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소년 다윗은 주님의 도우심으로 무릿매 끈과 돌멩이 하나로 필리스티아전사 골리앗을 이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완고함에 슬퍼하시면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안식일에 고쳐 주신다(복음).

 

제1독서

<다윗은 무릿매 끈과 돌멩이 하나로 필리스티아 사람을 눌렀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17,32-33.37.40-51
그 무렵 32 다윗은 사울에게,
“아무도 저자 때문에 상심해서는 안 됩니다.
임금님의 종인 제가 나가서 저 필리스티아 사람과 싸우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 사울은 다윗을 말렸다.
“너는 저 필리스티아 사람에게 마주 나가 싸우지 못한단다.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전사였지만, 너는 아직도 소년이 아니냐?”
37 다윗이 말을 계속하였다.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저를 빼내 주신 주님께서
저 필리스티아 사람의 손에서도 저를 빼내 주실 것입니다.”
그제야 사울은 다윗에게 허락하였다.
“그러면 가거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빈다.”
40 그러고 나서 다윗은 자기의 막대기를 손에 들고,
개울가에서 매끄러운 돌멩이 다섯 개를 골라서
메고 있던 양치기 가방 주머니에 넣은 다음,
손에 무릿매 끈을 들고 그 필리스티아 사람에게 다가갔다.
41 필리스티아 사람도 방패병을 앞세우고 나서서
다윗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42 그런데 필리스티아 사람은 다윗을 보더니,
그가 볼이 불그레하고 용모가 아름다운 소년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그를 업신여겼다.
43 필리스티아 사람이 다윗에게
“막대기를 들고 나에게 오다니, 내가 개란 말이냐?” 하고는,
자기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였다.
44 필리스티아 사람이 다시 다윗에게 말하였다.
“이리 와라. 내가 너의 몸을 하늘의 새와 들짐승에게 넘겨주겠다.”
45 그러자 다윗이 필리스티아 사람에게 이렇게 맞대꾸하였다.
“너는 칼과 표창과 창을 들고 나왔지만,
나는 네가 모욕한 이스라엘 전열의 하느님이신 만군의 주님 이름으로 나왔다.
46 오늘 주님께서 너를 내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나야말로 너를 쳐서 머리를 떨어뜨리고,
오늘 필리스티아인들 진영의 시체를 하늘의 새와 들짐승에게 넘겨주겠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계시다는 사실을 온 세상이 알게 하겠다.
47 또한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로 구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도,
여기 모인 온 무리가 이제 알게 하겠다.
전쟁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
그분께서 너희를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48 필리스티아 사람이 다윗을 향하여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다윗도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향하여 전열 쪽으로 날쌔게 달려갔다.
49 그러면서 다윗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돌 하나를 꺼낸 다음,
무릿매질을 하여 필리스티아 사람의 이마를 맞혔다.
돌이 이마에 박히자 그는 땅바닥에 얼굴을 박고 쓰러졌다.
50 이렇게 다윗은 무릿매 끈과 돌멩이 하나로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누르고 그를 죽였다.
다윗은 손에 칼도 들지 않고 그를 죽인 것이다.
51 다윗은 달려가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밟고 선 채,
그의 칼집에서 칼을 뽑아 그를 죽이고 목을 베었다.
필리스티아인들은 저희 용사가 죽은 것을 보고 달아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2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3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4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5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6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마르 2,28)이라는 어제 예수님의 선포가 오늘 치유 기적으로 증명됩니다. 이 기적은 유다인들에게 중요한 시간(안식일)과 공간(회당)에서 일어납니다. 
안식일, 어느 회당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과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동체에서 소외되고 위축된 삶을 살았을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가운데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물으십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이 질문은 ‘선한 일’이나 ‘생명을 구하는 일’이 율법의 맹목적인 준수보다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안식일은 선한 일을 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날입니다. 소외되고 위축된 삶을 회복시켜야 하는 날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분께서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하시려는 일입니다. 
“손을 뻗어라.” 이렇게 치유는 안식일을 위반하는 구체적인 행동 없이 권위 있는 말씀으로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곧바로 사형 권한을 지닌 헤로데의 추종자들과 예수님을 없애기로 모의합니다. 그들의 행동은 “남을 해치는 일”, “죽이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하신 “좋은 일”, “목숨을 구하는 것”과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사람을 위하여 생긴”(마르 2,27) 안식일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이집트 종살이에서 벗어나 이스라엘이 누리게 된 자유와 구원을 기억하는 날입니다(신명 5,12-15 참조). 우리도 모든 죄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져, 우리 안에 담긴 하느님의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주님께 은총을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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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사무엘을 이사이에게 보내시어 그의 아들들 가운데에서 임금이 될 다윗에게 기름을 붓게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은 제자들을 비난하는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사무엘이 형들 한가운데에서 다윗에게 기름을 붓자 주님의 영이 그에게 들이닥쳤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16,1-13
그 무렵 1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언제까지 이렇게 슬퍼하고만 있을 셈이냐?
