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며, 하느님은 한 분이시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3,21-30ㄱ
형제 여러분, 21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26 이 죄들은 하느님께서 관용을 베푸실 때에 저질러졌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어,
당신께서 의로우신 분이며
또 예수님을 믿는 이를 의롭게 하시는 분임을 드러내십니다.
27 그러니 자랑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무슨 법으로 그리되었습니까? 행위의 법입니까?
아닙니다. 믿음의 법입니다.
28 사실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29 하느님은 유다인들만의 하느님이십니까?
다른 민족들의 하느님은 아니십니까? 아닙니다.
다른 민족들의 하느님이시기도 합니다.
30 정녕 하느님은 한 분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벨의 피부터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예언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7-54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47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48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49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도,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50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51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52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53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오시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54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또는, 기념일 독서(필리 3,17─4,1)와 복음(요한 12,24-26)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불행을 선포하십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들이 예언자들의 무덤과 기념물을 건축하면서, 마치 자신들은 그 예언자들을 죽인 조상들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처럼 보이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예언자가 오시리라 예언한 분이시며, 스스로 가장 위대한 예언자이신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고 갈 것이고, 그래서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두 번째는, 그들이 그릇된 인도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자신도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뿐 아니라,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함으로써 다른 사람들마저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사람들이라고 하십니다.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율법을 충실히 지키려 하였고, 특히 율법 교사들은 율법을 공부해서 전문가 수준에 오른 사람들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들의 이런 오류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에 대하여 잘 안다고 생각하거나, 최소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늘 신앙의 기본 정신을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처신해야 합니다.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 신앙인을 개별적인 인격체로 바라보기보다는 교회를 대표하여 신앙을 보여 주는 사람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강변하기보다는 우리 각자가 믿는 신앙과 몸담고 있는 교회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처신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혹여 우리의 행실이나 태도가 사람들을 잘못된 인식으로 이끈다면, 우리 또한 주님의 이런 꾸중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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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남을 심판하면서 똑같은 짓을 저지르면, 자신을 단죄하는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 불행하다고 선언하시며, 남에게 힘겨운 짐을 지워 놓고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 대려 하지 않는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먼저 유다인에게 그리고 그리스인에게까지 모든 이에게 그 행실대로 갚으실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2,1-11
1 아, 남을 심판하는 사람이여,
그대가 누구든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남을 심판하면서 똑같은 짓을 저지르고 있으니,
남을 심판하는 바로 그것으로 자신을 단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우리는 그러한 짓을 저지르는 자들에게 내리는 하느님의 심판이
진리에 따른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3 아, 그러한 짓을 저지르는 자들을 심판하면서도 스스로 같은 짓을 하는 사람이여,
그대는 하느님의 심판을 모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까?
4 아니면, 하느님의 그 큰 호의와 관용과 인내를 업신여기는 것입니까?
그분의 호의가 그대를 회개로 이끌려 한다는 것을 모릅니까?
5 그대는 회개할 줄 모르는 완고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의로운 재판이 이루어지는 진노와 계시의 날에
그대에게 쏟아질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6 하느님께서는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으실 것입니다.
7 꾸준히 선행을 하면서 영광과 명예와 불멸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8 그러나 이기심에 사로잡혀 진리를 거스르고
불의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진노와 격분이 쏟아집니다.
9 먼저 유다인이 그리고 그리스인까지,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환난과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10 먼저 유다인에게 그리고 그리스인에게까지,

선을 행하는 모든 이에게는 영광과 명예와 평화가 내릴 것입니다.
11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2-46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42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43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44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한다.”
