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에제키엘 사제에게 주님의 말씀이 내리자, 그는 주님 영광의 형상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임금의 자녀들은 성전 세를 면제받지만 사람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것은 주님 영광의 형상처럼 보였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1,2-5.24-28ㄷ
제삼십년 넷째 달 2 초닷샛날, 곧 여호야킨 임금의 유배 제오년에,
3 주님의 말씀이 칼데아인들의 땅 크바르 강 가에 있는,
부즈의 아들 에제키엘 사제에게 내리고,
주님의 손이 그곳에서 그에게 내리셨다.
4 그때 내가 바라보니, 북쪽에서 폭풍이 불어오면서,
광채로 둘러싸인 큰 구름과 번쩍거리는 불이 밀려드는데,
그 광채 한가운데에는 불 속에서 빛나는 금붙이 같은 것이 보였다.
5 또 그 한가운데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습은 이러하였다.
그들은 사람의 형상과 같았다.
24 그들이 나아갈 때에는 날갯소리가 들리는데,
마치 큰 물이 밀려오는 소리 같고
전능하신 분의 천둥소리 같았으며,
군중의 고함 소리, 진영의 고함 소리 같았다.
그러다가 멈출 때에는 날개를 접었다.
25 그들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서도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다가 멈출 때에는 날개를 접었다.
26 그들의 머리 위 궁창 위에는 청옥처럼 보이는 어좌 형상이 있고,
그 어좌 형상 위에는 사람처럼 보이는 형상이 앉아 있었다.
27 내가 또 바라보니, 그의 허리처럼 보이는 부분의 위쪽은
빛나는 금붙이와 같고, 사방이 불로 둘러싸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허리처럼 보이는 부분의 아래쪽은 불처럼 보였는데,
사방이 광채로 둘러싸여 있었다.
28 사방으로 뻗은 광채의 모습은,
비 오는 날 구름에 나타나는 무지개처럼 보였다.
그것은 주님 영광의 형상처럼 보였다.
그것을 보고 나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의 아들은 죽었다가 되살아날 것이다.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7,22-27
제자들이 22 갈릴래아에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슬퍼하였다.
24 그들이 카파르나움으로 갔을 때, 성전 세를 거두는 이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25 베드로가 “내십니다.” 하고는 집에 들어갔더니
예수님께서 먼저,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세금을 거두느냐?
자기 자녀들에게서냐, 아니면 남들에게서냐?” 하고 물으셨다.
26 베드로가 “남들에게서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1코린 2,1-10ㄱ)와 복음(루카 9,57-62)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때때로 성경 말씀이 수수께끼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도 그런 난해한 부분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두 번째 예고의 말씀으로 시작되어, 곧바로 앞뒤 맥락과 연결점이 없어 보이는 성전 세에 관한 질문과 대답이 나옵니다. 그러고는 물에서 건져 낸 물고기와 그 입 속에 담긴 동전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는 마태오 복음에만 나오는 말씀으로, 그 뜻을 유추하고 비교해 볼 다른 성경 구절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이들은 여기서 초대 교회 공동체가 마주하였던 문제를 봅니다. 유다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들과 이방인으로서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이들 사이에 성전 세에 대한 입장이 서로 달랐기에, 신자들이 분열되지 않도록 유다교의 전통에 충실한 이들의 입장을 인정하였다는 설명입니다. 
