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다윗 임금이 압살롬의 반란으로 쫓기게 되자, 그는 주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기로 결심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에게 명령하신다.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복음).

 

제1독서

<압살롬에게서 달아납시다.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니 저주하게 내버려 두시오.>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15,13-14.30; 16,5-13ㄱ
그 무렵 13 전령 하나가 다윗에게 와서 말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쏠렸습니다.”
14 다윗은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신하에게 일렀다.
“어서들 달아납시다.
잘못하다가는 우리가 압살롬에게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오.
서둘러 떠나시오. 그러지 않으면 그가 서둘러 우리를 따라잡아
우리에게 재앙을 내리고, 칼날로 이 도성을 칠 것이오.”
30 다윗은 올리브 고개를 오르며 울었다. 그는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걸었다.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제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계속 올라갔다.
16,5 다윗 임금이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였다.
사울 집안의 친척 가운데 한 사람이 그곳에서 나왔는데,
그의 이름은 게라의 아들 시므이였다. 그는 나오면서 저주를 퍼부었다.
6 온 백성과 모든 용사가 임금 좌우에 있는데도,
그는 다윗과 다윗 임금의 모든 신하에게 돌을 던졌다.
7 시므이는 이렇게 말하며 저주하였다.
“꺼져라, 꺼져! 이 살인자야, 이 무뢰한아!
8 사울의 왕위를 차지한 너에게
주님께서 그 집안의 모든 피에 대한 책임을 돌리시고,
그 왕위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겨주셨다.
너는 살인자다. 이제 재앙이 너에게 닥쳤구나.”
9 그때 츠루야의 아들 아비사이가 임금에게 말하였다.
“이 죽은 개가 어찌 감히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을 저주합니까?
가서 그의 머리를 베어 버리게 해 주십시오.”
10 그러나 임금은 “츠루야의 아들들이여, 그대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소?
주님께서 다윗을 저주하라고 하시어 저자가 저주하는 것이라면,
어느 누가 ‘어찌하여 네가 그런 짓을 하느냐?’ 하고 말할 수 있겠소?”
11 그러면서 다윗이 아비사이와 모든 신하에게 일렀다.
“내 배 속에서 나온 자식도 내 목숨을 노리는데,
하물며 이 벤야민 사람이야 오죽하겠소?
주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저주하게 내버려 두시오.
12 행여 주님께서 나의 불행을 보시고,
오늘 내리시는 저주를 선으로 갚아 주실지 누가 알겠소?”
13 다윗과 그 부하들은 길을 걸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20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1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2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3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4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5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6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7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11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12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13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14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15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16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18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20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필리 4,4-9)와 복음(마태 18,1-5)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비유로 가르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거센 돌풍이 이는 호수를 건너 “게라사인들의 지방”에 도착하십니다. 이곳은 이방인들이 거주하며, 곳곳에 무덤이 있고, 유다인들에게는 부정한 돼지 떼가 방목되는 지역입니다(이사 65,4 참조). 
‘군대’라고 불리는 더러운 영은 아무도 휘어잡을 수 없을 만큼 강하고 위험한 존재입니다. 그러한 더러운 영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앞에서는 엎드려 절하며 복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 간곡히 청하여 돼지들에게 들어가서라도 목숨을 부지하려던 더러운 영 ‘군대’는, 돼지들이 호수로 달려가 빠져 죽음으로써 결국 파멸하고 맙니다. 그렇게 이 부정한 지역에서 마귀의 세력이 사라지고, 이제 하느님의 다스림이 펼쳐집니다.
돼지를 치던 이들에게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몰려와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자신들의 고장을 떠나 달라고 청합니다. 반면에 치유받은 이는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음’은 열두 제자의 특징이고 사명입니다(마르 3,14 참조).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주님께서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가족에게 알리라는 사명을 주십니다. 치유받은 이는 물러가서,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자기의 가족들뿐만 아니라, 요르단강의 동쪽에 자리 잡은 열 개의 도시, 데카폴리스 지역에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의 치유가 복음 선포로 이어집니다. 마르코 복음이 전하는 이민족을 향한 복음 선포의 시작으로 볼 수 있는 이 사건은, 하느님 나라의 선포에는 어떠한 경계나 제한이 없음을 드러냅니다. 이는 우리의 복음 선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말씀의 초대 