45 율법 교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46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을 위선자로 단죄하십니다. 율법은 종교 제도를 유지하려고 십일조를 바치도록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지나친 열심 때문에 향료 식물까지 포함시켜서 규정만 무겁게 만들어 놓고 정작 율법의 근본정신인 의로움이나 하느님 사랑과 자비의 정신에 소홀하였기에 단죄를 받습니다.예언자들은 끊임없이 정의와 자비와 신의를 부르짖으며, 신앙 행위의 의식주의와 율법주의에 대하여 경고하였습니다.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는 것은 옳지만, 하느님께서는 부정한 이익을 거부하고, 정직하게 생활하며, 약한 이와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을 더 원하시고, 기뻐하십니다.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이 신앙에 열정적이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수님께서 그들을 단죄하신 것은, 그들의 신앙 실천이 너무 표면적이고, 드러난 모습과 행동이 하느님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에 들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이런 저주에 가까운 예수님의 꾸짖음을 듣고 있노라면, 당시 종교와 사회에 대한 불의와 잘못된 점을 매섭게 질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나, 위선적인 바리사이들이나 율법 교사들이 받는 꾸중에 통쾌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우리의 그런 감정 이면에, 나는 바리사이들이나 율법 교사들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이를 잊는다면 우리 역시 예수님께서 꾸짖으시는 바리사이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꾸짖음을 지금 나에 대한 꾸짖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거울 삼아 우리의 모습을 가꾸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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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불의로 진리를 억누르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알면서도 하느님을 찬양하거나 감사드리지 않았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사람들은 하느님을 알면서도 그분을 하느님으로 찬양하지 않았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16-25
형제 여러분, 16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먼저 유다인에게 그리고 그리스인에게까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17 복음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계시됩니다.
이는 성경에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18 불의로 진리를 억누르는 사람들의 모든 불경과 불의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가
하늘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
19 하느님에 관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이미 그들에게 명백히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명백히 드러내 주셨습니다.
20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21 하느님을 알면서도 그분을 하느님으로 찬양하거나 그분께 감사를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망하게 되고 우둔한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22 그들은 지혜롭다고 자처하였지만 바보가 되었습니다.
23 그리고 불멸하시는 하느님의 영광을 썩어 없어질 인간과
날짐승과 네발짐승과 길짐승 같은 형상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24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마음의 욕망으로 더럽혀지도록 내버려 두시어,
그들이 스스로 자기들의 몸을 수치스럽게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25 그들은 하느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버리고,
창조주 대신에 피조물을 받들어 섬겼습니다.
창조주께서는 영원히 찬미받으실 분이십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37-41
그때에 37 예수님께서 다 말씀하시자,
어떤 바리사이가 자기 집에서 식사하자고 그분을 초대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 집에 들어가시어 자리에 앉으셨다.
38 그런데 그 바리사이는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39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41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또는, 기념일 독서(로마 8,22-27)와 복음(요한 15,1-8)을 봉독할 수 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어떤 바리사이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아 가셔서 정결례에 대하여 논쟁하시는 내용입니다. 논쟁의 발단은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으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식사 전에 손을 씻는 것은 위생 때문이 아니라 정결례 규정 때문이었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짐승뿐 아니라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서 정결한 것과 불결한 것을 구별하였습니다. 불결한 것은 사람이 접촉하는 것도, 음식으로 먹는 것도 금지되었습니다. 식사 전에 손을 씻어야 했던 것은, 혹시라도 식사 전에 불결한 것과 접촉하였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예수님께서는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고 지적하십니다. 손뿐 아니라 잔과 접시를 아무리 닦아도 사람의 마음이 깨끗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십니다. 사실 바리사이들은 생활 전체를 거룩하게 지킨다는 명목으로 정결례를 중요시하고 규정들을 지키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규정의 외적 준수에만 치우쳐 율법의 본디 의미와 하느님의 뜻을 망각하는 것과 그것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심판하는 것을 책망하십니다.예수님께서는 진정한 정결례는 자선을 베푸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분명히 규정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떤 규정을 만들고 지키는 것보다 하느님과의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 그리고 이웃에 대한 근본적인 애정과 배려가 하느님 보시기에 더 중요한 것이며, 또 그런 노력을 통하여 하느님 보시기에 정결한 인간, 의로운 인간이 된다는 뜻일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드러나고 실천되어야 합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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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로마 신자들에게 서간을 보내며, 은총과 평화를 기원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도직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는 민족들에게 믿음의 순종을 일깨우려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시작입니다. 1,1-7
1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으로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의 복음을 위하여 선택을 받은 바오로가 이 편지를 씁니다.
2 이 복음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미리 성경에 약속해 놓으신 것으로, 3 당신 아드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분께서는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고,
4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확인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5 우리는 바로 그분을 통하여 사도직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는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들에게 믿음의 순종을 일깨우려는 것입니다.