이와는 다르게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한 영성적인 해석에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 먼저, 우리말 성경에서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 말씀의 성경 본문을 직역하면 자녀들은 ‘자유롭다’입니다. 이를 통하여 오늘 복음의 주제를 자녀들의 자유로 보는 견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자유인으로 만드셨습니다. 이 자유의 대가로 우리가 내야 할 유일한 세금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이웃에 대한 형제적 사랑이라는 세금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세금을 내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은 물속에서 고기를 건져 올리는 일이었습니다. 곧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죽음과 예속의 조건에서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자유인으로 만드시고자 당신 자신을 사람들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위하여 스스로 사람의 손에 예속되실만큼 사람을 한없이 신뢰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봅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자유롭지 못하고, 부모의 보살핌을 필요로 합니다. 부모는 자유 의지로 기꺼이 아이를 보살피면서 스스로 아이에게 매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는 성인이 되면 자유인으로서 다시 자기 아이를 사랑하고 보살피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으로 자유를 얻은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내 자유가 예수님처럼 다른 이를 섬기고 사랑하는 자유인지 자문해 봅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말씀의 초대 

지혜서의 저자는, 주님의 백성은 의인들의 구원과 원수들의 파멸을 기대하였다고 전한다(제1독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라며,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이르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는 저희의 적들을 처벌하신 그 방법으로 저희를 당신께 부르시고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18,6-9
해방의 날 6 밤이 저희 조상들에게는 벌써 예고되었으니
그들이 어떠한 맹세들을 믿어야 하는지 확실히 알고
용기를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7 그리하여 당신의 백성은 의인들의 구원과 원수들의 파멸을 기대하였습니다.
8 과연 당신께서는 저희의 적들을 처벌하신 그 방법으로
저희를 당신께 부르시고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9 선인들의 거룩한 자녀들은 몰래 희생 제물을 바치고
한마음으로 하느님의 법에 동의하였습니다.
그 법은 거룩한 이들이 모든 것을 다 같이,
성공도 위험도 함께 나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벌써 조상들의 찬미가들을 불렀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설계하시고 건축하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1,1-2.8-19
형제 여러분,
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2 사실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8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
9 믿음으로써, 그는 같은 약속의 공동 상속자인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천막을 치고 머무르면서,
약속받은 땅인데도 남의 땅인 것처럼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10 하느님께서 설계자이시며 건축가로서
튼튼한 기초를 갖추어 주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1 믿음으로써, 사라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여인인 데다
나이까지 지났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약속해 주신 분을 성실하신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12 그리하여 한 사람에게서, 그것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처럼 수가 많고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는 후손이 태어났습니다.
13 이들은 모두 믿음 속에 죽어 갔습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멀리서 그것을 보고 반겼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며
나그네일 따름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14 그들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자기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15 만일 그들이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16 그러나 실상 그들은 더 나은 곳, 바로 하늘 본향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라고 불리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도성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17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사악을 바쳤습니다.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이 외아들을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18 그 외아들을 두고 하느님께서는 일찍이,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9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까지 일으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사악을 하나의 상징으로 돌려받은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설계하시고 건축하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1,1-2.8-12
형제 여러분,
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2 사실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8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
9 믿음으로써, 그는 같은 약속의 공동 상속자인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천막을 치고 머무르면서,
약속받은 땅인데도 남의 땅인 것처럼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10 하느님께서 설계자이시며 건축가로서
튼튼한 기초를 갖추어 주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1 믿음으로써, 사라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여인인 데다
나이까지 지났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약속해 주신 분을 성실하신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12 그리하여 한 사람에게서, 그것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처럼 수가 많고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는 후손이 태어났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32-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2 “너희들 작은 양 떼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
33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
거기에는 도둑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좀이 쏠지도 못한다.
