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베드로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주셨다며 즐거워하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지만, 그분을 사랑하고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1,3-9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주셨고,

 

4 또한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시들지 않는 상속 재산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 상속 재산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5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나타날 준비가 되어 있는 구원을 얻도록,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힘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6 그러니 즐거워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

 

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8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9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가진 것을 팔고 나를 따라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7-27

 

그때에 17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19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20 그가 예수님께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22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23 예수님께서 주위를 둘러보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4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에 놀랐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5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26 그러자 제자들이 더욱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오늘 복음에서 어떤 사람이 달려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던진 질문입니다. 그가 예수님께 달려왔다는 것은 그만큼 이 문제가 그에게 절박하였음을 의미합니다. 그는 영원한 생명, 곧 구원을 얻는 일을 자기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삼았고, 이를 위하여 일평생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율법에 기록된 계명들을 충실히 지켜 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시면서 한 가지 부족한 점을 말씀하십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런데 그는 이 말씀을 듣고서는 지금껏 품고 살아온 간절한 희망을 단념이라도 한 듯, 울상이 되어 떠나버립니다. 그에게 재물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오늘 복음은 말합니다.

신앙인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만큼 중요한 문제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희망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욕심이 우리 곁에 늘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현재 수중에 놓인 것, 자기 소유라 여겨지는 것을 하나도 잃지 않고 싶어하는 욕심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욕심은 신앙인의 눈을 어둡게 만듭니다. 재물이든 명예든 권력이든, 그 어떤 것도 구원으로 향하는 좁은 문으로는 우리가 짊어지고 갈 수 없는 것들입니다. 모두 움켜쥐려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마치 오늘 복음에서 그토록 바라던 구원을 결국 재산 때문에 포기해 버린 사람처럼 말입니다. 오랜 기간 예수님을 따르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가 손에 쥐고 쉽게 놓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오늘 하루 진지하게 성찰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말씀의 초대 

 

집회서의 저자는, 사람은 말로 평가되기에 말을 듣기 전에는 사람을 칭찬하지 말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나무는 열매를 보면 안다고 하시며, 사람은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말을 듣기 전에는 사람을 칭찬하지 마라.>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27,4-7

 

4 체로 치면 찌꺼기가 남듯이 사람의 허물은 그의 말에서 드러난다.

 

5 옹기장이의 그릇이 불가마에서 단련되듯이

 

사람은 대화에서 수련된다.

 

6 나무의 열매가 재배 과정을 드러내듯이

 

사람의 말은 마음속 생각을 드러낸다.

 

7 말을 듣기 전에는 사람을 칭찬하지 마라. 사람은 말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15,54-58

 

형제 여러분,

 

54 이 썩는 몸이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이 죽지 않는 것을 입으면,

 

그때에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

 

55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

 

56 죽음의 독침은 죄이며 죄의 힘은 율법입니다.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58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주님 안에서 여러분의 노고가 헛되지 않음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39-45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39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40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41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43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44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도 않을 잔부스러기 같은 ‘티’와 일반 성인 크기의 배에 달하는 ‘들보’가 함께 비교되는 해학의 말씀 속에서, 우리네 인간의 타고난 기질이 엿보입니다. 그것은 알게 모르게 우리가 남을 비판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타인의 잘못을 지적함으로써 얻는 자기만족과 뿌듯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상대보다 우위에 서서 그의 단점을 고쳐 주겠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하곤 합니다.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와 비슷한 말들을 얼마나 자주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 복음은 그 비판적인 시선을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돌리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남을 지적할 때 들이대는 엄격한 잣대로 먼저 자기 자신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학교에 상주하고 있는 저에게 오늘 복음 말씀은 큰 묵상 거리로 다가옵니다. 신학생들을 지도하며 ‘진실해야 한다’, ‘성실해야 한다’, ‘겸손해야 한다’, ‘형제적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등 다양한 요구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생들의 잘못이나 단점이 보일 때면 어김없이 지적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런 기준이나 잣대가 나에게도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부끄럽게도 저 자신에게는 무척이나 관대한 사람임을 깨닫게 됩니다. 

참으로 누군가의 변화를 바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에게 ‘본’(本)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묵상해 봅니다. 상대방의 눈 속에 박힌 티를 빼내 주겠다고 신나게 소매를 걷어붙이기보다, 자기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를 빼내려는 노력을 상대방에게 보여 주는 것이 훨씬 감동적입니다. 회개는 그렇게 쌍방에서 함께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말씀의 초대 

 

야고보는 의인의 간절한 기도는 큰 힘을 낸다며,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 남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고 하시며 어린이들을 축복해 주신다(복음).

 

제1독서<의인의 간절한 기도는 큰 힘을 냅니다.>

 

▥ 야고보서의 말씀입니다.5,13-20

 

사랑하는 여러분,

 

13 여러분 가운데에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양 노래를 부르십시오.

 

14 여러분 가운데에 앓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을 부르십시오.

 

원로들은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십시오.

 

15 그러면 믿음의 기도가 그 아픈 사람을 구원하고,

 

주님께서는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죄를 지었으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 남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병이 낫게 될 것입니다.