6 여러분도 그들 가운데에서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7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로서 하느님께 사랑받는
로마의 모든 신자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9-32
그때에 29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30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32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표징을 요구하는 세대를 악한 세대로 규정하시면서, 그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요나 예언자는 고대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인 니네베로 가라는 소명을 받았으나, 순명하지 않고 도망을 가다가, 바다에 던져져 물고기 배 속에서 사흘 낮과 밤을 지냈고, 결국 니네베로 가서 하느님 명령대로 회개를 선포하였던 예언자입니다. 요나 예언자는 생명을 되찾은 사람으로서 니네베 사람들의 회개를 위한 표징이 되었던 것입니다.사람의 아들인 예수님께서도 돌아가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그 세대 사람들에게 표징이 되십니다. 단순히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뿐만이 아니라 예수님 인격 자체가 사람들에게 표징이었습니다.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요나 예언자가 물고기 배 속에서 사흘을 보낸 것을 예수님께서 저승에 가셔서 사흘 동안 머무신 것을 미리 보여 준 예표로 여겼습니다.이 표징 이야기의 핵심에는 회개가 있습니다. 남방의 여왕이나 니네베 시민들은 다 같이 이방인들이었지만, 그들은 현자였던 솔로몬의 지혜와 요나 예언자의 선포를 경청하였습니다. 반면에 예수님 당시의 유다인들은 그들보다 더 탁월한 현자요 예언자이신 예수님의 지혜와 선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상대로 엄한 심판을 예고하십니다.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메시지는 예수님 당시나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주님의 요구이며 요청입니다. 회개하여 은총을 받는 것이 아니라, 회개는 그 자체로 이미 은총입니다. 회개를 통해서만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과 화해하며 하느님께서 주시는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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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엘리야 예언자가 일러 준 대로 하여 나병이 치유되자, 시리아 사람 나아만은 주님만을 섬기겠다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며, 그분께서는 언제나 성실하시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 치유를 받은 나병 환자 열 사람 가운데, 외국인 한 사람만이 돌아와 감사를 드린다(복음).

제1독서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가 주님께 신앙 고백을 하였다.>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5,14-17
그 무렵 시리아 사람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가 14 일러 준 대로,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
그러자 나병 환자인 그는 어린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다.
15 나아만은 수행원을 모두 거느리고 하느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가
그 앞에 서서 말하였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이 종이 드리는 선물을 부디 받아 주십시오.”
16 그러나 엘리사는 “내가 모시는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결코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거절하였다.
그래도 나아만이 그것을 받아 달라고 거듭 청하였지만 엘리사는 거절하였다.
17 그러자 나아만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시다면, 나귀 두 마리에 실을 만큼의 흙을 이 종에게 주십시오.
이 종은 이제부터 주님 말고는 다른 어떤 신에게도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우리가 견디어 내면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것이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 2,8-13
사랑하는 그대여, 8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나의 복음입니다.
9 이 복음을 위하여 나는 죄인처럼 감옥에 갇히는 고통까지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10 그러므로 나는 선택된 이들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받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이 말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그분과 함께 살 것이고
12 우리가 견디어 내면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며
우리가 그분을 모른다고 하면 그분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13 우리는 성실하지 못해도 그분께서는 언제나 성실하시니
그러한 당신 자신을 부정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1-19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 열 사람을 치유해 주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예전에 나병은 하늘이 내린 징벌로 여겨졌고, 전염을 우려하여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병이었습니다. 육체적인 고통뿐 아니라 소외와 고독, 그리고 하느님께 받은 징벌이라는 사회적·종교적 인식까지 더해서 나병 환자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는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예수님께서는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십니다. 이 말씀은 그들의 병이 그 자리에서 나았다고 선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틀림없이 치유해 주시려는 의도를 지닌 말씀이지만, 거기에는 나병 환자들의 믿음이 작용해야 하는 여지가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하였습니다.그들은 길을 가는 동안에 치유되었는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만이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 사람은 유다인들이 경멸하던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선포하십니다.열 사람이 모두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 치유는 아홉 명에게는 단순히 육체적인 치유에 머물고 말지만, 돌아와 감사를 드린 그 사마리아 사람에게는 구원으로 연결됩니다.돌아보면 하느님의 은총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지만, 우리는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마치 치유를 받고도 돌아와 감사할 줄 모르는 아홉 명의 환자들과 비슷합니다. 행복하기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를 드리기에 행복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우리 생활을 감사로 시작하고 또 마무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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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요엘 예언자는,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피난처와 요새가 되어 주시고 시온에 머무르신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어머니를 행복하다고 하는 여자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낫을 대어라. 수확 철이 무르익었다.>

▥ 요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4,12-2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2 “민족들은 일어나 여호사팟 골짜기로 올라가라.