나는 이미 사울을 이스라엘의 임금 자리에서 밀어냈다.
그러니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떠나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사이에게 보낸다.
내가 친히 그의 아들 가운데에서 임금이 될 사람을 하나 보아 두었다.”
2 사무엘이 여쭈었다. “제가 어떻게 갑니까?
사울이 그 소식을 들으면 저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암송아지 한 마리를 끌고 가서, ‘주님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고 하여라.
3 그러면서 이사이를 제사에 초청하여라.
그다음에 네가 할 일을 내가 알려 주겠다.
너는 내가 일러 주는 이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어라.”
4 사무엘은 주님께서 이르시는 대로 하였다.
그가 베들레헴에 다다르자 그 성읍의 원로들이 떨면서 그를 맞았다.
그들은 “좋은 일로 오시는 겁니까?” 하고 물었다.
5 사무엘이 대답하였다.
“물론 좋은 일이지요. 나는 주님께 제사를 드리러 온 것이오.
그러니 몸을 거룩하게 하고 제사를 드리러 함께 갑시다.”
사무엘은 이사이와 그의 아들들을 거룩하게 한 다음
그들을 제사에 초청하였다.
6 그들이 왔을 때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가 바로 주님 앞에 서 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7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8 다음으로 이사이는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 아이도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아니오.” 하였다.
9 이사이가 다시 삼마를 지나가게 하였지만,
사무엘은 “이 아이도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아니오.” 하였다.
10 이렇게 이사이가 아들 일곱을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으나,
사무엘은 이사이에게 “이들 가운데에는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없소.” 하였다.
11 사무엘이 이사이에게 “아들들이 다 모인 겁니까?” 하고 묻자,
이사이는 “막내가 아직 남아 있지만,
지금 양을 치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사무엘이 이사이에게 말하였다.
“사람을 보내 데려오시오.
그가 여기 올 때까지 우리는 식탁에 앉을 수가 없소.”
12 그래서 이사이는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왔다.
그는 볼이 불그레하고 눈매가 아름다운 잘생긴 아이였다.
주님께서 “바로 이 아이다.
일어나 이 아이에게 기름을 부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사무엘은 기름이 담긴 뿔을 들고
형들 한가운데에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들이닥쳐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렀다.
사무엘은 그곳을 떠나 라마로 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23-28
23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질러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길을 내고 가면서 밀 이삭을 뜯기 시작하였다.
24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26 에브야타르 대사제 때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고
함께 있는 이들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27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28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밀밭 사이를 지나가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배가 고팠는지 밀 이삭을 뜯었습니다. 평소라면 이웃의 밭에서 낫이 아닌 손으로 이삭을 자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신명 23,26 참조). 문제는 이날이 안식일이었다는 점입니다. 안식일에는 추수 행위가 금지되는데, 밀을 뜯는 것이 추수 행위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비판하는 바리사이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본정신을 밝히십니다. 먼저,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을 때, 사제만 먹을 수 있는 제사 빵을 먹었던 일화(1사무 21,1-7 참조)를 상기시키십니다. 안식일과 직접 관련되지는 않는 이 일화로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준수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절박한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더 먼저라는 해석을 보여 주십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율법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의 아들”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우리 교회에도 많은 법과 규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이 법과 규정을 따르는 외적인 문제로 이웃을 단죄하기도 합니다. 법과 규정의 준수와 함께, 그 안에 담긴 본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의 법과 규정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과 연결되는 날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주일”(묵시 1,10)을 하느님 안에 머무르는 거룩한 날로 지냅니다.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릴 때, 비로소 그날이 거룩한 날이 됩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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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사무엘은 주님의 말씀을 배척한 사울의 행동 때문에 주님께서 그를 왕위에서 끌어내리시리라고 예언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고 하시며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습니다.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왕위에서 배척하셨습니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15,16-23
그 무렵 16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그만두십시오. 간밤에 주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가 사무엘에게 응답하였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17 사무엘이 말하였다. “임금님은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여기실지 몰라도,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아니십니까?