예레미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자신을 민족들의 예언자로 세우시어 온 땅에 맞서게 하셨다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되는데,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이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1,4-5.17-19
요시야 시대에 4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5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
17 그러므로 이제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랬다가는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떨게 할 것이다.
18 오늘 내가 너를 요새 성읍으로, 쇠기둥과 청동 벽으로 만들어 온 땅에 맞서게 하고,
유다의 임금들과 대신들과 사제들과 나라 백성에게 맞서게 하겠다.
19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은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12,31─13,13
형제 여러분, 31 여러분은 더 큰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내가 이제 여러분에게 더욱 뛰어난 길을 보여 주겠습니다.
13,1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3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4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5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6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8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예언도 없어지고 신령한 언어도 그치고 지식도 없어집니다.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10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은 없어집니다.
11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3,4-13
형제 여러분, 4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5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6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8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예언도 없어지고 신령한 언어도 그치고 지식도 없어집니다.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10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은 없어집니다.
11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엘리야와 엘리사처럼 유다인들에게만 파견되신 것이 아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4,21-30
그때에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21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2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24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떤 계획을 세우거나 무엇을 기다릴 때, 자주 함께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내일’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많은 사람이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그 ‘내일’이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의 인격 안에서 ‘오늘’이 됩니다. 가난한 이들과 잡혀간 이들, 눈먼 이들과 억압받는 이들에게 복음이 선포되고, 주님의 은혜로운 해가 시작되었습니다(루카 4,18-19 참조). 오랫동안 기다리고 희망한 메시아께서 우리 가운데에 계십니다.
그러나 모든 이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당신을 의심하고 거부하는 나자렛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구약 성경의 예를 드십니다. 사렙타의 과부도 시리아 사람 나아만도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만 은총을 베푸셨음을 상기시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화가 난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고, 벼랑으로 끌고 가 떨어뜨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당당하게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십니다. 오늘 제1독서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벼랑에서 떨어뜨리려는 나자렛 사람들의 행동은 그분의 십자가 죽음을,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그분의 부활을 예고하는 듯합니다. 마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승리임을 보여 주려는 복음사가의 의도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와 함께하시고, ‘오늘’ 우리에게 은총과 기쁨을 주십니다. 이천 년 전 선포된 은총의 시간, 기쁨의 시간이 오늘도 계속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성실하게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바로 ‘오늘’이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선물입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 나탄을 다윗에게 보내시어,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를 데려다가 자기 아내로 삼은 일을 두고 재앙을 예고하신다. 그러자 다윗은 자신이 주님께 죄를 지었다고 고백한다(제1독서). 호수를 건너던 제자들은 거센 돌풍을 만나자 주무시고 계신 스승을 깨운다. 예수님께서는 바람과 호수를 꾸짖어 고요하게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12,1-7ㄷ.10-17
그 무렵 1 주님께서 나탄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나탄이 다윗에게 나아가 말하였다.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부자이고 다른 사람은 가난했습니다.
2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매우 많았으나,
3 가난한 이에게는 자기가 산 작은 암양 한 마리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가난한 이는 이 암양을 길렀는데,
암양은 그의 집에서 자식들과 함께 자라면서,
그의 음식을 나누어 먹고 그의 잔을 나누어 마시며
그의 품 안에서 자곤 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이 암양이 딸과 같았습니다.
4 그런데 부자에게 길손이 찾아왔습니다.
부자는 자기를 찾아온 나그네를 대접하려고
자기 양과 소 가운데에서 하나를 잡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의 암양을 잡아 자신을 찾아온 사람을 대접하였습니다.”
5 다윗은 그 부자에 대하여 몹시 화를 내며 나탄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그런 짓을 한 그자는 죽어 마땅하다.
6 그는 그런 짓을 하고 동정심도 없었으니, 그 암양을 네 곱절로 갚아야 한다.”
7 그러자 나탄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 ‘이제 네 집안에서는 칼부림이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를 무시하고,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데려다가 네 아내로 삼았기 때문이다.’
11 주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너를 거슬러 너의 집안에서 재앙이 일어나게 하겠다.
네가 지켜보는 가운데 내가 너의 아내들을 데려다 이웃에게 넘겨주리니,
저 태양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가 너의 아내들과 잠자리를 같이할 것이다.
12 너는 그 짓을 은밀하게 하였지만,
나는 이 일을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 앞에서,
그리고 태양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할 것이다.’”
13 그때 다윗이 나탄에게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하고 고백하였다.
그러자 나탄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의 죄를 용서하셨으니
임금님께서 돌아가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14 다만 임금님께서 이 일로 주님을 몹시 업신여기셨으니,
임금님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반드시 죽고 말 것입니다.”
15 그러고 나서 나탄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주님께서 우리야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아 준 아이를 치시니,
아이가 큰 병이 들었다.
16 다윗은 그 어린아이를 위하여 하느님께 호소하였다.
다윗은 단식하며 방에 와서도 바닥에 누워 밤을 지냈다.
17 그의 궁 원로들이 그의 곁에 서서 그를 바닥에서 일으키려 하였으나,
그는 마다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4,35-41
35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36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
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37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38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4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41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하느님 나라에 관한 네 개의 비유로 채워진 예수님의 하루가 저물어 갑니다(마르 4,1-34 참조). 그날 저녁,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호수 저쪽으로 가실 때 “거센 돌풍이 일어” 배 안에 물이 가득 찹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편안하게 주무시고 계십니다.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제자들의 두려움은 그들이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아직 깨닫지 못하였음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 마치 더러운 영을 꾸짖으시듯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시자, 바람이 멎고 호수는 고요해집니다. 풍랑에 대한 제자들의 두려움은 놀라운 권능을 지니신 예수님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뀝니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이는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제자들에게 부족하였던 것은 ‘믿음’입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 믿음이 없느냐?” 마르코 복음에서 믿음은 하느님의 권능을 지니신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깨닫고, 그분을 받아들이는 행위입니다. 우리 믿음의 항해는 언제든지 거센 바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탄 배에는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십니다. 바람과 호수, 모든 것이 그분 손 안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우리의 믿음은 어떠합니까? 이 질문에 올바른 답을 하려면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마르 3,14 참조), 그분을 따라야 합니다. 
“이 곤경 속에서 그들이 주님께 부르짖자, 난관에서 그들을 빼내 주셨다. 광풍을 순풍으로 가라앉히시니, 파도가 잔잔해졌다. 바다가 잠잠해져 그들은 기뻐하고, 그분께서는 그들을 원하는 항구로 인도해 주셨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자애를, 사람들을 위한 그 기적들을”(시편 107[106],28-31).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말씀의 초대 

