고민하고 자문하며 결정하려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 첫 마음이 그대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일이 진행되거나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깨닫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뜻이 아닌 내 뜻이 되어버린 것을 발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비유를 통하여 하늘 나라는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곳임을 알려 주십니다. 가라지는 불필요한 것입니다. 먹지도 못하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을 수 없게 방해할 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라지의 모습이 밀과 비슷하다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오만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종들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라고 한 질문은 자신의 능력을 맹신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기에 자신은 모든 것이 옳고 그분의 뜻을 실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어쩌면 하느님의 이름을 빌려 나의 뜻과 생각을 관철하려는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 안에는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고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자신만을 바라보는 어둠의 기운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자신의 행동을 점검하고 첫 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아가 성공이라는 결과만을 위한 타협을 지양해야 합니다. 언제나 의심하십시오, 언제나 들여다보십시오. 우리 안에 가라지가 함께 자라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가라지가 하느님의 뜻이 아님을 깨닫고 용기 있게 뽑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최종훈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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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십계명을 내려 주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새겨들으라고 하시며, 제자들에게 길,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에 뿌려진 씨의 의미를 설명해 주신다(복음).

제1독서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20,1-17

그 무렵 주님께서 1 이 모든 말씀을 하셨다.

2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

3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4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것이든 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5 너는 그것들에게 경배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주 너의 하느님인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조상들의 죄악을 삼 대 사 대 자손들에게까지 갚는다.

6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푼다.

7 주 너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불러서는 안 된다.

주님은 자기 이름을 부당하게 부르는 자를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는다.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9 엿새 동안 일하면서 네 할 일을 다 하여라.

10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의 하느님을 위한 안식일이다.

그날 너와 너의 아들과 딸, 너의 남종과 여종,

그리고 너의 집짐승과 네 동네에 사는 이방인은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11 이는 주님이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안식일에 강복하고 그날을 거룩하게 한 것이다.

12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러면 너는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주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13 살인해서는 안 된다. 14 간음해서는 안 된다. 15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16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17 이웃의 집을 탐내서는 안 된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 탐내서는 안 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8-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8 “너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새겨들어라.

19 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20 돌밭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21 그러나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는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22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23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신자들이 저에게 성경에 대하여 질문을 많이 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여 답하지만, 마지막은 언제나 “성경에는 정답이 없다.”라고 마무리하게 됩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네 삶을 바탕으로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삶이 다르고, 그 삶 속에서 해석되고 이해되기에, 매번 다르고 새롭게 드러나야 합니다. 똑같은 말씀을 읽는다고 하더라도 어제의 이해와 오늘의 느낌이 다릅니다. 그러나 다른 것일 뿐, 틀린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사람의 손으로 쓰였지만 ‘성령께서 지금 우리에게’ 건네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씨앗은 가능성입니다. 다만 씨앗을 먹는 것만으로는 배부름과 행복을 느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예수님의 가르침이 우리에게 하늘 나라를 실현시켜 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그 말씀과 가르침에 따라 살아갈 때, 씨앗은 싹을 틔우고 자라 먹음직스러운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장애물들을 하나씩 걷어 내야 합니다. 일상의 무게로 지치고 힘들다는 이유로 말씀을 멀리하는 나태함과 게으름을 걷어 내야 합니다. 세상의 가치와 논리를 좇으며 그러한 것들에 익숙해져 깊이 생각하지 않고 습관처럼 판단하는 우리의 익숙함을 버려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둘러보지 않고 자신의 욕심과 꿈만을 뒤쫓아 살아가는 이기적인 마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늘 나라를 실현하려면 말씀의 씨앗을 날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삶의 자리에서 새롭게 해석해야 합니다. 그 자리가 언제나 좋은 땅일 수는 없습니다. 많은 장애물과 허물을 제거했다 하더라도, 비옥해진 땅은 다시 딱딱하게 굳어 버리고 돌과 가시덤불이 무성한 불모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씨앗을 싹틔우고자 날마다 삶을 가꾸어 나가며 좋은 열매를 함께 나누는 천국을 맛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최종훈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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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아가에서는 밤새도록 성읍과 광장을 돌아다니다가 사랑하는 이를 찾은 신부의 기쁨을 노래한다(제1독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시어 당신의 아버지이시며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고 하시며, 가서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 아가의 말씀입니다.

3,1-4ㄴ

신부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잠자리에서 밤새도록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아다녔네.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였다네.

2 ‘나 일어나 성읍을 돌아다니리라.

거리와 광장마다 돌아다니며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으리라.’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였다네.

3 성읍을 돌아다니는 야경꾼들이 나를 보았네.

‘내가 사랑하는 이를 보셨나요?’

4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았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2.11-18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12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13 그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묻자,

마리아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4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15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17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18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그리운 노랫소리에 까맣게 잊고 있던 한 사람이 떠오릅니다. 이 노래를 함께 들으며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니, 그와 함께했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갑니다. 그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아쉬움과 후회에서 한동안 벗어나질 못합니다. 지나치듯 들려온 노래 한 곡에 사랑을 주고받았던 추억이 밀려듭니다. 우리의 기억은 그렇습니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사소한 어떤 계기에 수많은 기억이 소환되고는 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분의 무덤을 찾습니다. 그분 곁에 가까이 있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보이지 않으시고, 낯선 이들이 서 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마리아는 예수님께 받은 사랑의 기억을 잊지 않았습니다. 다른 상황 속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비록 처음에는 알아뵙지 못했지만, 그 사랑의 추억 때문에 자신을 부르시는 목소리에 곧바로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의심하지 않습니다. 누구냐고 물어보지도 않습니다. 마리아는 그렇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우리를 불러 주시고 우리와 함께 길을 걸어가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분의 뜻을 삶 속에서 발견하며 의심 없이 그분의 음성에 응답하려면, 예수님과 나누었던 추억을 간직해야 합니다. 그 추억들을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 놓아야 합니다.  지나온 삶의 시간 속에서 예수님과 함께한 기억을 잘 간직해 놓아야만 오늘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단번에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분과의 추억을, 그분에 대한 기억을 잘 간직하십시오. 

(최종훈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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