주님께서 임금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이스라엘 위에 임금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18 주님께서는 임금님을 내보내시면서 이런 분부를 하셨습니다.
‘가서 저 아말렉 죄인들을 완전히 없애 버려라.
그들을 전멸시킬 때까지 그들과 싸워라.’
19 그런데 어찌하여 임금님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전리품에 덤벼들어,
주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셨습니까?”
20 사울이 사무엘에게 대답하였다. “저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가라고 하신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아말렉 임금 아각은 사로잡고 그 밖의 아말렉 사람들은 완전히 없애 버렸습니다.
21 다만 군사들이 완전히 없애 버려야 했던 전리품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양과 소만 끌고 왔습니다.
그것은 길갈에서 주 어르신의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려는 것이었습니다.”
22 그러자 사무엘이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낫습니다.
23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임금님이 주님의 말씀을 배척하셨기에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왕위에서 배척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8-22
그때에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에페 6,10-13.18)와 복음(마태 19,16-26)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공동체를 이루며 자신들의 스승처럼 단식하였고(마태 9,14 참조), 바리사이들은 속죄일 외에,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였습니다(루카 18,12 참조). 물론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였습니다(『디다케』, 8,1 참조).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의 신랑과 손님을 비유로 들어, 제자들이 당신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필요가 없다고 변호하십니다. 혼인 잔치의 신랑은 예수님이시며 손님은 제자들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혼인 잔치는 ‘구원의 시간’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혼인 잔치의 비유는 예수님께서 오신 ‘지금’이 바로 구원의 시간임을 드러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사 65,17)을 창조하시고, “새 마음”과 “새 영”(에제 36,26)을 주시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시간, 바로 하느님 나라의 시간입니다. 이렇게 혼인 잔치는 구원의 시간, 기쁨의 시간이기에 슬퍼할 수 없고(마태 9,15 참조), 단식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제자들도 “신랑을 빼앗길 날”에는 단식할 것입니다. 
헌 옷에 새 천 조각을 대고 깁지 않으며, 헌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 주어진 새로운 것, 곧 그분의 말씀과 행적 안에서 점점 가까워지는 하느님 나라를 강조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의 낡은 사고와 습관 안에 담을 수 없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회개와 이를 통하여 하느님과 이루는 화해 안에 그분의 나라를 담을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기신 하느님에게서 옵니다”(2코린 5,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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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예루살렘을 두고, 민족들이 그의 의로움을, 임금들이 그의 영광을 보리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신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표징을 일으키신다(복음).

 

제1독서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62,1-5
1 시온 때문에 나는 잠잠히 있을 수가 없고
예루살렘 때문에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의 의로움이 빛처럼 드러나고 그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를 때까지.
2 그러면 민족들이 너의 의로움을, 임금들이 너의 영광을 보리라.
너는 주님께서 친히 지어 주실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리라.
3 너는 주님의 손에 들려 있는 화려한 면류관이 되고
너의 하느님 손바닥에 놓여 있는 왕관이 되리라.
4 다시는 네가 ‘소박맞은 여인’이라,
다시는 네 땅이 ‘버림받은 여인’이라 일컬어지지 않으리라.
오히려 너는 ‘내 마음에 드는 여인’이라, 너의 땅은 ‘혼인한 여인’이라 불리리니
주님께서 너를 마음에 들어 하시고
네 땅을 아내로 맞아들이실 것이기 때문이다.
5 정녕 총각이 처녀와 혼인하듯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혼인하고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듯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한 분이신 같은 성령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12,4-11
형제 여러분, 4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5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6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7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8 그리하여 어떤 이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이,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에 따라 지식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9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 안에서 믿음이,
어떤 이에게는 그 한 성령 안에서 병을 고치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10 어떤 이에게는 기적을 일으키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예언을 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영들을 식별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신령한 언어를 해석하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11 이 모든 것을 한 분이신 같은 성령께서 일으키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그것들을 따로따로 나누어 주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11
그때에 1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2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3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4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5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6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두세 동이들이였다.
7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셨다.
그들은 곧 그것을 날라 갔다.
9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을 퍼 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과방장이 신랑을 불러 10 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11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요한 복음의 첫 번째 표징을 전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갈릴래아 카나의 어느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십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 함께 계십니다. 그런데 잔치에 쓰던 포도주가 떨어지고 맙니다. 이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이 상황을 알아채시고 예수님께 전하십니다. “포도주가 없구나.” 어머니의 말씀에는 아들 예수님께서 이 위기를 잘 해결하실 수 있다는 신뢰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모호합니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때’는 하느님의 뜻이 결정적으로 이루어지는 십자가 위의 죽음의 때, 곧 예수님의 영광의 순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로지 아버지 하느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십니다. 