내가 사방의 모든 민족들을 심판하려고 거기에 자리를 잡으리라.
13 낫을 대어라. 수확 철이 무르익었다.
와서 밟아라. 포도 확이 가득 찼다.
확마다 넘쳐흐른다. 그들의 악이 크다.
14 거대한 무리가 ‘결판의 골짜기’로 모여들었다.
‘결판의 골짜기’에 주님의 날이 가까웠다.
15 해와 달은 어두워지고 별들은 제 빛을 거두어들인다.
16 주님께서 시온에서 호령하시고 예루살렘에서 큰 소리를 치시니
하늘과 땅이 뒤흔들린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피난처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요새가 되어 주신다.
17 그때에 너희는 내가 나의 거룩한 산 시온에 사는
주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되리라.
예루살렘은 거룩한 곳이 되고
다시는 이방인들이 이곳을 지나가지 못하리라.
18 그날에는 산마다 새 포도주가 흘러내리고
언덕마다 젖이 흐르리라.
유다의 개울마다 물이 흐르고 주님의 집에서는 샘물이 솟아
시팀 골짜기를 적시리라.
19 이집트는 황무지가 되고 에돔은 황량한 광야가 되리라.
그들이 유다의 자손들을 폭행하고 그 땅에서 무죄한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20 그러나 유다에는 영원히, 예루살렘에는 대대로 사람들이 살리라.
21 나는 그들의 피를 되갚아 주고
어떤 죄도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으리라.
주님은 시온에 머무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는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7-28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7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2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오늘의 짧은 복음은 군중 속에 있던 한 여자의 외침으로 시작합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하시는 일에 탄복한 여자는 예수님을 실제로 낳으시고 기르신 성모님을 찬양합니다.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상기시킵니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루카 8,21).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낳고 기른 인간적인 인연보다 더 높은 행복의 길을 제시하십니다. 당신을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실천함으로써, 구원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 진정 행복하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렇다고 성모님께서 당신을 찾아오셨을 때나 이 대목에서,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부인하시거나 깎아내리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성모님을 올바로 보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모님께서 복되신 것은 단순히 구세주를 낳으신 어머니이시기 때문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명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가브리엘 천사의 주님 탄생 예고를 들으셨을 때부터 당신을 ‘여종’으로 자처하셨고, 주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도록 순명하신 것에 성모님의 진정한 위대함이 있습니다. 예수님 곁에 계실 때도 아드님과 관련된 모든 것을 마음에 간직하신 분이시기에, 성모님께서는 이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로 정의되는 신앙인들의 모범이 되십니다.우리 역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성모님을 따라 그 말씀에 의지하고 복음을 실천함으로써 행복의 길을 찾아야 하겠습니다.(이성근 사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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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요엘 예언자는 주님의 날이 가까웠다며, 단식을 선포하고 거룩한 집회를 소집하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신다며,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와 있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의 날, 어둠과 암흑의 날>

▥ 요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13-15; 2,1-2
13 사제들아, 자루옷을 두르고 슬피 울어라.
제단의 봉사자들아, 울부짖어라.
내 하느님의 봉사자들아, 와서 자루옷을 두르고 밤을 새워라.
너희 하느님의 집에 곡식 제물과 제주가 떨어졌다.
14 너희는 단식을 선포하고 거룩한 집회를 소집하여라.
원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을
주 너희 하느님의 집에 모아 주님께 부르짖어라.
15 아, 그날! 정녕 주님의 날이 가까웠다.
전능하신 분께서 보내신 파멸이 들이닥치듯 다가온다.
2,1 너희는 시온에서 뿔 나팔을 불고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보를 울려라.
땅의 모든 주민이 떨게 하여라.
주님의 날이 다가온다.
정녕 그날이 가까웠다.
2 어둠과 암흑의 날, 구름과 먹구름의 날이다.
여명이 산등성이를 넘어 퍼지듯 수가 많고 힘센 민족이 다가온다.