34 사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41 베드로가, “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42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43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45 그러나 만일 그 종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46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불충실한 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48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5-4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로마 제국에서 부유한 도시였던 폼페이의 어떤 프레스코화에는 주인과 세 명의 종이 나옵니다. 종들은 서서 허리를 숙이고 주인의 식탁에서 시중을 들고 있습니다. 한편 동방 교회의 어떤 프레스코화에는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이 그려져 있습니다. 거기에는 맨발의 예수님께서 식탁의 맨 끝자리에 앉아 계십니다. 맨발은 종의 신분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으러 오시지 않고, 오히려 맨 끝자리에서 그들을 섬기셨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구도의 그림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주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며 현세를 살아가는 신자들이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한 가르침이 나옵니다. 어떤 주인이 혼인 잔치에 참석하려고 자기 집을 종들에게 맡기고 떠났습니다. 종들은 주인이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언제 돌아올지는 몰랐습니다. 주인이 한밤중에 올지 새벽녘에 올지 몰랐기에 종들은 언제든 주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깨어 있어야 하였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아들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올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주님을 만날 때를 준비하며 사는 것도 맞는 말이겠지만, 그보다 더 나은 선택은 지금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종의 자세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자는 자기만족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깨어 있을 수가 없고, 종이 아니라 주인으로 살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는 깨어 있는 삶을 위하여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으라는 비유의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한 삶을 위하여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요? 고해성사는 신자도 사제도 깨어 있게 하는 삶의 좋은 방식입니다.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으라는 말씀은 그분의 제자인 우리가 언제나 섬기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면, 주님은 우리에게 수없이 오셨지만 우리가 깨어 있지 못해서 그분을 알아 뵙지 못하였습니다. 그분께서는 언제든 다시 오실 것입니다. 깨어 삽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말씀의 초대 

다니엘 예언자는, 연로하신 분이 옥좌에 앉으셨는데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고 머리카락은 깨끗한 양털 같았다고 전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시어 제자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옷이 새하얗게 빛난다. 예수님께서는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를 나누신다(복음).

 

제1독서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었다.>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7,9-10.13-14
9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옥좌들이 놓이고 연로하신 분께서 자리에 앉으셨다.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고 머리카락은 깨끗한 양털 같았다.
그분의 옥좌는 불꽃 같고 옥좌의 바퀴들은 타오르는 불 같았다.
10 불길이 강물처럼 뿜어 나왔다. 그분 앞에서 터져 나왔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
법정이 열리고 책들이 펴졌다.
13 내가 이렇게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는데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14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우리는 하늘에서 들려온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 베드로 2서의 말씀입니다. 1,16-19
사랑하는 여러분,
16 우리가 여러분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재림을 알려 줄 때,
교묘하게 꾸며 낸 신화를 따라 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위대함을 목격한 자로서 그리한 것입니다.
17 그분은 정녕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영예와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존귀한 영광의 하느님에게서,
“이는 내 아들,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하는 소리가
그분께 들려왔을 때의 일입니다.
18 우리도 그 거룩한 산에 그분과 함께 있으면서,
하늘에서 들려온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19 이로써 우리에게는 예언자들의 말씀이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날이 밝아 오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어둠 속에서 비치는 불빛을 바라보듯이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졌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28ㄴ-36
그때에 28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다.
29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30 그리고 두 사람이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31 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
32 베드로와 그 동료들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그분과 함께 서 있는 두 사람도 보았다.
33 그 두 사람이 예수님에게서 떠나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34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는데 구름이 일더니 그들을 덮었다.
그들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제자들은 그만 겁이 났다.
35 이어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36 이러한 소리가 울린 뒤에는 예수님만 보였다.
제자들은 침묵을 지켜, 자기들이 본 것을 그때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루카 복음은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이야기를 전하며, 다른 공관 복음서들과 달리 그분께서 산에 오르신 까닭을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그곳에 가셨습니다. 루카 복음에는 기도하시는 예수님이 자주 나옵니다. 그분의 세례와 공생활, 열두 제자의 선발, 베드로의 신앙 고백, 거룩한 변모, 주님의 기도, 겟세마니, 그리고 십자가 수난과 같이 당신 생애의 가장 중요한 순간마다 예수님께서는 늘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면서 하느님 아버지의 관점으로, 하느님의 뜻에 따른 당신의 인생을 볼 수 있으셨고 그것으로 당신의 인생을 비추어 살피셨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관점에서 성공하는 삶이 아닌 실패하는 삶을 통해서 사람들을 구원할 사명을 받으셨음을 깨달으셨을 것입니다. 복음서의 중반에는 예수님께서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성공적이지 못한 인생을 살고 계시다는 몇 가지 신호가 나옵니다. 군중은 처음에는 예수님께 몹시 열광하였으나 점차 예수님을 버리고 그분 뒤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늘어난 예수님의 적대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계획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때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길이 과연 어떤 길인지 알고자 하셨고, 이를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얼굴 모습이 변하고 빛났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기도드리시는 가운데 당신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되셨다는 뜻일 것입니다. 루카 복음은 친절하게도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나누신 대화를 전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 율법서를 대변하는 모세, 예언서를 대표하는 엘리야와 대화를 나누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며 성경 말씀을 통하여 당신께서 나아가실 길, 곧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 나아가시는 그분의 파스카(건너감)를 깨닫고 이것을 받아들이셨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우리도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맞서야 할 현실 세계의 어려움과 문제들을 떠올리면 걱정과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나아갈 길을 깨닫고 다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길이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나아가는 십자가의 길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랑 때문에 자기 인생을 내주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 속으로 들어간다는 믿음을 지키며 살아갑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말씀의 초대 

나훔 예언자는 피의 성읍인 니네베의 멸망을 예고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라고 하시며,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올 때는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인데,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불행하여라, 피의 성읍!>
▥ 나훔 예언서의 말씀입니다.2,1.3; 3,1-3.6-7
1 보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 평화를 알리는 이의 발이 산을 넘어온다.