마리아께서 일꾼들에게 이르십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이 말씀은 시나이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한목소리로 한 대답을 떠올리게 합니다.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실행하겠습니다”(탈출 24,3).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에 가득 채운 물을 모두 포도주로 바꾸십니다. 물독 하나가 두세 동이들이고 한 동이가 40리터가량이니, 모두 합치면 적어도 480리터가 넘는 ‘많은’ 양입니다. 게다가 과방장의 표현대로 ‘좋은’ 포도주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주시는 선물은 풍요롭고 충만합니다.
이와 같이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사용되는 물이 예수님의 현존과 함께 새로운 포도주로 태어납니다. 이제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보라, 그날이 온다. …… 산에서 새 포도주가 흘러내리고 모든 언덕에서 새 포도주가 흘러넘치리라”(아모 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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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사울이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릴 사람임을 깨닫게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며, 당신께서는 죄인들을 부르러 오셨다고 분명하게 밝히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 사람, 사울이 그분의 백성을 다스릴 것이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9,1-4.17-19; 10,1
그는 벤야민 사람으로서 힘센 용사였다.
2 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사울인데 잘생긴 젊은이였다.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그처럼 잘생긴 사람은 없었고,
키도 모든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은 더 컸다.
3 하루는 사울의 아버지 키스의 암나귀들이 없어졌다.
그래서 키스는 아들 사울에게 말하였다.
“종을 하나 데리고 나가 암나귀들을 찾아보아라.”
4 사울은 종과 함께 에프라임 산악 지방을 돌아다니고,
살리사 지방도 돌아다녔지만 찾지 못하였다.
그들은 사알림 지방까지 돌아다녔는데 거기에도 없었다.
다시 벤야민 지방을 돌아다녔으나 역시 찾지 못하였다.
17 사무엘이 사울을 보는 순간,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이, 내가 너에게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 사람이 내 백성을 다스릴 것이다.”
18 사울이 성문 안에서 사무엘에게 다가가 물었다.
“선견자의 댁이 어디인지 알려 주십시오.”
19 사무엘이 사울에게 대답하였다.
“내가 그 선견자요. 앞장서서 산당으로 올라가시오.
두 분은 오늘 나와 함께 음식을 들고, 내일 아침에 가시오.
그때 당신이 마음에 두고 있는 일도 다 일러 주겠소.”
10,1 사무엘은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을 맞춘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당신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그분의 소유인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셨소.
* 이제 당신은 주님의 백성을 다스리고,
그 원수들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할 것이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대중 라틴 말 성경』에 있다.

 

복음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3-17
그때에 13 예수님께서 호숫가로 나가셨다.
군중이 모두 모여 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14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5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런 이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16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7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해 주겠다.”(마르 2,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마치 이를 증명하시려는 듯, 예수님께서는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를 제자로 부르시고,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를 하십니다.
“나를 따라라.” 예수님의 초대에 세리 레위는, 갈릴래아의 어부들이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것처럼(마르 1,16-20 참조), 현재의 삶의 방식을 모두 버리고 그분을 따릅니다. 당시 세리는 이방인들과 자주 접촉하고, 자신의 직무를 이용하여 부정한 이득을 얻었기 때문에 ‘죄인’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런 죄인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게다가 그의 집에서 많은 세리와 죄인과 자리를 함께하시고 음식을 나누십니다.
율법 학자들은 자신의 깨끗함과 거룩함을 지키려고 세리들과 죄인들과 되도록 거리를 두었습니다. 그런 율법 학자들에게, 세리를 부르시고 죄인과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큰 문젯거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그들은 누구보다 먼저 당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입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율법 학자들이 세리와 죄인을 사회적 종교적 관계에서 단절하고 격리하였다면, 예수님께서는 그 관계를 회복시키십니다. 관계의 회복은 죄의 용서를 전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찾아 나서시는 분이시며,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을 제자로 부르시며 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시는 분이십니다. “나는 …… 죄인을 부르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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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임금을 세워 달라고 사무엘에게 청하자,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임금을 세워 주라고 이르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지붕을 벗기고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내려보낸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병자를 고쳐 주신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은 임금 때문에 울부짖겠지만, 주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8,4-7.10-22ㄱ
그 무렵 4 모든 이스라엘 원로들이 모여 라마로 사무엘을 찾아가 5 청하였다.