다윗은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보내어 죽게 만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는 땅에 뿌려진 씨가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도 자라고 열매를 맺어 수확할 수 있는 것에 비길 수 있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너는 나를 무시하고, 우리야의 아내를 데려다가 네 아내로 삼았다 (2사무 12,10 참조).>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11,1-4ㄱㄷ.5-10ㄱ.13-17
1 해가 바뀌어 임금들이 출전하는 때가 되자,
다윗은 요압과 자기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을 내보냈다.
그들은 암몬 자손들을 무찌르고 라빠를 포위하였다.
그때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
2 저녁때에 다윗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왕궁의 옥상을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옥상에서 내려다보게 되었다.
그 여인은 매우 아름다웠다.
3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는데,
어떤 이가 “그 여자는 엘리암의 딸 밧 세바로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의 아내가 아닙니까?” 하였다.
4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을 데려왔다. 그 뒤 여인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5 그런데 그 여인이 임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어, “제가 임신하였습니다.” 하고 알렸다.
6 다윗은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어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를 나에게 보내시오.” 하였다.
그래서 요압은 우리야를 다윗에게 보냈다. 7 우리야가 다윗에게 오자,
그는 요압의 안부를 묻고 이어 군사들의 안부와 전선의 상황도 물었다.
8 그러고 나서 다윗은 우리야에게,
“집으로 내려가 그대의 발을 씻어라.” 하고 분부하였다.
우리야가 왕궁에서 나오는데 임금의 선물이 그를 뒤따랐다.
9 그러나 우리야는 제 주군의 모든 부하들과 어울려 왕궁 문간에서 자고,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10 사람들이 다윗에게 “우리야가 자기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하고 보고하자,
13 다윗이 그를 다시 불렀다.
우리야는 다윗 앞에서 먹고 마셨는데, 다윗이 그를 취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저녁이 되자 우리야는 밖으로 나가
제 주군의 부하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고, 자기 집으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14 다음 날 아침, 다윗은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야의 손에 들려 보냈다.
15 다윗은 편지에 이렇게 썼다.
“우리야를 전투가 가장 심한 곳 정면에 배치했다가,
그만 남겨 두고 후퇴하여 그가 칼에 맞아 죽게 하여라.”
16 그리하여 요압은 성읍을 포위하고 있다가,
자기가 보기에 강력한 적군이 있는 곳으로 우리야를 보냈다.
17 그러자 그 성읍 사람들이 나와 요압과 싸웠다.
군사들 가운데 다윗의 부하 몇 명이 쓰러지고,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도 죽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씨를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는 자라는데, 그 사람은 모른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4,26-34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6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27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28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29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31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32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34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지혜 7,7-10.15-16)와 복음(마태 23,8-12)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전합니다.
씨는 사람이 뿌리지만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싹이 트고 자라서 저절로 열매를 맺습니다. 이렇게 하느님 나라는 온전히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고 완성됩니다. 그렇다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는 하느님 나라의 시작과 완성이 전적으로 하느님께 달려 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겨자씨의 비유’는 하느님 나라가 작고 하찮은 것에서 시작하지만, 놀랍고 풍요로운 결과로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인다는 말씀은 온 백성이 하느님 나라에서 평화롭게 지내는 모습을 표현합니다.
씨앗을 뿌리고 수확해 본 사람은 작은 씨앗 안에 깃든 가능성과 생명의 신비를 잘 압니다. 우리의 믿음이 지금은 부족해 보일지라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커다란 나무로 자랄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작은 씨앗인 우리를 싹트게 하시고, 가지를 뻗게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시는 그분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뿌리신 소중한 씨앗입니다. 흔들리는 믿음을 가진 나약한 존재이지만, 하느님 눈에는 큰 나무로 성장할 가능성을 지닌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 소중합니다.
“당신께서 원하지 않으셨다면 무엇이 존속할 수 있었으며 …… 무엇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겠습니까? ……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기에 당신께서는 모두 소중히 여기십니다”(지혜 11,25-26).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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