이런 일은 옛날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세세 대대에 이르도록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5-26
그때에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군중 15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16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18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19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21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22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24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25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26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다가 사람들에게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불신앙은 이제 예수님을 사탄의 하수인으로까지 전락시키고 맙니다. 똑같은 것을 보고 들은 사람들 중 한쪽은 하느님의 능력을 보고 놀라워하지만, 다른 쪽은 예수님께서 사탄의 사주를 받았다고 수군거립니다.주님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갖추어야 하는 영적 자세는 신앙의 확고함이나 철저함보다는 열린 마음입니다. 하느님께, 또 다른 사람들에게 열려 있지 않은 마음으로는 하느님도 이웃도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예수님께서는 힘센 사람에 대한 비유 말씀을 통하여, 당신이 사탄의 사주를 받는 분이 아니라 더 힘센 분, 곧 사탄을 이기고 승리하시는 분이며,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 그 표지라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그러고는 결정적으로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라고 깨우쳐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하느님 나라는 이미 이 세상에, 우리 가운데 실현되어 있습니다.예수님께서는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라고 말씀하시며 하느님 나라를 앞에 둔 우리의 선택을 요구하십니다.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이미 와 있는 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살 수 있고 살아야 하는 현실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 나라를 맛보고 완성을 희망하며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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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말라키 예언자는,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 모두 검불처럼 되는 날이 다가온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보라, 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

▥ 말라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3-20ㄴ
13 너희는 나에게 무엄한 말을 하였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런데도 너희는
“저희가 당신께 무슨 무례한 말을 하였습니까?” 하고 말한다.
14 너희는 이렇게 말하였다.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헛된 일이다.
만군의 주님의 명령을 지킨다고,
그분 앞에서 슬프게 걷는다고 무슨 이득이 있느냐?
15 오히려 이제 우리는 거만한 자들이 행복하다고 말해야 한다.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 번성하고 하느님을 시험하고도 화를 입지 않는다.”
16 그때에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이 서로 말하였다.
주님이 주의를 기울여 들었다.
그리고 주님을 경외하며 그의 이름을 존중하는 이들이
주님 앞에서 비망록에 쓰였다.
17 그들은 나의 것이 되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내가 나서는 날에 그들은 나의 소유가 되리라.
부모가 자기들을 섬기는 자식을 아끼듯 나도 그들을 아끼리라.
18 그러면 너희는 다시 의인과 악인을 가리고

하느님을 섬기는 이와 섬기지 않는 자를 가릴 수 있으리라.
19 보라, 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
거만한 자들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은 모두 검불이 되리니
다가오는 그날이 그들을 불살라 버리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날은 그들에게 뿌리도 가지도 남겨 두지 않으리라.
20 그러나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5-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5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귀찮게 졸라 대는 친구의 비유를 들려주시며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그러나 우리가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듯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고, 또 열심히 기도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청원 기도를 할 때 무엇보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청원 기도를 드린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하느님께 의존하고 의지한다는 것이고,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예수님 말씀대로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뱀을 줄 부모가 어디 있겠으며,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줄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그런 인간들보다 훨씬 더 자녀들을 사랑하시고 보살피신다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 마음의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은, 하느님께서 자녀들을 사랑하시기에 청하는 것을 들어주신다고 해서, 우리가 필요한 것을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요구하거나 졸라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드리는 기도여야 합니다. 어떤 부모도 자식이 원한다고 해서, 또 자식이 해 달라고 조른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해 주지는 않습니다.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언제나 그 기도를 귀 기울여 들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에 맞갖은 태도를 지니고, 하느님의 사랑에 의지하면서 기도를 드릴 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 안에서 우리의 청을 들어주실 것입니다.(이성근 사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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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죽어 버린 아주까리 때문에 화를 내는 요나 예언자에게,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신다(복음).

제1독서

<네가 이 아주까리를 그토록 동정하는구나!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 요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4,1-11
1 요나는 매우 언짢아서 화가 났다. 2 그래서 그는 주님께 기도하였다.
“아, 주님! 제가 고향에 있을 때에
이미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서둘러 타르시스로 달아났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이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시며,
벌하시다가도 쉬이 마음을 돌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3 이제 주님, 제발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4 주님께서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하고 말씀하셨다.
5 요나는 그 성읍에서 나와 성읍 동쪽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거기에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려고 하였다.
6 주 하느님께서는 아주까리 하나를 마련하시어 요나 위로 자라오르게 하셨다.
그러자 아주까리가 요나 머리 위로 그늘을 드리워
그를 고통스러운 더위에서 구해 주었다.