“어르신께서는 이미 나이가 많으시고
아드님들은 당신의 길을 따라 걷지 않고 있으니,
이제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 우리를 통치할 임금을 우리에게 세워 주십시오.”
6 사무엘은 “우리를 통치할 임금을 정해 주십시오.” 하는 그들의 말을 듣고,
마음이 언짢아 주님께 기도하였다.
7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백성이 너에게 하는 말을 다 들어 주어라.
그들은 사실 너를 배척한 것이 아니라 나를 배척하여,
더 이상 나를 자기네 임금으로 삼지 않으려는 것이다.”
10 사무엘은 자기한테 임금을 요구하는 백성에게 주님의 말씀을 모두 전하였다.
11 사무엘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이 여러분을 다스릴 임금의 권한이오.
그는 여러분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자기 병거와 말 다루는 일을 시키고,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이오.
12 천인대장이나 오십인대장으로 삼기도 하고,
그의 밭을 갈고 수확하게 할 것이며,
무기와 병거의 장비를 만들게도 할 것이오.
13 또한 그는 여러분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 제조사와 요리사와 제빵 기술자로 삼을 것이오.
14 그는 여러분의 가장 좋은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을 빼앗아
자기 신하들에게 주고,
15 여러분의 곡식과 포도밭에서도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 내시들과 신하들에게 줄 것이오.
16 여러분의 남종과 여종과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
그리고 여러분의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오.
17 여러분의 양 떼에서도 십일조를 거두어 갈 것이며,
여러분마저 그의 종이 될 것이오.
18 그제야 여러분은 스스로 뽑은 임금 때문에 울부짖겠지만,
그때에 주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오.”
19 그러나 백성은 사무엘의 말을 듣기를 마다하며 말하였다.
“상관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임금이 꼭 있어야 하겠습니다.
20 그래야 우리도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 임금이 우리를 통치하고
우리 앞에 나서서 전쟁을 이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1 사무엘은 백성의 말을 다 듣고 나서 그대로 주님께 아뢰었다.
22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그들의 말을 들어 그들에게 임금을 세워 주어라.” 하고 이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12
1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2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3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4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보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6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7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8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9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10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12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제 복음에서 나병 환자에게 ‘정’(淨), 곧 깨끗함을 선물하신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중풍 병자에게 ‘죄의 용서’와 ‘병의 치유’를 선물하십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데, 어떤 네 사람이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옵니다. 군중 때문에 예수님께 다가갈 수 없자, 그들은 지붕을 벗겨 내고 구멍을 내어 그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예수님 앞으로 내려보냅니다. 그분께서는 어려움을 헤치고 자신에게 다다른 그들의 정성과 행동을 ‘믿음’으로 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병을 고쳐 주시는 대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예수님께는 병의 치유보다 죄의 용서가 더 급하고 중요합니다. 이 말씀이 율법 학자들에게 ‘하느님 모독’으로 들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죄의 용서에 대한 권한은 오직 한 분, 하느님만이 가지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들것을 들고 걸어 나가는 중풍 병자의 모습은 그의 병이 나았음은 물론, 그의 죄가 용서받았음을 증명합니다. 이로써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 곧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권한을 지니신 분이시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병의 치유’와 ‘죄의 용서’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쉬울까요? 이 질문은  병의 치유와 죄의 용서가 밀접히 관계되며, 둘 다 오로지 하느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비된 병자를 일으키시는 분, 죄를 용서하시는 분, 곧 참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통하여 ‘지금 그리고 여기에’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를 받아들이는 믿음입니다. 오늘 중풍 병자의 치유와 용서는 예수님의 ‘권한’과 사람들의 ‘믿음’이 만나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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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이스라엘인들은 필리스티아인들과의 전투에서 계약 궤마저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도 죽임을 당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치유를 간절히 청하는 나병 환자를 낫게 하신다(복음).

 

제1독서

<이스라엘은 크게 패배하고, 하느님의 궤도 빼앗겼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4,1ㄴ-11
그 무렵 필리스티아인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려고 모여들었다.
1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인들과 싸우러 나가 에벤 에제르에 진을 치고,
필리스티아인들은 아펙에 진을 쳤다.
2 필리스티아인들은 전열을 갖추고 이스라엘에게 맞섰다.
싸움이 커지면서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인들에게 패배하였다.
필리스티아인들은 벌판의 전선에서
이스라엘 군사를 사천 명가량이나 죽였다.
