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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11.11 [백]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11/11)

말씀의 초대

지혜서의 저자는, 지혜는 세상 끝까지 힘차게 퍼져 가며, 만물을 훌륭히 통솔한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고 하시며,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7,22ㄴ―8,1

22 지혜 안에 있는 정신은 명석하고 거룩하며

유일하고 다양하고 섬세하며 민첩하고 명료하고 청절하며

분명하고 손상될 수 없으며 선을 사랑하고 예리하며

23 자유롭고 자비롭고 인자하며 항구하고 확고하고 평온하며

전능하고 모든 것을 살핀다.

또 명석하고 깨끗하며 아주 섬세한 정신들을 모두 통찰한다.

24 지혜는 어떠한 움직임보다 재빠르고

그 순수함으로 모든 것을 통달하고 통찰한다.

25 지혜는 하느님 권능의 숨결이고 전능하신 분의 영광의 순전한 발산이어서

어떠한 오점도 그 안으로 기어들지 못한다.

26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며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이다.

27 지혜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 안에 머무르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28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함께 사는 사람만 사랑하신다.

29 지혜는 해보다 아름답고 어떠한 별자리보다 빼어나며

빛과 견주어 보아도 그보다 더 밝음을 알 수 있다.

30 밤은 빛을 밀어내지만 악은 지혜를 이겨 내지 못한다.

8,1 지혜는 세상 끝에서 끝까지 힘차게 퍼져 가며 만물을 훌륭히 통솔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20-25

그때에 20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2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을 하루라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23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저기에 계시다.’,

또는 ‘보라, 여기에 계시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

24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25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불교에서 선승들이 주고받는 문답을 ‘선문답’이라고 합니다. 진리를 깨친 스승에게 제자가 질문을 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그 대화는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이라기보다는 질문에 대한 또 다른 질문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아닌, 두 사람 각자의 혼잣말 같기도 합니다. 질문을 통하여 진리를 깨치지 못한 이를 더욱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선문답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주제는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시기를 여쭈어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시기가 아니라 그 “모습”에 대하여 답을 하십니다. “여기”, “저기”, “우리 가운데”라고 공간을 이야기하십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사람의 아들”의 날에 대하여 설명하시며 그날이 오기 전에 먼저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우리 안에서 또 다른 질문을 만들어 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이라면 어떻게 볼 수 있는가?’ ‘볼 수 없는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있다는데, 과연 어디에 있는가?’
혼자서는 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들을 되뇌어 봅니다. 그리고 고민해 봅니다. “우리 가운데”, “우리”는 누구를 말하고 있을까요? 나는 어떤 사람들을 ‘우리’라고 말하고 있나요? 너무 쉽게 ‘우리’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 하느님, 우리 성당, 우리 공동체, 우리 가족, 우리 부모님, 우리 친구 ……. ‘나’를 포함한 ‘우리’이기는 하지만, ‘나’라는 말을 대신하여 ‘우리’라는 말을 쓰고 있지는 않은가요? 어째서 일까요? 어쩌면 나와 너, 그리고 그들이 ‘우리’가 되는 순간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는 때가 아닐까요! 나만을 생각하던 그 삶의 공간이 ‘우리’를 먼저 생각하여 행동하는 공간으로 바뀔 때 그 자리가 하느님의 나라가 아닐까요! 물음표가 느낌표가 되는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최종훈 토마스 신부)

 

Posted by 에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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