요나는 그 아주까리 덕분에 기분이 아주 좋았다.
7 그런데 이튿날 동이 틀 무렵,

하느님께서 벌레 하나를 마련하시어 아주까리를 쏠게 하시니,
아주까리가 시들어 버렸다.
8 해가 떠오르자 하느님께서 뜨거운 동풍을 보내셨다.
거기에다 해가 요나의 머리 위로 내리쬐니,
요나는 기절할 지경이 되어 죽기를 자청하면서 말하였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9 그러자 하느님께서 요나에게 물으셨다.
“아주까리 때문에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그가 “옳다 뿐입니까? 화가 나서 죽을 지경입니다.” 하고 대답하니,
1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수고하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았으며,
하룻밤 사이에 자랐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아주까리를 그토록 동정하는구나!
11 그런데 하물며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이 십이만 명이나 있고,
또 수많은 짐승이 있는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4
1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3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4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유다인들도 의무적으로 바쳐야 하는 기도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아마도 예수님의 기도가 그들의 기도와는 달리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었나 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다른 복음사가들에 비하여 유독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장면을 많이 전해 주고, 특별히 큰 사건을 앞에 두고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자주 보여 주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으로 기도하셨는지 알려 주지는 않습니다.그러나 주님의 기도 첫 줄에서부터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신 기도가 당시 사람들의 기도와 무엇이 달랐는지 금방 눈치 챌 수 있습니다. 그 기도는 바로 자녀로서 아버지께 바치는 기도라는 사실입니다. 첫마디의 ‘아버지’라는 호칭은 단순히 하느님을 부르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분이 바로 나의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라는 신앙 고백입니다.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아람어로 ‘아빠’라고 부르셨고, 그 말은 육으로 맺어진 친아버지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그것을 신성 모독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로 우리 모두가 당신을 통하여, 당신 안에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녀들임을 깨우쳐 주십니다.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기도가 완벽한 기도이면서 동시에 우리 기도의 모범임을 발견합니다. 주님의 기도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기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 안에서 그분을 통하여 드리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감히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고, 그래서 우리가 청하는 것을 감히 받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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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요나 예언자가 전한 말을 듣고 니네베 사람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오는 모습을 보시고, 재앙을 내리지 않으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시중드는 일로 분주한 마르타에게, 필요한 것은 당신 말씀을 듣는 것 한 가지뿐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니네베 사람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셨다.>

▥ 요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10
1 주님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내렸다.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3 요나는 주님의 말씀대로 일어나 니네베로 갔다.
니네베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성읍이었다.
4 요나는 그 성읍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하룻길을 걸은 다음 이렇게 외쳤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5 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
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었다.
6 이 소식이 니네베 임금에게 전해지자,
그도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자루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 위에 앉았다.
7 그리고 그는 니네베에 이렇게 선포하였다.
“임금과 대신들의 칙령에 따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든 양이든 아무것도 맛보지 마라.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라.
8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자루옷을 걸치고 하느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
9 하느님께서 다시 마음을 돌리시고 그 타오르는 진노를 거두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10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38-42
그때에 38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의 집을 방문하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것은 보통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마르타가 바빴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르타 입장에서는 시중드는 일은 도와주지 않으면서 예수님 발치에 앉아만 있는 마리아가 원망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불평하는 마르타에게 예수님께서는 마리아가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고 하십니다.이 대목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마르타는 활동을 의미하고 마리아는 관상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관상이 활동보다 우선해야 한다거나, 마르타는 노동을 뜻하고 마리아는 기도를 뜻하기에 노동보다는 기도가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을 맞이하는 마르타나 마리아의 마음이 서로 달랐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마르타 역시 예수님을 뵙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자 하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타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그분을 접대하는 것보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 순간 가장 중요하다고 알려 주십니다.우리는 마음 안에 마르타와 마리아의 두 가지 모습을 늘 같이 지니고 살아갑니다. 주님의 목소리에 온전히 귀 기울이고 그분과 일치하여 살고 싶은 마음과 현실에 충실하고자 하는 욕구가 함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 가운데 무엇 하나를 선택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이 둘을 내 삶 안에 어떻게 조화시킬까 하는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 우리 생활에 대한 영감을 얻고, 우리 생활을 통하여 신앙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몫을 택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Posted by 에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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