3 군사들이 진영으로 돌아오자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말하였다.
“주님께서 어찌하여 오늘 필리스티아인들 앞에서 우리를 치셨을까?
실로에서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 옵시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오시어 원수들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도록 합시다.”
4 그리하여 백성은 실로에 사람들을 보내어,
거기에서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만군의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 왔다.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하느님의 계약 궤와 함께 왔다.
5 주님의 계약 궤가 진영에 도착하자,
온 이스라엘은 땅이 뒤흔들리도록 큰 함성을 올렸다.
6 필리스티아인들이 이 큰 함성을 듣고,
“히브리인들의 진영에서 저런 함성이 들리다니 무슨 까닭일까?” 하고 묻다가,
주님의 궤가 진영에 도착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7 필리스티아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말하였다.
“그 진영에 신이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망했다! 이런 일은 일찍이 없었는데.
8 우리는 망했다! 누가 저 강력한 신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겠는가?
저 신은 광야에서 갖가지 재앙으로 이집트인들을 친 신이 아니냐!
9 그러니 필리스티아인들아, 사나이답게 힘을 내어라.
히브리인들이 너희를 섬긴 것처럼 너희가 그들을 섬기지 않으려거든,
사나이답게 싸워라.”
10 필리스티아인들이 이렇게 싸우자,
이스라엘은 패배하여 저마다 자기 천막으로 도망쳤다.
이리하여 대살육이 벌어졌는데,
이스라엘군은 보병이 삼만이나 쓰러졌으며,
11 하느님의 궤도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죽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는 나병이 가시고 깨끗하게 되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0-45
그때에 40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41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42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43 예수님께서는 그를 곧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
44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45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구약 성경을 보면, 악성 피부병에 걸린 사람은 “죽음의 맏자식이 사지를 갉아먹는”(욥 18,13) 육체의 고통뿐만 아니라, ‘부정(不淨)한 자’로 여겨져 공동체에서 소외되고 마침내 단절되어야 하는 고통을 받습니다(레위 13,45-46 참조).
‘부정한 사람’이라 외치며 다른 사람의 접근을 막아야 하는 나병 환자가 용기 내어 예수님께 다가갑니다.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 무릎 꿇은 그의 간청에서 신뢰와 확신이 느껴집니다. ‘접촉해서는 안 되는’ 나병 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대시며, 깨끗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도 놀랍습니다. 나병 환자의 치유는 부정(不淨)을 정(淨)으로 바꾼 기적입니다. 그래서 사회적 종교적으로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킵니다. 
당시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나병을 고치는 것은 하느님만이 가지고 계시는 능력으로, 죽은 이를 살리는 것과 맞먹는 능력입니다(2열왕 5,1-7 참조).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능력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이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명령하시지만, 나병 환자는 놀라움과 기쁨을 혼자 간직할 수 없었나 봅니다. 그는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합니다. 이 문장은 직역하면, ‘그 말씀을 널리 선포하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입니다. 어쩌면 마르코는, 나병 환자가 예수님을 만난 뒤, 복음을 선포하는 제자가 되었음을 전하려 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다양한 고통과 단절의 상황에 부딪힙니다. 그럴 때마다 용기 내어 예수님께 다가가 엎드려 청합시다. 그리고 복음을 선포하는 제자의 삶을 충실히 살아갑시다. 그분께서는 간절히 청하는 우리를 자비의 손길로 깨끗하게 하시고, 고통과 단절에서 구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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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사무엘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응답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장모를 낫게 하신 뒤 많은 사람을 치유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3,1-10.19-20
그 무렵 1 소년 사무엘은 엘리 앞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었다.
그때에는 주님의 말씀이 드물게 내렸고 환시도 자주 있지 않았다.
2 어느 날 엘리는 잠자리에 누워 자고 있었다.
그는 이미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하여 잘 볼 수가 없었다.
3 하느님의 등불이 아직 꺼지기 전에,
사무엘이 하느님의 궤가 있는 주님의 성전에서 자고 있었는데,
4 주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다. 그가 “예.” 하고 대답하고는,
5 엘리에게 달려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나는 너를 부른 적이 없다. 돌아가 자라.” 하였다.
그래서 사무엘은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6 주님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자,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내 아들아, 나는 너를 부른 적이 없다. 돌아가 자라.” 하였다.
7 사무엘은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드러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8 주님께서 세 번째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자,
그는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제야 엘리는 주님께서 그 아이를 부르고 계시는 줄 알아차리고,
9 사무엘에게 일렀다.