유다야, 축일을 지내고 서원을 지켜라.
불한당이 다시는 너를 넘나들지 못할 것이다. 그는 완전히 망하였다.
3 약탈자들이 그들을 약탈하고 그들의 포도나무 가지들을 망쳐 버렸지만
정녕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영예처럼 야곱의 영예를 되돌려 주시리라.
3,1 불행하여라, 피의 성읍!
온통 거짓뿐이고 노획물로 가득한데 노략질을 그치지 않는다.
2 채찍 소리, 요란하게 굴러가는 바퀴 소리, 달려오는 말, 튀어 오르는 병거,
3 돌격하는 기병, 번뜩이는 칼, 번쩍이는 창, 수없이 살해된 자들, 시체 더미,
끝이 없는 주검. 사람들이 주검에 걸려 비틀거린다.
6 나는 너에게 오물을 던지고 너를 욕보이며 구경거리가 되게 하리라.
7 너를 보는 자마다 너에게서 달아나며
“니네베가 망하였다! 누가 그를 가엾이 여기겠느냐?” 하고 말하리니
내가 어디서 너를 위로해 줄 자들을 찾으랴?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24-28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곤경의 날에 우리는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우리는 근심과 곤경 가운데 더욱더 주님께 다가가 간절히 기도합니다. 복음서를 보면 군중들은 예수님을 자신들 곁에 붙들어 두려고 하였습니다.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그분께서 계시는 곳까지 가서,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루카 4,42). 그리고 그분께 매달리고 그분께 손을 대었습니다(루카 6,19 참조). 사람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간 것은 생명을 얻으려는 행동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이것을 아시고 반기셨습니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10). 
그런데 그분의 말씀에는 역설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생명을 얻으려면 오히려 그것을 잃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요한 10,17). 또 당신의 이런 선택을 씨앗에 비유하기도 하셨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생명을 얻으려면 오히려 생명이 죽음에 이르도록 철저히 경멸해야 한다는 말씀을 받아들이기까지 우리에게는 정말 큰 믿음이 필요합니다. 
요한 묵시록은 환난을 이겨 내고 생명을 얻은 이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죽기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12,11).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후손을 약속하셨지만 대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바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시험이 여전히 많은 신앙인에게 따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을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을 약속하셨지만, 곧바로 십자가를 향한 여정을 걸으셨고 죽음을 맞으셨습니다. 그러고는 부활하실 것이라는 당신 말씀대로 부활하셨습니다. 복음서는 세 번에 걸쳐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합니다. 그리스도를 뒤따라 사는 우리도 그분과 함께 죽고 부활해야 한다는, 신앙의 여정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살기를 원하는데 죽어야 하는가?’ ‘행복을 원하는데 불행을 감당해야 하는가?’ 이 질문의 답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신자는 고통이 아니라 사랑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고통을 동반하며, 희생을 요구합니다. 십자가는 사랑의 상징이고 선물의 표지입니다. 제자는 스승보다 나을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 6,68). 

(정용진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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