 

의인의 간절한 기도는 큰 힘을 냅니다.

 

17 엘리야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지만,

 

비가 내리지 않게 해 달라고 열심히 기도하자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18 그리고 다시 기도하자, 하늘이 비를 내리고 땅이 소출을 냈습니다.

 

19 나의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진리를 벗어나 헤맬 때

 

누가 그 사람을 돌이켜 놓았다면, 20 이 사실을 알아 두십시오.

 

죄인을 그릇된 길에서 돌이켜 놓는 사람은

 

그 죄인의 영혼을 죽음에서 구원하고 또 많은 죄를 덮어 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3-16

 

그때에 13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을 쓰다듬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14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언짢아하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16 그러고 나서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여러분은 ‘나’ 아닌 ‘남’을 위해서도 자주 기도를 바치십니까? 주변에 “당신을 위하여 기도하겠습니다!”라고 스치듯 인사하기는 쉬워도, 나와 별 인연이 없는 누군가를 특별히 기억하고 기도한다는 것이 생각만큼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나를 위하여 기도할 시간도 부족한데 남까지 신경 쓸 여유는 더더욱 없다.’라며 속으로 단념해 버리곤 하지요.

오늘 제1독서는 기도에 관한 여러 권고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특별히 ‘남’을 위한 기도가 큰 힘을 발휘한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옵니다. 야고보 서간의 저자는 교회 원로들이 병자를 찾아가 기도해 주면 그 믿음의 기도가 그를 구원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범위를 확대해서 이제 신앙인 모두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 남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병이 낫게 될 것입니다. 의인의 간절한 기도는 큰 힘을 냅니다.”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할 때 발휘되는 효력이 이토록 큰 것이라면, 그런 놀라운 힘을 그냥 묵혀 두기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변에 기도가 필요한 이웃들을 하나둘 떠올려 보고, 시간을 내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해 봅시다.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섣부르게 예단하지 말고 정성을 다하여 기도합시다. 주님께서는 ‘남’을 위하여 바치는 우리의 정성을 꼭 기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분명 누군가에게 실현되는 구원의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 구원이 어떤 이에게는 육체 또는 마음이 겪는 고통에서의 해방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서 하느님을 향하게 하는 회개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이는 우리의 작은 기도가 주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의 놀라운 도구로 쓰인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말씀의 초대 

 

야고보는, 심판자가 문 앞에 서 계시니 심판받을 행동을 하지 말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되는지 묻는 바리사이들에게,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보십시오, 심판자께서 문 앞에 서 계십니다.>

 

▥ 야고보서의 말씀입니다.5,9-12

 

9 형제 여러분,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심판받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심판자께서 문 앞에 서 계십니다.

 

10 형제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말한 예언자들을

 

고난과 끈기의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11 사실 우리는 끝까지 견디어 낸 이들을 행복하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욥의 인내에 관하여 들었고,

 

주님께서 마련하신 결말을 알고 있습니다.

 

과연 주님은 동정심이 크시고 너그러우신 분이십니다.

 

12 나의 형제 여러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마십시오.

 

하늘을 두고도, 땅을 두고도, 그 밖의 무엇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십시오.

 

그래야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1 유다 지방과 요르단 건너편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늘 하시던 대로 다시 그들을 가르치셨다.

 

2 그런데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모세는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 하고 되물으시니,

 

4 그들이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5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

 

6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7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8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9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10 집에 들어갔을 때에 제자들이 그 일에 관하여 다시 묻자,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면,

 

그 아내를 두고 간음하는 것이다.

 

12 또한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하여도 간음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이혼을 금하는 우리 교회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주요 근거가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혼인이 가지는 참된 의미와 신비를 묵상하게 하는 예수님의 소중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완고함’ 때문에 모세가 이혼을 용인해 준 것이지, 본디 하느님 뜻은 그렇지 않다고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창세기의 말씀(1,27; 2,24)을 직접 인용하시면서 태초부터 계획된 혼인의 신비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이처럼 남녀가 혼인을 통하여 이루는 결합은 하느님께서 창조 때 남자와 여자의 인간성 안에 부여해 놓으신 심오한 계획이 비로소 온전히 실현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삼위이신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완전한 일치를 이루고 계시듯, 혼인으로 맺어진 부부 또한 서로의 사랑을 통하여 온전한 일치를 이루게 됩니다. 게다가 부부의 사랑은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가 나누는 사랑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표징이기도 합니다. 교회를 위하여 온전히 자기 자신을 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은, 부부가 서로에게 내주어야 하는 사랑의 본보기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부부 생활이 서로에게 상처받거나 이해받지 못할 때도 많고, 실망도 많이 하기에 순탄한 여정이 아닌 것만은 분명한 듯합니다. 예수님처럼 그렇게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주는 사랑이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렇지만 부부가 함께 걸어가는 여정에 늘 하느님의 축복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이기적인 ‘나’를 지우고 ‘우리’로 하나가 되어 가는 시간 속에, 부부의 사랑은 더욱 단단해지고 그 사랑은 서로를 신앙인으로 더욱 성장하게 하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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