“가서 자라. 누군가 다시 너를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사무엘은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다.
10 주님께서 찾아와 서시어,
아까처럼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은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사무엘이 자라는 동안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어,
그가 한 말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
20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 온 이스라엘은
사무엘이 주님의 믿음직한 예언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9-39
그 무렵 예수님께서 29 회당에서 나오시어,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카파르나움에서의 하루’가 이어집니다.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마르 1,27)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신 예수님께서 회당을 나와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십니다. 그곳에는 그분의 도움이 필요한 시몬의 장모가 있습니다. 어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말씀’으로 치유하신 예수님께서, 오늘은 ‘행위’로 그를 치유하십니다. 그분께서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십니다. 치유받고 나서 곧바로 “시중을 드는” 그의 모습은, 하느님께 받은 ‘은혜’가 이웃을 위한 ‘봉사’로 이어져야 함을 묵상하게 합니다.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안식일이 끝나고 사람들은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데려옵니다. 그들을 낫게 하신 예수님께서는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외딴곳으로 가시어 기도하십니다. 이는 병자를 고쳐 주고 마귀를 쫓아내는 능력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분의 능력은 하느님을 만남으로써, 곧 하느님에게서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만나는 때인 기도 안에서 새로운 결단을 내리십니다. 모든 이가 열광하며 당신을 찾는 그곳에 머무르시지 않고, 다른 고을을 찾아 나서십니다. 온 백성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당신께서 오신 목적이며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마르코 복음사가는 어제와 오늘 복음에 걸쳐 예수님의 모든 활동을 요약하여 소개합니다. 하루에, 그것도 안식일에 이렇게 많은 활동을 하셨다는 것은 복음 선포가 그만큼 급하고 중요하였음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항해 여정을 기도로 시작하시고, 기도로 마무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기억합시다. 믿음은 하느님과 만나는 시간 안에서 커 나갑니다. 기도는 우리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채워 주고, 우리의 분주한 일상을 이끌어 주는 근원입니다. “기도는 노력입니다.” “기도를 가까이할 때에 삶이 바뀝니다”(『기도, 새 생명의 숨결』, 16면). 그래서 기도는 남는 시간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 속에서 희생하고 투쟁하며 기도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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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엘리 사제는 한나의 진실한 마음을 보고 안심하고 돌아가라며 위로한다(제1독서). 사람들은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진 예수님의 가르침에 몹시 놀란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 한나를 기억해 주셨기에 한나는 사무엘을 낳았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1,9-20
그 무렵 9 실로에서 음식을 먹고 마신 뒤에 한나가 일어섰다.
그때 엘리 사제는 주님의 성전 문설주 곁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10 한나는 마음이 쓰라려 흐느껴 울면서 주님께 기도하였다.
11 그는 서원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만군의 주님, 이 여종의 가련한 모습을 눈여겨보시고 저를 기억하신다면,
그리하여 당신 여종을 잊지 않으시고
당신 여종에게 아들 하나만 허락해 주신다면,
그 아이를 한평생 주님께 바치고
그 아이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않겠습니다.”
12 한나가 주님 앞에서 오래도록 기도하고 있는 동안에
엘리는 그의 입을 지켜보고 있었다.
13 한나는 속으로 빌고 있었으므로, 입술만 움직일 뿐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엘리는 그를 술 취한 여자로 생각하고
14 그를 나무라며,
“언제까지 이렇게 술에 취해 있을 참이오?
술 좀 깨시오!” 하고 말하였다.
15 그러자 한나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나리!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닙니다.
저는 마음이 무거워 주님 앞에서 제 마음을 털어놓고 있었을 따름입니다.
16 그러니 당신 여종을 좋지 않은 여자로 여기지 말아 주십시오.
저는 너무 괴롭고 분해서 이제껏 하소연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17 그러자 엘리가 “안심하고 돌아가시오.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당신이 드린 청을 들어주실 것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18 한나는 “나리께서 당신 여종을 너그럽게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는
그길로 가서 음식을 먹었다.
그의 얼굴이 더 이상 전과 같이 어둡지 않았다.
19 다음 날 아침, 그들은 일찍 일어나 주님께 예배를 드리고
라마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엘카나가 아내 한나와 잠자리를 같이하자
주님께서는 한나를 기억해 주셨다.
