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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00:00:30 [자] 대림 제1주간 목요일 (12/2)
  2. 2021.12.01 [자] 대림 제1주간 수요일 (12/1)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영원한 반석이신 주님을 길이길이 신뢰하라는 노래가 유다 땅에서 불릴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간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26,1-6
1 그날 유다 땅에서는 이러한 노래가 불리리라.
“우리에게는 견고한 성읍이 있네.
그분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려고 성벽과 보루를 세우셨네.
2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가게 너희는 성문들을 열어라.
3 한결같은 심성을 지닌 그들에게 당신께서 평화를, 평화를 베푸시니
그들이 당신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4 너희는 길이길이 주님을 신뢰하여라.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
5 그분께서는 높은 곳의 주민들을 낮추시고 높은 도시를 헐어 버리셨으며
그것을 땅바닥에다 헐어 버리시어 먼지 위로 내던지셨다.
6 발이 그것을 짓밟는다.
빈곤한 이들의 발이, 힘없는 이들의 발길이 그것을 짓밟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21.24-2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1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24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25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26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27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이 말씀은 산상 설교의 결론에 해당합니다. 산상 설교에서 참행복을 선포하신 뒤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자애로우신 사랑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분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행동입니다. ‘주님’이라는 호칭은 하느님의 주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분이 하느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부르는 것만으로는, 미사 때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고 부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주님’이라는 고백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동으로 옮길 때 완성됩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뜻’은 무엇일까요? 아버지의 뜻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는 것’(1티모 2,4 참조)입니다. 구원은 하늘 나라에서 이루게 될 하느님과의 충만한 친교를 이룸으로써 아버지를 닮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고, 그 사랑을 나누시고자 인간을 만드시어 그 사랑을 인간에게 내어 주십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다시 아버지께 내어 드림으로써 하느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본모습을 충만히 실현하게 합니다. 우리도 그분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고자 노력하며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 합니다. 하루의 수많은 만남과 작은 일들도 사랑으로 대한다면 세상에 하찮은 것이 없습니다. 그 작은 만남과 작은 일들 모두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 질문을 늘 마음에 새기며 하느님께 받은 사랑만큼 모든 일과 만남에 사랑과 정성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Posted by 에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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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만군의 주님께서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시리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많은 병자를 고쳐 주시고 광야에서 군중을 배불리 먹이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잔치를 베푸시고 그들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내신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25,6-10ㄱ
그날 6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
7 그분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겨레들에게 씌워진 너울과 모든 민족들에게 덮인 덮개를 없애시리라.
8 그분께서는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시리라.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
정녕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9 그날에 이렇게들 말하리라. “보라, 이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었고 이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걸었던 주님이시다.
이분의 구원으로 우리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10 주님의 손이 이 산 위에 머무르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를 고쳐 주시고 빵을 많게 하셨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29-37
그때에 29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로 가셨다.
그리고 산에 오르시어 거기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30 그러자 많은 군중이
다리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과 다른 불구자들과 말못하는 이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다가왔다.
그들을 그분 발치에 데려다 놓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31 그리하여 말못하는 이들이 말을 하고 불구자들이 온전해지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눈먼 이들이 보게 되자,
군중이 이를 보고 놀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32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33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광야에서 이렇게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일 만한 빵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4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시자,
그들이 “일곱 개가 있고 물고기도 조금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36 그리고 빵 일곱 개와 물고기들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37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찼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마태오 복음사가는 빵의 기적 이야기를 두 번이나 연달아 들려줍니다. 왜 비슷한 이야기를 두 번이나 들려줄까요?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14,13-21) 이야기에서 빵 다섯 개와 오천 명 그리고 열두 광주리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 등장하는 빵 일곱 개와 일곱 바구니에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가나안 땅 이방의 일곱 민족을(신명 7,1 참조) 의미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이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차, 이 기적이 완전하였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사천 명은 사방에서 몰려온 많은 이(천 명)를 상징하면서, 예수님께서 이방인을 주 대상으로 기적을 베푸셨음을 보여 줍니다. 두 번의 빵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온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심을 나타냅니다.
이 기적들은 ‘사람들을 가엾이 여기시는 예수님의 마음’에서 비롯하였습니다. 그 ‘가엾이 여기는 마음’에 쓰인 낱말의 어원은 ‘내장, 창자’를 뜻합니다.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내장이 끊어지고 창자가 뒤틀릴 정도의 고통으로 느끼는 공감의 마음이자 사랑의 마음과(로마 8,35.37-39 참조) 같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음식을 기꺼이 내어놓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내어놓은 빵 일곱 개와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들고 감사 기도를 올리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이를 군중에게 나누어 줍니다.
현대 문화를 특징짓는 말 가운데 ‘천민자본주의’와 ‘소비주의’가 있습니다. 천민자본주의는 돈만을 중시하여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방면에서 사회를 퇴보시킬 뿐 아니라, 사람마저도 돈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게 합니다. 또한 자신의 욕망을 소비함으로써 채우라고, 그렇게 해서 자신을 확인하라고 합니다. 이러한 시대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드높여 나눔의 문화를 만들어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Posted by 에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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