20 때가 되자 한나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한나는 “내가 주님께 청을 드려 얻었다.” 하면서,
아이의 이름을 사무엘이라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1ㄴ-28
카파르나움에서,
21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22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2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24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2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26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27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28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그물을 던지던 시몬과 안드레아, 그리고 그물을 손질하던 야고보와 요한을 첫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사람 낚는 어부”(마르 1,17)가 된 그들과 함께 항해를 시작하십니다. 오늘 복음과 내일 복음은 이 항해의 첫날을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그 무대는 카파르나움입니다. 
안식일에 어느 회당에서 시작하신 예수님의 첫 항해는 사람들을 몹시 놀라게 합니다. 그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이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는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이는 마르코 복음에 기록된 첫 기적이기도 합니다. 이 기적은 오로지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더러운 영은 예수님의 이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모두 놀랍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그들은 기적 자체가 아니라,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 말씀에 복종하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을 주시는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오늘 복음은 더러운 영을 통하여 그분의 정체를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으로 밝힙니다. ‘거룩함’은 하느님의 속성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은 하느님에게서 오신 분, 하느님께 속하신 분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권위’도 하느님에게서 왔기에 더러운 영을 몰아내는 힘을 지닙니다. ‘거룩하신’ 분께서 ‘더러운’ 영을 몰아내십니다. 이는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표지입니다(마르 1,15 참조).
참된 믿음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께 속하고, 그분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과 함께 하느님 나라를 향한 믿음의 항해를 시작합시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Posted by 에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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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엘카나의 아내 한나는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프닌나에게 괴롭힘을 당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복음 선포를 시작하시며 어부 네 사람을 제자로 부르신다(복음).

 

제1독서

<프닌나는 주님께서 태를 닫아 놓으신 한나를 괴롭혔다.>
▥ 사무엘기 상권의 시작입니다.1,1-8
1 에프라임 산악 지방에 춥족의 라마타임 사람이 하나 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엘카나였는데, 에프라임족 여로함의 아들이고 엘리후의 손자이며,
토후의 증손이고 춥의 현손이었다.
2 그에게는 아내가 둘 있었다.
한 아내의 이름은 한나이고, 다른 아내의 이름은 프닌나였다.
프닌나에게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3 엘카나는 해마다 자기 성읍을 떠나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주님께 예배와 제사를 드렸다.
그곳에는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가 주님의 사제로 있었다.
4 제사를 드리는 날,
엘카나는 아내 프닌나와 그의 아들딸들에게 제물의 몫을 나누어 주었다.
5 그러나 한나에게는 한몫밖에 줄 수 없었다.
엘카나는 한나를 사랑하였지만 주님께서 그의 태를 닫아 놓으셨기 때문이다.
6 더구나 적수 프닌나는, 주님께서 한나의 태를 닫아 놓으셨으므로,
그를 괴롭히려고 그의 화를 몹시 돋우었다.
7 이런 일이 해마다 되풀이되었다.
주님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프닌나가 이렇게 한나의 화를 돋우면,
한나는 울기만 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8 남편 엘카나가 한나에게 말하였다.
“한나, 왜 울기만 하오? 왜 먹지도 않고 그렇게 슬퍼만 하오?
당신에게는 내가 아들 열보다 더 낫지 않소?”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4-20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16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18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19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20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제 우리는 주님 세례 축일을 지내며 성탄 시기를 마무리하고 연중 시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연중 시기의 전례 말씀은 공생활을 시작하시는 예수님의 걸음을 따르게 합니다. 그 시작에서 선포되는 예수님의 첫 말씀이 그분 공생활의 모든 것을 함축합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께서 직접 다스리시는 나라로, 하느님께서 몸소 우리에게 오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사실이 바로 ‘기쁜 소식’(복음)입니다. 이는 천지 창조 때부터 계획되고, 많은 예언자를 통하여 예언되었으며, 이스라엘 백성의 간절한 기다림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 나라에 응답하는 우리의 태도는 ‘회개’와 ‘믿음’입니다. ‘회개’는 잘못된 길을 걷다가도, 다시 하느님께 돌아오는 행위입니다. ‘믿음’은 가까이 온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행위입니다. 회개와 믿음은 “나를 따라오너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명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에 대한 본보기로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들을 소개합니다. 시몬과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은 갑작스러운 예수님의 부르심에 갈등이나 망설임 없이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주저함이나 미련 없이 옛 삶을 포기하고(회개), 그 부르심에 곧바로 응답해야(믿음) 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언젠가 우리도 베드로처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마르 10,28)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 하신 말씀을 명심하며, 우리 앞에 놓인 연중 시기를 주님을 따르는 은총의 길로 만들어 갑시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Posted by 에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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